새벽도 아침도 아닌 시간이 있다. 잠을 설쳤다기에는 너무 늦었고, 빠른 기상이라기에는 너무 이른,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그런 시간이 있다. 따지자면 쪽방촌 사람들도 그렇다. 쪽방촌, 그저 하루 벌어 하루 살던 이들이 간신히 등 붙이던 동네는 이내 그들마저 떠나고 오갈 데 없는 여인들이 그 작은 몸 붙이고 서로 부대끼는 동네가 되었다. 빨간 등을 걸고, 문이랄 것도 없던 집들이 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창으로 그 벽을 모두 드러낸 동네. 일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하루 일과가 끝나면 사람들은 그 시간에 이부자리를 편다. 음습하게 사람이 복작대던 골목이 을씨년스러운 어둠에 젖고, 하루를 마치는 푸념으로 잠시 소란이 스치더니 곧 고요가 골목 구석까지 찾아든다.

　그 골목 깊숙이 유달리 발길 잦은 한 가게, 오래되고 낡아 문턱 닳은 작은 방구석 귀퉁이에서 오늘도 육십 촉 짜리 전구는 끊어질 듯 파르르 이따금 점멸하고는 했다. 그에 맞추어 고집스럽게 펜을 쥐었던 택의 손도 잠시 멈추고, 삐뚤어진 안경 밑으로 파고든 손이 다소 우악스럽게 눈을 누른다.

　“인제 그만 자자.”

　“이것만 더 보고요. 곧 마쳐요.”

　“저 전구다마 숨 끊어진 다음에야 멈출 셈이지, 또.”

　“…….”

　벌개진 눈이 삐죽하니 솟아 정환을 향한다. 전기세 하나 못 메꿀까 무서워서 그러셔요. 사나운 말투가 튀어도 정환은 그저 이불만 털어 자리를 깔 뿐이다. 또 밤에 꾸벅꾸벅 졸다가 뺨이나 맞을까 그런다. 얼굴 말고는 볼 것도 없는 년이.　

　“이 동네 몸 파는 년 중에 너처럼 고집 센 년 찾기도 힘들 거다.”

　손을 대 봐야 이미 아다리가 제대로 맞을 리 없는 안경을 그 고집으로 겨우 콧대 위로 다시 올린 택이 펜을 도로 쥐었다. 늘 듣는 핀잔의 반복이지만 딱 거기까지, 정환은 한 번도 언성을 높이는 법이 없다. 그저 늘 택이 먼저 언성을 높이다가 무시로 돌아설 뿐이다. 주무셔요. 불빛이 이내 드리워지는 장막 사이로 사라진다. 펜을 꾹꾹 눌러 쓰는 소리. 오늘도 동이 틀 즈음에야 소리가 멈추고, 용케 숨이 끊어지지 않은 불을 내린 택이 그제야 이불을 들춘다. 따뜻하니 데워진, 누구의 품 같기도 한 이부자리는 택의 자리였다. 인제 정말 자자. 몽중에 빠진 듯한 목소리까지 택을 품으면 택은 그 품에 아이처럼 웅크려 잠을 청한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도 없는, 습관이 된 잠자리.

 

　“기집년도 아니고, 사내를 데려와 어디다 쓴답니까.”

　정환의 물음에도 포주는 어깨만 한 번 들썩이고는 말았다. 니 오기 전에 서방 꿰차고 나간 년 하나 있었다이. 고 년 쌓인 빚 대신에 받아왔다 안 카나. 고마 뭐 우쨌든지간에 참말 죽일 것도 아이고, 입에 풀칠도 못 해가 있는 기 또 불쌍하기도 하고. 고마 송장 하나 치우는 값보다는 더 안 나가겠나 싶어가, 그래가 데려온 기다. 소년은 겁에 질렸다. 그 조그만 어깨를 두드리는 포주의 별 것 아닌 손짓에도 몸을 웅크리고 발발 떨었다.

　“이리 어린 애가 뭐 기집년 도망질 잡을 수나 있겠습니까. 입만 늘리는 짓 아닐런지 모르겠네.”

　“함 키워 보그래이. 뭐, 모르는 일 아이가. 몸뚱아리 어느 짝으로든지간에 쓸 일 안 있겠나.”

되짚자면 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이제 갓 열 살을 넘긴 소년은 모두가 잠든 아침에 홀로 일어나 정환이 눈을 뜰 때까지 고 조그만 몸을 웅크려 몇 시간이고 기다리고, 그러면 미성년의 정환은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택을 데리고 간신히 몸을 가린 채 잠든 여인네들의 안부를 확인하고는 했다. 그러던 것이 몇 년인지, 정환이 막 스물둘을 넘길 즈음이었다. 고 동그란 머리통이 통 며칠 보이지 않더니 죄 터져서 돌아온 날, 포주의 장부에는 이름 하나가 더 올랐다. 동네 유일한 소년은 꽃을 피우고, 음습한 동네, 홀로 하늘을 날던 민들레 홀씨도 땅에 묶이고 만다.

