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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른아른 종이 울리며 문이 열렸다. 부연 먼지 조금 달싹이나 싶더니 이내 가라앉았다. 봉황당으로 발을 들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침묵에 집어삼켜졌다. 온갖 철 부스러기들은 다 끌어다놓고 책상에 앉은 택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것들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흩어진 조각을 맞춰내고 있었다. 그것들에 어찌나 정신이 팔렸는지 제 근처에서 인영이 한참을 얼쩡거리고서야 무거운 고개 들어 올려졌다. 어항을 들여다보듯이 어질어질한 안경을 쓴 택은 제 눈앞으로 시계가 내밀어질 때까지 잠자코 바라볼 뿐이었다. 택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는 먼지가 잔뜩 쌓인 메모장에 일방적으로 읊어지는 것들을 꾹꾹 힘을 주어 적었다.

 “글피까지 가능한가?”

 택은 가만히 고개를 젓고는 펜을 쥐지 않은 오른손을 손바닥이 다 보이도록 완전히 폈다. 곤란한 표정을 짓던 이는 끙 소리를 내며 이내 수긍하고 말았다. 제법 값이 있는 물건이니 잘 부탁하네, 한 눈에 봐도 묵직한 돈주머니 내놓은 노인은 바닥으로 시선을 꽂으며 지체 없이 가게를 나갔다. 언제 들어왔는지 머리를 잘 빗어 넘긴 장교 하나가 낡은 선반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째깍이는 시계바늘 소리에 맞추어 툭, 툭, 허리에 찬 칼집을 두드리는 그는 심드렁한 얼굴로 오로지 택의 둥그런 정수리만 눈에 담았다. 택이 모래알만한 톱니바퀴 위로 다시 코를 박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 헤진 가죽 띠를 두른 손목시계가 불쑥 들이밀어졌다. 뱉어진 타국의 이름은 귀에 박히도록 익숙한 것이었다. 택은 종이 위로 한자를 정갈히 써 내렸다.

 “3일 후.”

 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탁, 책상 위로 시계를 올려둔 남자의 손이 택의 손에 닿을 듯 말 듯 스쳤다. 뚜벅이는 구둣발이 택의 앞을 지나갔다. 주먹을 한 번 꼭 쥐었다 핀 택은 가만히 상처 난 시계의 유리알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그 손길은 연인의 얼굴을 덧그리듯이 애틋하기만 했다.

 먼지만 잔뜩 뒤집어썼던 봉황당 다시 빛을 본지 세 해 째였다. 시계방 부자와 거두어진 아이 하나 만주로 간다며 홀연히 모습을 감추나 싶더니 아들만 홀로 경성에 돌아 온지도 세 해 째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히 가게 문 여는 안경잡이 청년에 대해 별의별 소문만 들끓었다. 그 누가 반가움에, 호기심에 뭐라 말을 걸든 눈 한 번 깜빡일 뿐, 입을 통 열지 않기 때문이었다. 독립운동인가 뭔가 큰 일 한다고 나서다가 왜놈들이 혀를 지진 것이다, 만주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변을 당해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이다, 그 난리통에 아비도 잃은 것이다, 입을 모아 멋대로 추측한 것을 수군대기 바빴지 그 진상은 아무도 알 길이 없었다. 껄렁거리며 지나다니던 순사 하나가 쉬쉬거리며 떠돌아다니는 이야기 대충 알아듣고 그 길로 허리에 찬 일본도 뽑아들었다.

 “망할 조센징!!”

 눈이 뒤집혀 휘두르던 칼은 기어코 택의 허리춤을 꿰뚫었다. 천황폐하를 운운하며 뭐라 소리를 질러대던 새된 목소리는 곧 씩씩대는 숨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피가 울컥이는 배를 감싸고 웅크린 택은 비명은커녕 앓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경성 저잣거리 구석에 자리 잡은 시계방 벙어리에게는 더는 입도 뻥끗 못할 소문 꼬리 붙지 않았다. 건너 건너 들어 사정 아는 이들은 괜히 왜놈 눈에 띄어버렸다며 봉황당 골목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무슨 시계든 아주 재주 좋게 잘 고친다고 입소문을 타 여러 사람 오고 가고 하는 것도 나중 일이었다.

 양장 차림인 택의 뒤로 코흘리개 아이들 졸졸 따라붙으며 병신, 병신, 손가락질하며 노래를 불러도 택은 손을 휘둘러 내쫓지도, 그렇다고 귀찮다거나 짜증을 내는 얼굴을 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시계방 앞까지 쫓아온 꼬질꼬질한 손 위로 강정이나 엿 따위를 한가득 쥐어주었다. 아이들은 얼른 제 입에 그것들을 욱여넣다가도 누구 하나 저들 쪽으로 걸어올 때면 얼른 꽁무니를 빼며 달아났다. 괜히 언짢은 순사 눈에 띄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일이었다.

