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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은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펜을 잡고 있는 정환의 손을 바라보았다. 힘을 주고 있는지 손등에는 선명히 파란 핏줄이 섰다. 까만 정수리가 정환이 줄을 바꿔 쓸 때마다 약하게 흔들렸다. 정환은 이제 막 생년월일을 다 쓰고 주소지로 넘어가는 참이었다. 택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자신의 앞에 있는 하얀 종이에 시선을 내렸다. 점점 까만 글씨로 채워지고 있는 정환의 것과 다르게 아직 두 글자 이름, 최 택 이외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상태였다. 처음이지만 비슷한 형식의 서류를 본 적이 있다. 아마, 혼인신고서가 이것과 비슷하게 생겼던 것 같기도 했다. 남편과 아내의 인적사항을 한 장에 나란히 적게 돼 있어, 정환이 먼저 작성한 후에 넘겨받아 곁눈질을 해가며 쓸까도 싶었지만 이러한 서류가 세 통이나 필요하다고 했다. 집에는 복사기가 따로 없었다. 정환은 같이 나눠 쓰자며 택에게 한 장을 내밀었고 그들은 부엌 식탁에 앉아 묵묵히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각각 가지고 있는 종이 말고도 남은 한 장이 식탁 옆쪽에 놓여 있었다.

 택은 한자 이름을 쓰는 란에서 주저했다. 애초에 택은 한자를 잘 쓰지 못했다. 택이 쓰면 어쩐지 한자를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의 글씨처럼 되어 한자 이름을 쓸 때면 언제나 정환에게 펜을 넘기곤 했다. 택은 펜을 여러 번 고쳐 잡았다. 손바닥에서 땀이 나는 듯했다. 결국 택은 펜을 꾹꾹 눌러 한자를 적었다. 높을 최, 못 택. 여전히 초등학생 같은 글씨였다. 두 글자를 썼을 뿐인데 속이 울렁거렸다.

 그 순간에도 앞에서는 쉼 없이 식탁 유리에 펜이 닿는 소리가 또각또각 들려왔다. 정환은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의 주소를 다 적었다. 택은 펜의 뒷꼭지를 입으로 가져갔다. 까만 뚜껑에 아랫입술이 뭉개졌다. 자신은 한 글자 한 글자 적는 데에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정환은 막힘이 없었다. 자신이나 정환이나 처음 해보는 것은 똑같을 텐데, 정환은 자신과 다르게 쓱쓱 써내려갔다. 하긴, 정환은 뭐든 그랬다. 어떤 것을 하든, 그것이 처음이든 아니든 거의 모든 일에서 택보다 능숙했다. 택이 주저하고 있으면 으이그, 하면서 제 앞으로 가져가 능숙하게 해주던 정환이었다. 혼인신고서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택은 그 손등에 서 있던 핏줄을 물끄러미 바라봤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좀 더… 웃고 있었다.

 택이 겨우 반쯤을 채워갈 때 정환은 자신이 쓴 서류를 쭉 한 번 보더니 말없이 옆에 있던 새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 움직임에 택이 고개를 들고 쳐다보자 정환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친권자 지정은, 안 써도 되네.”

 “…….”

 “별로 쓸 거 없다. 남은 거 내가 먼저 쓸게. 너 그거 다 쓰면 줘. 서로 바꿔 쓰면 되겠다.”

 정환은 다 쓴 서류를 택 쪽으로 내밀고 다시 새롭게 여백이 많은 종이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택은 정환이 내민 종이를 흘긋 쳐다보았다.

 친권자 지정은 안 써도 되네.

 그렇지. 왜냐하면, 우리에겐 친권을 지정할 아이가 없으니까.

 택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주 세게 깨물어 이가 닿은 부위가 하얘졌음에도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택은 울렁거리는 목울대를 애써 잠재우며 펜을 다시 고쳐 잡았다. 정환이 써놓은 것과 똑같은 주소를 부러 소리를 내며 또박또박 적어 내렸다. 그것도 점점 흐릿해졌다. 결국 택은 고개를 떨궜다. 끅끅대는 소리에도 정환은 택을 쳐다보지 않고 자기 앞의 서류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정환의 손이 움직이지 않은 지도 오래 되었다.