 

　고약한 열병은 꼭 택만 골라 찾아들고는 했다. 저 년 올해는 잘 넘기나 했다. 며칠이 지나도 열릴 생각 없는 방 문고리를 쥐었다 놓는 것만 몇 번, 꼬박 며칠을 앓고서야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난 어느 새벽이었다. 저어기 끝 방 년, 이제 몸 추슬렀다더라. 들리는 소문에 조용히 문을 밀고 들어가면 보이는 풍경은 처음 보는 안경을 코에 걸치고 책에 고개를 박은 열아홉의 소년. 열병을 앓았다더니 더 마른 몸이 한껏 웅크린 채 활자를 곱씹다 뒤늦게야 기척을 알아채었다. 허둥대는 택의 몸짓이 책을 덮고, 작은 틈으로 필통이며 책이며 안경 따위를 밀어 넣고야 멈춘다. 말하지 마셔요.

　“아프다는 년이, 방구석서 순 거짓말만 늘었구나.”

　“아…….”

　택이 때가 탄 안경을 꺼내든다. 급하게 넣은 것이 잘못인지 다리 한 짝이 틀어져 영 못쓸 꼴이 되었는데도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양 조심히 모양을 맞추어 책상 저 끝까지 도로 밀어 넣고서야 아는 체를 한다. 고개를 든 택의 표정이 울상이다.

　“안경이 망가졌어요.”

　“좀 컸다고 이제 아주 말도 안 들을 셈인가 보다.”

　“그러게 왜 기척도 없이 남의 방문을 열고 그러셔요.”

　고새 도로 뾰족해진 음성이 탓을 정환에게로 돌린다. 망가지면 새로 사지도 못 하는데. 허, 참. 남의 방이라 이거지. 나는 날마다 남의 이부자리 뺏는 파렴치한이냐? 여즉 혼자 잠들지 못하는 버릇을 꼬집으면 불리한 소리에는 입을 꾹 다문다. 한참을 꼬막 맞물린 것처럼 입을 열지 않던 소년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잘 시간이다. 그만 눕자. 그 말에는 또 끄덕이는 작은 통수. 어쩐지 평소보다 조금 움츠러든 품새는 분명 비밀이 들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그러나 방금 일에 대해서는 캐물을 것도 없었다. 책의 출처가 어디냐 묻지 않아도 아는 것은 쉬웠다. 뻔질나게 택의 방을 드나드는 사내 하나, 소위 말하는 모던보이.

　“헛바람 들지 마라.”

　택은 말이 없다. 작은 등을 끌어안아 도닥이면 몸이 더 바짝 붙어 온다.

　“바람은 언제든지 불어.”

　스쳐가는 사람이라 여기면 쉽다. 여기 계집들은 꽃이지,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여기면 된다. 정환이 누구에게 닿는 말인지 모를 말을 밤새 중얼대었다. 모르는지, 모르는 체를 하는지. 택은 여전히 말이 없다.

　끝 방 년, 기둥서방 왔다. 그러면 택은 책을 펴다가도 도로 덮고 마중을 했다. 발걸음에는 답지 않은 애교가 묻어 있다. 일주일 만이에요. 기다렸지, 하는 목소리에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언니, 저 년 저대로 괜찮아? 저러다 짐 싸겠네.”

　“저대로 둬. 한번 머리채 잡혀서 개처럼 맞아야 말을 듣지.”

　두어 달 정도 되었지, 저 사내? 질릴 때도 됐지. 짐 싸기도 전에 눈물 쏟는 꼴부터 보겠네, 끝 방 년. 애써 귀를 막아도 들리는 이야기를 소년만 모른다. 둘은 저어 끝 방으로 들어가 이내 문을 닫고, 그런 날이면 택은 펜을 쥐기가 무섭게 책상에서부터 끄덕이며 잠기운에 허덕인다.

　“네 기둥서방 쫓을 생각으로 펜 잡은 것이면 얼른 접어라.”

　뻔했다. 대학을 다니는 사내 옆에 그 흔한 졸업장 하나 없는 쪽방촌 창부는 갖다 댈 것도 없는 것, 누구보다 잘 알겠지. 그런 것 아니어요. 끝이 뭉그러지는 음성, 결국 소년은 토라지고 그런 소년을 달랠 줄 모르는 정환은 등을 돌리고 잠든 택을 못 이기는 척 끌어안아 잠을 청한다.