 “울지 말고.”

 “…….”

 “다른 서류 챙길 거 뭐 있지. 다른 건 내가 챙길게.” 

 정환은 누런 서류 봉투에서 준비해야 할 서류 목록을 꺼냈다. 정환은 중얼거리며 그 목록을 읽어 내려갔다. 이혼 신고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는 얼마 전에 떼놓은 거 있지. 가족관계증명서가 없네. 정환은 피곤하다는 듯이 종이를 내려놓고 거칠어진 얼굴을 쓸었다.

 “내일 내가 동사무소 갔다 올게. 오늘은 그것만 마저 써 놔.”

그렇게 말하는 정환 앞에서 택은 고개를 더 숙였다. 택이 입고 있던 검은 바지 위로 눈물이 떨어지면서 농도가 짙어졌다.

 “택아.”

 “…….”

 “울지 말고.”

 정수리로 내려앉는 말에 택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울지 말고.

 

 “최택. 나와 봐.”

 택은 정환이 부르는 소리에 정리하고 있던 이불을 장에 대강 넣어둔 후 거실로 나갔다. 이틀 전에 배송된 식탁에 앉아있는 정환은 심각한 얼굴로 흰 종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봐? 옆자리에 앉은 택은 몸을 정환 쪽으로 기울이면서 그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혼인신고서였다.

 “이거 해야지, 이제.”

 “아…….”

 태평하게 아, 소리를 내는 택을 보고 정환은 픽 웃으면서 그 작은 머리통을 끌어안고 머리 어디께엔가 입을 맞췄다. 택이 놔달라며 우는 소리를 낸 후에야 택은 정환의 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흩트러진 머리를 대충 매만지며 택은 정환의 손에서 서류를 가져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환은 팔에 턱을 괴고 그 옆 모습을 바라보며 손톱으로 식탁 유리를 톡톡 두드렸다.

 정환이 고른 식탁이었다. 2인용 식탁을 사자는 택에게 작게 핀잔을 주며 이 식탁을 골랐다. 뭐 어쩌자고 이렇게 넓은 식탁을 사. 우리 둘밖에 없는데. 그 말에 정환은 실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 택을 돌아보며 말했다.

 ‘애 둘은 낳을 건데 이 정도는 사야지.’

 그 말에 택은 얼굴을 붉히면서 정환의 팔을 살짝 쳤고 식탁 매장 직원은 웃었다. 맞아요. 자녀 낳으실 거 생각하시면 나중에 또 구매하시는 것보다 이번에 좀 큰 거 사시는 게 좋으세요. 신혼부부신데. 이것저것 4인용 식탁을 보여주는 직원을 따라가며 택은 그런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정환이 택의 손을 당겨 잡았다.

 ‘응, 그래. 그러니까 돈 너무 아끼지 말고 좀 좋은 거 사자.’

 ‘하여튼. 그런 말은 남 앞에서 왜 해.’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눈을 크게 뜨며 물어오는 정환을 보고 택은 속절없이 웃었다. 그렇게 고른 식탁이 배송된 것이 이틀 전이었다. 내일은 소파가 배송된다고 했다. 대출을 끼고 구한 신혼집이 그렇게 채워져 가고 있었다.

 택은 정환이 건네준 서류를 유심히 들여다보다 펜을 잡았다. 이름을 쓰는 곳에 펜을 눌러 썼지만 펜이 잘 나오지 않아 몇 번이나 치읓의 첫 획을 긋고서야 두 글자를 쓸 수 있었다. 최, 택. 다음 줄로 넘어간 택은 곧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환이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택의 볼을 찔렀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 택이 어설프게 웃으며 정환을 쳐다봤다. 정환은 선심 쓰는 척 택의 손에서 펜을 가져왔다. 줘 봐.

 “아직도 한자 이렇게 못 써서 어떡하냐. 이렇게 쉬운 글자인데. 세 글자도 아니고 두 글자.”

 “쓸 일이 없어서 그렇지.”

 “왜 쓸 일이 없어. 앞으로 쓸 일 많을 텐데.”

 정환은 그렇게 말하면서 택의 한자 이름을 썼다. 정환의 글씨체는 끝이 조금 날렸다. 대학 시절 노트 필기를 빌려보면 가끔 무슨 글씨인지 알아보기 어렵기도 했지만 한자를 쓰기에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글씨체였다. 전공 때문에 한자를 많이 쓸 일이 있어서 그랬는지 유난히 정환은 한자를 잘 썼다. 택은 식탁 위에 한쪽 팔을 대고 누워 펜 끝에서 쓰여지는 글자들을 구경했다.

 “또 무슨 쓸 일이 있어.”

 “이제 부동산 이런 거 할 때도 써야 될 거고, 애 낳으면 출생신고도 해야 하고.”

 정환은 가구를 사러 돌아다닐 때부터 아기 얘기를 해댔다. 어지간히 갖고 싶은가. 택은 슬쩍 웃었다.

 “그렇게 갖고 싶어? 애기?”

 “응.”

 “내가 갖기 싫다 그러면 어쩌려고.”

 정환은 이 집 주소가 뭐더라, 하면서 옆에 있던 핸드폰을 열어 메모를 확인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입에 익지 않은 주소였다. 메모를 열어두고 옮겨 적던 정환은 택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니가 싫으면 할 수 없지.”

 택은 푸스스 웃으면서 팔에 얼굴을 부볐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한다.”

 “어, 맘에도 없어. 사실.”

 정환은 자기가 말하고도 웃긴지 픽,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택은 그 모습을 보며 몸을 더 가까이 붙여 글씨를 쓰고 있는 정환의 팔에 얼굴을 올렸다. 에헤이. 글씨 삐뚤어진다. 정환은 그러면서도 택의 얼굴을 떼어내지 않았다. 택은 가까이에 보이는 손등의 푸르스름한 핏줄을 잠깐 보다 점점 까만 글씨가 채워지고 있는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정환은 그새 택의 부모님 이름까지 써놓은 상태였다. 너 부모님 주민번호는 알아? 정환의 말에 택은 정환을 살짝 흘겨보며 펜을 뺏어 들었다. 13자리 숫자를 두 번 쓰자 자연스럽게 다시 펜은 정환에게로 넘어갔다.

 “뭐 더 많이 남았어?”

 “아니, 다 했어.”

 정환의 말대로 하얗던 종이는 거의 빈틈 없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서류 끝자락까지 글자를 써 내려간 정환이 종이를 삼등분 해 접자 눈을 동그랗게 뜬 택이 고개를 들었다. 정환은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접은 종이를 흰 봉투 안에 넣었다.

 “끝난 거야?”

 “응. 왜?”

 “나 싸인 같은 거 안 해?”

 정환은 웃으면서 다시 택의 뒷통수를 큰 손으로 잡고 끌어와 이마와 미간 사이에 입 맞추었다. 그 바람에 눈만 깜박이던 택은 정환이 떨어지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했어. 니 싸인까지.”

 “왜?”

 “싸인 안 하려고 했어?”

 이유를 물어보는 택에 정환은 과장되게 놀란 척을 하며 되물었다. 그 표정에 택은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됐네요. 정환은 택이 지금처럼 한쪽 눈을 구기면서 웃는 것을 좋아했다. 다시 식탁에 얼굴을 묻는 택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정환은 마른 어깨에 얼굴을 부볐다. 택은 손을 들어 자신의 목에서 간질거리는 정환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억세지 않은 머리가 부드럽게 손 안에 감겼다. 지는 해가 넓은 창으로 뻗쳐 들어오고 있었다.

 “다 끝났다.”