 

　포주가 참다못해 머리채를 잡았다. 눈물에 젖은 얼굴이 힘없이 쳐들어지면 지나가던 이들은 몇 번 혀를 차고는 도로 갈 길을 간다. 모던 보이가 가타부타 말 한마디 없이 발걸음을 끊은 것은 계집들이 입방아를 찧은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때였다. 것 봐, 내가 저 년 울 거랬지. 그치, 언니. 꼴좋다. 지아비 품은 새색시처럼 굴더니. 예 사는 년들 중에 그런 사내 안 겪어본 년 누가 있다고. 개중에 몇은 그 꼴을 짓씹고, 포주도 택을 몇 번 걷어차고는 이내 정환 쪽으로 툭 내던지고 만다.

　“일주일이면 많이 참아 준 거 니도 알제. 내일부터는 도로 손님 받어라. 내사 마, 니 키운 정이 있어가 담그지는 않아도 니도 알 거는 다 알 끼고. 정환이 니는 야 헛짓 안 하는지 잘 감시해라이.”

　정환의 품에 떨어진 택은 아직도 눈물에 젖었다. 그 다음날, 개시를 준비하는 계집들의 입방아에 모던 보이가 오르내렸다. 기집 가지고 헛짓 하다가 두들겨 맞았다잖어. 얼굴이 아주 피떡이 되었다던데. 어머, 얘. 정환아. 너 얼굴이 왜 이래. 꼼짝없이 흉 지겠다. 어제 누구 도망질이라도 했니?

　“신경 끄지, 옷이나 입어. 나는 사내도 아닌가.”

　얘는. 네가 사내면 저기 끝 방 계집년도 사내라고 쳐야 된다, 얘. 무어가 웃긴지 저들끼리 눈을 맞추고 또 웃는다.

　택은 그러고서도 펜을 쥐었다. 짓씹던 이들도 그 꼴이 불쌍하기는 했는지 모던보이 욕을 질리게 해대던 참이었다. 아무 일 아니니 이제 신경 두지 마셔요, 수저를 내린 택의 한 마디로 모두 도로 입을 다물고 만다. 저 년, 저거 성격 봐. 고집 하고는. 다 지 생각해서 그러는 건데. 어쩌니 저쩌니 해도 택을 아끼던 포주가 한숨을 쉰다. 그러거나 말거나 택은 고집을 꺾질 않는다. 코피를 쏟고, 책상에 고개를 박은 채 잠드는 날이 는다. 참말 그 책 전부 태워야 그만둘래? 이제는 아예 화도 내지 않은 채 삐뚤어진 안경을 또 얹는다.

　

“택아.”

　불러도 대답이 뜸한 것은 꽤 된 이야기. 몇 번을 다시 보느라 다 닳아 헤진 책인데도 한번 고개를 박으면 정환이 어거지로 자리에 눕혀야지만 고개를 들었다. 평소에도 그렇게 넋 놓았다간 또 어디 한 군데 맞고 말 거다, 너. 정환이 퉁사리를 주어도 고개 몇 번 끄덕이는 것이 다였다. 그러는 정환도 택에게 날을 세우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 다른 년들이 조금 딴 마음만 먹는다 싶으면 머리채를 잡아다 겁을 주는 것이 일상인 정환도 차마 택에게는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까 손이라도 대면 깨질까 그렇게 유난을 떨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무심하게도 흐르고 계절은 돌고 돌아 또 겨울을 넘어 봄을 맞는다. 정환은 어김없이 이부자리를 깔고, 누그러진 날씨에도 외풍 드는 방의 창을 꼭 닫는다. 택아. 고개 한 번 돌아보는 법이 없다.

　“도망이라도 갈래?”

　산책이라도 갈래, 따위의 말을 던지는 것처럼 가벼운 투다. 택이 잠시 움찔한 어깨를 도로 내리며 시선만 한 번 툭 던진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는 것이다.

　“농도 정도가 있는 거예요.”

　“농 아닌데. 참말이다.”

　택이 펜을 내리고, 이내 입술이 달싹이다가 떨리는 목소리가 흐른다.

　“바람이라도 되겠다는 건가요. 바람은 언제든지 분다면서요. 그만 잠깐 불었다 떠나가는 바람이 되려고 나한테 이러는 거예요? 당신까지요?”

　“……나는 네 뿌리가 되고 싶은데.”

　정환이 펜을 든다. 서툰 솜씨로 그러나 또박또박 꾹꾹 눌러 가며 쓴다.

　“글씨가 변변찮지.”

　주소다. 네 빚 청산하는 일도 곧 다 끝나. 그러니까,

　“다 그만두고 나랑 살자.”

　택은 좋다 싫다 말이 없다. 그저 무에 그리 억울한지, 마른 등을 끌어안은 팔을 몇 번 뿌리치다 종래에는 울고 만다.