 쏟아져 들어오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택이 중얼거렸다. 몇 달 동안 준비한 결혼과 이사가 비로소 끝난 기분이었다. 특히 근 한 달은 양가 인사에 신혼여행, 집 정리까지 정신이 다 없었다. 정환은 어깨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목부터 턱, 귀, 관자놀이까지 타고 올라가며 입 맞추었다. 틀렸어.

 “이제 시작이지.”

 택은 창 쪽으로 향하고 있던 고개를 돌려 정환의 입술을 감쳐 물었다. 정환의 혀가 입 안 쪽으로 깊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택은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조용한 일요일 오후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을 벗은 정환은 집안을 주욱 둘러보며 맞은편에 있는 화장실로 직행했다. 소파 위에 반쯤 걸쳐져 있는 아기용 담요, 노란 분유가 담긴 채 식탁 위에 쓰러져 있는 젖병, 빨래통에 들어가다 만 것 같은 수건까지. 화장실까지 얼마 되지 않는 걸음 사이에 둘러본 집안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한숨을 쉬며 후다닥 손을 씻고 나온 정환은 화장실 옆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실에 보이지 않으니 여기 있을 것이 분명했다. 문을 열자 하늘색 포대에 싸인 채 곤히 자고 있는 아기와 그 옆에서 더 곤히 잠들어 있는 택이 보였다. 다용도실로 쓰던 것을 아기 방으로 꾸민 것이라 아기를 뉘이고 그 옆에 택이 누우면 거의 가득 차는 방이었다. 정환은 옆으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택의 발치에 서서 무릎을 살짝 굽혀 짚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우유를 먹고 잠든 게 얼마 되지 않았는지 희미한 우유 냄새와 고롱고롱 코를 고는 아기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스며 나왔다.

 택의 긴 발가락이 꼼지락거렸다. 정환은 저쪽으로 내팽겨져있던 이불을 가져와 넓게 펼쳐 택의 위에 덮었다. 귀여운 곰돌이가 자잘하게 그려져 있는 이불 안으로 택의 발을 조심스레 밀어넣었다. 팔을 베고 잠든 택이 으응, 하면서 잠시 꿈틀대다 몸을 조금 틀고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정환은 조용히 뒷걸음질 쳐 문을 닫고 방 밖으로 나왔다.

 정환이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빨랫감을 모아 세탁기를 돌리고, 먹다 남은 우유를 버리고 설거지를 다 해갈 무렵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깼어?”

 정환이 물기를 없앤 그릇을 찬장에 올려놓으려 팔을 뻗으면서 말하자 등 뒤에 따뜻한 체온이 달라붙었다. 대충 찬장을 정리한 정환이 돌아서며 택을 바로 끌어안고 뜨끈뜨끈한 얼굴을 붙잡아 입 맞추었다.

 “언제 왔어?”

 “좀 전에.”

 “하도 칭얼거려서 옆에 누워서 재우다가 같이 잤어.”

 “잘했어. 잠 다 깼어?”

 정환은 고개를 끄덕거리는 택의 뒷머리를 쓸어올렸다. 머리가 좀 길었나. 생각해보니 출산 전부터 한참이나 머리를 다듬지 않은 택이었다. 정환은 다음 주에는 시간을 내 같이 머리를 자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자신의 어깨에 볼을 꾹 대고 기대있는 택의 손을 살살 잡아끌어 식탁에 앉히고 아까 벗었던 코트 주머니에서 흰 종이봉투를 꺼냈다. 택이 뭐냐는 듯 쳐다보자 삼등분으로 접힌 종이를 꺼내며 정환은 말했다.

 “이거 이번 주까지 안 하면 과태료래.”

 “아……. 얼른 해야겠네.”

 “응. 한 달 안에 안 하면 벌금 낸다더라.”

 그동안 너무 정신이 없어서 출생신고를 하러 갈 시간도 없었다. 아기는 열 달을 채우고 나왔지만 약간의 천식 끼가 있었고 한동안 그 작은 몸에 링거 줄을 달고 있었다. 완전히 퇴원을 하고 나서도 며칠 간격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 바람에 산후조리도 마음 놓고 하지 못한 택은 언제 뽀얗게 살이 올랐냐는 듯 금세 핼쓱해졌다. 병원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지난주였다. 택은 정환이 이끄는 대로 식탁에 가 앉았다. 정환이 미처 완전히 닦지 못한 우유가 메말라 붙어있었다. 택이 이제 집안 어디에나 있는 물티슈를 한 장 뽑아 식탁을 닦는 사이 정환은 펜을 가져왔다.

 “그냥 동사무소 가서 내가 하고 오려고 했는데, 모르는 게 좀 많더라. 같이 내야 할 것도 있고.”

 정환의 말에 택은 펜을 잡고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김, 환. 택은 두 글자를 썼다. 지금까지 말로만 환아, 환아, 하고 부르다 처음으로 아이의 이름을 써보는 것이었다. 택은 괜스레 입을 꾹 다물었다. 아이는 이제 평생 이 이름으로 살아가게 될 터였다. 글을 처음 배울 때 이 이름을 쓰며 시작할 것이다. 학교에 입학해 처음 받는 교과서에도 이 두 글자를 쓰겠지. 말없이 한 자 한 자 꾹꾹 힘주어 쓰는 택을 정환은 식탁에 손을 짚고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택은 다음 줄에 있는 한자 이름을 쓰는 란에 김(金)자를 썼다. 당연히 자신에게로 펜을 내밀 줄 알았던 정환은 의외라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웬일이야.”

 “못 쓰는 거 아니거든. 그리고 이건 내가 쓰고 싶어.”

 택은 그렇게 말하며 옆으로 옮겨가 다음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불꽃 환(煥). 택은 두 글자를 쓰고 뿌듯한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정환은 그 동그란 정수리에 큰 손을 얹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택은 펜을 고쳐 잡고 나머지 빈 공간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택을 정환은 내내 지켜보고 있었고, 택은 정환에게 간간이 물었다. 너 한자 이게 맞나? 응. 맞아. 식탁 유리에 딱, 딱, 펜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이거 네가 내러 갈 거야?”

 “내일 점심 시간에 내고 올게.”

 “그럼 제출인에 네 이름 쓴다.”

 종이에 비친 그림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택은 제출인란에 정환의 이름을 썼다. 절반 정도 채운 종이를 보고 택은 손바닥을 한 번 옷에 문질러 닦고 다시 펜을 잡았다.

 “이제 이런 것도 잘 쓰네.”

 “환이는, 내가 해보고 싶어서 그래.”

 이제 나는 없어도 되겠네. 장난스레 입술을 삐죽이는 정환을 보고 택은 그 입술을 살짝 잡아당겼다 놓았다.

 “둘째는 네가 쓰던가.”

 그 말에 정환은 소리를 내어 웃었다. 택은 조금 빨개진 얼굴로 다시 시선을 내렸다. 신생아 정보를 쓰는 란이었다. 정환이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가 좀 헷갈려서 네가 쓰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택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펜을 대는 순간 방 너머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택은 탁 소리가 나게 펜을 두고 얼른 일어섰다. 정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택이 앉아있던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곧 아이를 품에 안은 택이 밖으로 나왔다. 우리 아들, 엄마 없어서 깼어? 엄마 여기 있지. 택은 팔을 작게 위아래로 흔들며 아이를 얼렀다. 식탁에 앉은 정환의 옆으로 다가온 택은 곁눈질로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불러줄게. 받아 써.”

 “응. 임신주수.”

 “38주.”

 “며칠?”

 “5일.”

 3, 8, 5. 정환은 아이가 택의 품에서 칭얼대는 소리를 들으며 또박또박 숫자를 썼다. 택은 벌써 거실 한 바퀴를 돌고 있었다. 환이 몇 키로였지? 정환의 말에 택은 거실에서 대답했다. 3.2키로. 택은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침을 턱받이로 살살 닦았다. 아들, 배 안 고파? 맘마 먹을까?