　“이깟 창부 거둬서 어디에 쓰려고요. 밥도 못 하고, 청소도 할 줄 몰라요.”

　“언제는 네가 한 적 있는 것처럼. 이 방 청소 평생 내가 다 했다, 그러니까 약조만 해.”

　택은 이부자리에 누워서야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얼룩덜룩한 흉이 남은 손이 택의 얼굴을 매만지면 택은 시선을 뗄 줄을 모른다.

　다음 그믐날이야. 늦으면 안 된다. 사람들 눈에 띄어 좋을 일 아닌 것은 너도 잘 알지. 나는, 나는……. 그날 계집애 하나만 옆 동네로 데려다 주면 된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 늦지 않게 갈게.”

　새벽도 아침도 아닌 시간, 어두운 것도 밝은 것도 아닌 하늘이 택의 그림자를 가린다. 자꾸 뒤를 돌아보는 소년을 재촉한 정환이 마찬가지로 채비를 서두른다.

 

　택은 해가 다 넘어가는 오후에서야 겨우 집에 발을 들였다. 몇 번이나 주소를 물어 가며 찾은 한산한 골목 끄트머리의 파란 대문. 작은 집, 깨끗하지도 않고 넓지도 않지만 곳곳에 정환의 손때가 묻은 집. 해가 넘실넘실 들어차는, 정환의 집. 노을을 본 지가 얼마나 되었지, 창밖으로 걸리는 노을이 생소해 손가락을 꼽아 보면 몇 년을 훌쩍 넘긴 일에 택이 그마저도 금방 그만두고 바닥에 주저앉아 멀뚱히 정환을 기다린다. 해가 전부 내리고, 주황빛 하늘이 보랏빛을 띠었다가 이내 가장 익숙한 어둠으로 물들 때까지 그저 황망히 바닥에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러다 시선이 탁자 위 봉투 하나에 무심히 걸리고, 봉투를 열면 그 서투른 글씨가 택을 반겼다.

 

　｢택아, 어쩐지 부끄러워 펜을 빌렸는데 내 손에서는 펜 한 자루도 네 손에서처럼 곱지가 않다. 제일 안쪽 방이 침실이고, 작게 딸린 방이 네 공부방이다. 내가 늦어도, 신경 쓰지 말고 공부를 해. 부엌 셋째 서랍을 열면 봉투가 하나 있다. 그 안에 들은 것으로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거다. 꼭 돌아간다. 참, 공부방 서랍에 선물이 하나 있다. 별 것 아니니까 기대는 말고. 이만 줄인다. 정환｣

　엇나가는 손으로 당긴 서랍에는 반듯한 안경이 있다. 동그랗고 반짝이는, 택의 얼굴에 꼭 맞는 것으로. 택은 차마 손을 뻗지도 못하고 시선을 둘 뿐이다. 버석하게 마른 손이 책상을 쓸고, 검정고시 책 몇 권이 손가락에 걸리면 택이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만다. 누가 이런 것 바란다고 했나, 빨리 온다면서. 순 거짓말은 자기가 다 하고. 밉다고, 진짜 너무 싫다고.

　“그렇게 싫다면서, 집은 잘도 찾아왔네.”

　아아. 그제서야 택은 주저앉고 만다. 걱정하기가 무섭게 찾아드는 안도는 택을 따뜻하게 적시고, 곧 터진 눈물도 마를 줄을 모른다.

　“이게 다 뭐야…….”

　“미안하다, 좀 늦었지.”

　계집년이 도망을 갈 거면 얌전히나 갈 것이지, 겁도 많은 년이 사람을 찌른다고 난리야. 얼굴이 난리가 난 정환이 주저앉은 택을 일으킨다.

　“이제 육십 촉 전구도, 삐뚤어진 안경도 다 끝이다. 책도 다 보았지, 대학 못 가기만 해.”

　“됐어요…… 일 없어요. 주제에 대학은 무슨.”

　“고집 하고는. 안경 안 예쁘든?”

　“……예뻐.”

　택의 콧잔등 위에 새로이 올라앉은 안경은 어디 한 군데 삐뚠 곳이 없다. 쪽방촌 어드메 시멘트 바닥을 뚫고 자란 들꽃은 한 군데 성한 곳 없이 술에 취한 이들 발길에 짓밟혀 우그러져 그 아름다움을 몰랐을 것을, 파란 대문 옆 주르르 딸린 텃밭에는 꽃봉오리 터뜨린 꽃들도, 그 위로 올라앉은 나비도 어디 우그러진 데 없이 환하게 택의 시야에 걸린다. 참말 봄이네요, 이제는. 그렇지, 택아. 이제 정말 봄이다.

 

　조심스럽게 옮겨 온 꽃은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정환은 그 뿌리를 단단히 잡아 줄 대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