 “소수점 세 자리까지 있는데?”

 정환은 뒷머리를 긁으면서 말했다. 택은 그 말에 정환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도 거기까진 기억 안 나는데. 환이 방 서랍장 봐봐. 거기 산모수첩이랑 출생확인서 다 있어. 정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서 옆방으로 들어갔다. 서랍장을 여는 소리를 들으며 택은 아기에게 눈을 맞췄다.

 “내일 아빠가 환이 태어났습니다, 하고 말하고 온대. 좋지?”

 아직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환의 까만 눈이 반질거렸다. 택은 보드라운 아이의 볼에 입을 꾹 맞췄다.

 “엄마도 좋아.”

 저 멀리서 정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택아, 어디? 서랍장에 없는데? 택은 자신의 목으로 얼굴을 묻는 환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 없어?

 없잖아.

 어. 어디 있지, 그럼? 우리 방에 있나?

 하여간에 못 산다. 나와 봐, 가보게.

 아니다, 아니다. 여기 있다!

 

 유리문은 보기보다 무거웠다. 택은 가장 왼쪽부터 시작해 오른쪽까지 쭉 눈으로 훑었다. 직원은 여섯 명이었다. 하나같이 방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무료한 얼굴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택은 입술을 깨물었다. 여섯 명 중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할까. 택은 고개를 숙여 목에 칭칭 감긴 머플러에 얼굴을 묻었다. 정환이 둘러주지 않았다면 이것조차 없을 것이었다. 택이 가장 가운데에 있는 사람에게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정환이 한 발 앞서 나갔다.

 “사망신고 좀 하려고요.”

 정환과 택은 오늘 아침부터 한 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각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말없이 밥을 먹고 옷을 입었다.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그들은 같이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집을 나오려던 택을 정환이 붙잡아 머플러를 둘러주었다. 택은 오늘 처음으로 정환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정환이 육성으로 그 단어를 내뱉은 것도 처음이었다.

 “2번 창구로 가서 신청서 받으세요.”

 동사무소 직원은 정환을 힐끔 바라보고는 2번 창구를 가르쳤다. 입을 꾹 다물며 정환은 몸을 돌려 2번 창구로 향했다. 택은 그 등을 따라 발걸음을 한 발 옮겼다. 정환은 2번 창구의 직원 앞에서 다시 한 번 말해야 했다. 사망신고 좀 하려고요. 직원은 책상 위에 있는 서류함을 열어 서류를 한 장 꺼내며 말했다.

 “사망 증명서는 갖고 오셨어요?”

 정환은 뒤에 서 있던 택을 돌아보았다. 정환과 눈이 마주친 택은 말없이 주머니에서 병원 로고가 인쇄된 흰 종이봉투를 꺼냈다. 택은 봉투 안에서 삼 분의 일로 접힌 서류를 꺼내 전달할까 고민하다가 금세 그만두었다. 죽음을 증명하는 한 장의 종이를 제 손으로 꺼낼 자신이 없어 병원에서 받아 온 그대로였다. 정환은 택의 손에서 그 봉투를 가져가 봉투째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감흥 없이 열어 본 직원의 얼굴에는 잠시 안쓰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아니, 곤란한 기색이었던가. 직원의 말투가 조금 상냥해졌다.

 “신고서 작성해서 주세요.”

 정환은 봉투에서 꺼내진 사망 증명서와 신고서를 받아들어 서류 작성대로 향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택은 그 등을 따라갔다. 터져 나오는 한숨과 함께 정환은 한참이나 서류를 내려다보다 돼지 꼬리처럼 생긴 줄이 달린 볼펜을 뽑아 들었다. 천천히 글씨를 쓰기 시작한 정환 옆에 서 있던 택은 코트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꾹 말아쥐었다. 저 글씨 하나하나에 아이의 죽음이 공식화되고 있었다. 정환이 불꽃 환 자의 마지막 획순을 그은 순간 결국 택은 눈물이 터졌다. 정환은 묵묵히 다음 칸을 채워갔다. 손등에 파란 핏줄이 돋았다.

 말이 빠른 아이는 아빠의 커다란 손 안에 갇힐 때면 항상 정환의 손 핏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묻곤 했다. 아빠 이건 뭐야? 아이의 물음에 옆에 있던 택이 말했다.

 ‘피가 다니는 곳이지.’

 ‘아빠 피는 왜 파래?’

 천진한 물음에 정환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는 사실, 외계인이거든. 외계인은 피가 파래. 아이는 제법 진지한 정환의 얼굴과 웃고 있는 택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반쯤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 그럼 막 우주로 가?’

 ‘갈 수 있지. 왜? 아빠 우주 갔으면 좋겠어?’

 정환의 말에 아이는 퍼뜩 일어나 정환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갑자기 부딪혀 오는 몸에 바닥에 앉아있던 정환은 급하게 뒤로 팔을 뻗으며 아이를 붙들었다. 택은 어어, 하면서 손으로 정환의 허리를 받혔다.

 ‘아니, 가지마. 아빠 우주 가지마.’

 택을 닮아 애살스러운 부분이 있는 아이였다. 살이 올라 통통한 볼을 어깨에 부비는 아이를 정환은 숨 막히도록 끌어안았다. 알았어. 아빠 안 갈게. 아빠는 우리 아들 옆에서 엄마랑 같이 평생 붙어있어야지. 안겨든 아이는 우습게도 우주선과 태양, 달, 토성 등이 자잘하게 그려진 내복을 입고 있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내복이었다. 품에 안긴 아이의 어깨 너머로 정환은 택과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아이는 그 옷을 입고 셋 중 가장 먼저 우주로 먼저 발을 내디뎠다.

 택은 서류 작성대에 있는 휴지를 네 칸 뜯어 인중 사이에 대었다. 숨 쉬기 힘든 고통이 몰려왔다. 택은 작게 헉헉대며 입으로 숨을 쉬었다. 정환은 사망 증명서를 보지 않고도 사인(死因)을 적었다. 몇 번이나 의사에게 묻고 또 물었던 것이었다. 모를 수 없었지만 영원히 이해할 수도 없었다. 착실히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정환은 펜을 꽂지 않고 그대로 뉘어놓았다. 두 장의 종이를 들고 다시 접수대로 향하는 정환의 뒤를 이번에는 택은 따라가지 못했다.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택은 눈은 감았다. 이미 축축한 속눈썹 끝으로 다시 물방울이 떨어졌다.

 직원과 짧은 이야기를 마친 정환은 작게 기침하며 택에게로 돌아왔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택을 보고 정환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정환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택의 팔을 잡아끌었다. 택이 다리가 움직임과 동시에 힘없이 딸려 나온 손을 정환은 천천히 내려 잡았다. 들어올 때와 같이 무거운 유리문이 그들의 뒤에서 덜컹, 바람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엇박의 발걸음 소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튕겨 올랐다. 채 몇 걸음을 가지 않아 거의 타의로 움직이던 택의 발이 멈췄다. 한걸음 앞서 걷고 있던 정환의 손에서 아주 힘없이, 택의 손이 빠져나갔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골목길에서 정환이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택은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아주 많은 것들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택은 나와ㅡ있던 손을 다시 코트 주머니로 넣었다. 저절로 손가락이 모였다.

 “가자.”

 “…….”

 “안 갈 거야?”

 지친 정환의 목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둘 사이에는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초겨울의 싸늘한 바람이 그 공간을 스쳐 지나갔다. 정환은 택에게 다시 손을 뻗지 않았다. 택의 손은 코트 주머니 안에서 돌처럼 굳어갔다.

 

 정환은 동아리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낯선 등에 잠시 멈칫했다. 보통 문을 열면 정면에 보이는 것은 일정이 빽빽한 화이트보드나 소파에 누워 있는 동기들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작년에 어디선가 주워 가져다 두고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책상과 의자에 앉아있는 굽은 등이 보였다. 아직 학기 초라 바람이 쌀쌀한 것을 보여주듯 두터운 회색 코트를 입은 등이었다. 정환은 그 등을 천천히 쳐다보며 등 뒤로 동아리방 문을 닫았다.

 “왔냐?”

 동기의 목소리가 들리고서야 정환은 저쪽 소파에 앉아있는 동기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어……. 정환은 책상 옆으로 지나가며 무언가를 쓰고 있는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 아래로 언뜻 곧게 선 코가 보였다. 정환은 고개를 들어 동기에게 눈짓하며 입 모양으로 물었다. 누구? 동기는 그런 정환이 무색하게 웃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입부 신청하러 왔대. 진짜 오랜만에 신입생 들어오지 않았냐?”

 아. 1학년인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니 자신이 작년에 썼던 입부신청서 위에서 흰 손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정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에서 시선을 떼려던 순간 몸을 앞으로 숙인 채 글씨를 꾹꾹 눌러 쓰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정환은 그 얼굴을 보고 입을 벌렸다.

 “너…….”

 조그만 얼굴에 주름이 패이며 씩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안녕.

 “쟤가 너 안다던데?”

 “어, 어.”

 어깨로 팔을 걸쳐오는 동기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나야 알지. 지난 학기 내내 수업 때마다 훔쳐보던 얼굴이니까. 하지만 수업 내내 뒷모습, 아니면 앞에 나가 발표하던 모습만 바라봤을 뿐 말을 나누었던 적은 없었다. 발표 PPT 표지에 떠 있는 세 줄이 정환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신방과, 자신과 같은 학번, 그리고 그의 이름. 그가 펜 뚜껑을 닫고 일어나 웃으면서 정환에게로 쓰던 종이를 건넸다. 정환은 얼떨결에 그 종이를 받아들었다.

 “김정환이지?”

 “어, 어…….”

 정환은 또 바보같이 대답한 자신이 이제는 싫어지려 했다.

 “지난 수업에 때 많이 봤어. 원래 1학년 때 여기 가입하려고 했는데 못했거든. 너 여기 활동 한다구 그래서.”

 그는 마치 오래전부터 정환을 알아온 듯 친근하게 말했다. 정환이 여전히 꿈꾸는 듯 멍하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옆에 있던 동기는 넉살 좋게 말했다.

 “그래도 너라도 들어와서 다행이다. 도서관 일 하기에는 사람 부족했거든.”

 “어. 나도 해보고 싶었어. 잘 부탁해.”

 그는 동기가 내민 손을 잡고 작게 흔들었다. 그러고는 정환 쪽으로 약간 몸을 틀어 정환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순간 반지하인 동아리방 위에 있는 창문으로 햇살이 펼쳐져 들어왔다. 해가 저물고 있다는 의미였다.

 “잘 부탁해.”

 정환은 말없이 내밀어진 그의 손을 살짝 쥐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남자다운 손이었다. 맞잡았던 손이 떨어지자 그는 아까처럼 얼굴을 구겨 웃었다.

 “수업 때 보자.”

 정환이 자신의 전공이 아닌 신방과 수업을 신청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걸까. 정환은 첫 수업에서 그의 뒷모습만을 보다 나왔다. 등을 돌려 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를 보다가 정환은 영 모르겠다는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그가 주고 간 입부 신청서를 훑어 내렸다. 그러다 다리를 멀리 뻗어 거의 문 밖을 나간 그의 팔뚝을 붙잡았다. 돌려세워진 그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이름. 너, 이름 안 썼어.”

 정환의 말에 그는 머쓱하게 웃었다. 가방을 다시 열려는 그에게 정환은 동아리실에 굴러다니는 볼펜을 건네었다. 그는 페인트가 벗겨지고 있는 오래된 부실 문에 종이를 대고 빠트린 이름을 적었다.

 최, 택.

 택은 또박또박 두 글자를 쓰고 정환에게 다시 입부 신청서와 펜을 건네며 웃었다.

 “고마워.”

 평생토록, 영원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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