 망국의 계절은 겨울뿐이었고, 해가 진 경성은 유독 을씨년스러웠다. 점점이 불이 들어온 거리에는 오직 일본인만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녔다.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이 땅의 주인들이 무슨 불똥이라도 튈까 지레 겁을 먹고 죄다 집으로 몸을 숨긴 탓이었다. 덕분에 세상 떠들썩하던 시장 골목마저 소름끼치는 정적이 감돌았다. 개새끼만 컹컹대며 낮게 짖는 밤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봉황당의 문은 딸랑거렸다.

 “시계 찾으러 왔어요.”

 종소리 뒤로 고운 여인의 목소리 들려왔다. 하루꼬, 읊어진 이름에 따라 택이 잘 닦여진 회중시계를 내밀자 여인은 두 손으로 고이 받아들었다. 제법 강단 있는 손이 택의 투박한 손을 힘껏 감싸 쥐었다.

 “곧 봄이 오려나 봐요.”

 어둠에 잠겨가는 가게에 택이 전등을 켜자 지금은 잊혀진 조국의 말, 사그라지듯이 들려오나 싶더니 열린 문틈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택은 다시 제 자리를 지키고 앉았다. 헐거워진 나사를 조여야 하건만 꼭 쥐어진 주먹은 펴질 줄을 몰랐다. 괘종시계가 댕하고 한 번 고함쳤다. 자시였다. 택은 제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는 좁은 가게 돌아다니며 달빛이 어떤 틈으로라도 새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창을 꼼꼼히 가리고 문이란 문은 다 걸어 잠갔다. 전구를 모조리 꺼버린 택은 잠자코 책상 앞에 앉아 눈을 꼭 감고 어둠에 익기를 기다렸다. 제 나이보다 더 많은 숫자를 헤아렸을까, 천천히 눈을 뜬 택은 무엇 하나 서두르는 법 없이 유독 그늘진 구석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초로 겨우 아롱거릴 만큼만 밝혀진 좁은 방 안에는 이미 그리운 이 와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정환의 머리는 며칠 전과 달리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익숙한 동작으로 한 모금 연기를 머금은 그는 택에게로 팔을 뻗었다. 안경을 벗어 협탁 위에 올려둔 택은 허리를 숙이고 그가 물려주는 대로 입술을 벌렸다.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다.”

 괜한 투정을 부리는 두툼한 입술은 말과 달리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택은 완전히 정환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아 물었다. 정환의 곁으로 가 앉은 택은 슬쩍 그의 손을 더듬거리더니 손가락 사이사이를 제 손으로 감쌌다. 마음 같아선 너른 어깨 위로 지친 머리 뉘이고 싶었지만, 꿈에서만 그리던 얼굴 실컷 보고만 싶은 제 욕심을 채우는 것이 먼저였다. 택은 얼마 태우지도 않은 담배 뒷굽에 비비어 꺼버리고는 매캐한 냄새가 배어있을 손을 뻗었다. 내려앉은 곳은 못 본 새 여윈 것 같은 정환의 볼이었다. 거칠은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자 정환은 눈을 가늘게 떴다.

 “택아.”

 정환의 목소리에 뭐라 입을 떼려던 택은 다시 고요를 찾았다. 그 뒤로 이어질 말을 택은 제 입술을 갖다 대어 숨결과 함께 삼켜버렸다. 짧기만 한 이 밤, 가슴 깊숙이 묻어두고 사는 감정들 입으로 토해내며 축낼 수는 없었다.

 민족을 팔아넘겨 장교자리에 앉았다는 매국노는 이 자리에 없었다. 독립투사를 몇이고 잡아들여 제 손으로 직접 목을 베어냈다는, 부모도 형제도 나라도 팔아먹은 귀신은 처음부터 이 자리에 없었다. 그 옛날 학생복을 입었을 적 ‘김정환’이라는 이름 석 자 대신 일본의 이름을 받고 피눈물을 삼켜내던 동무가 있었고, 학살을 당한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가족도 다 잃고 혈혈단신으로 겨우 살아남아 제 아비에게 거두어져 머나먼 만주까지 함께 했던 형제가 있었다. 잃어버린 나라의 봄날을, 우리네 봄날을 되찾으려는 꽃샘바람 같은 임이 여기 있었다.

 풀을 잔뜩 먹여 빳빳한 장교복 단추마다 서투른 손길이 닿았다. 셔츠 앞섶이 벌어질 때마다 눈에 닿는 흉터들에 택은 가슴이 먹먹해져 저보다 훨씬 다부진 몸, 팔에 가득 차도록 보듬었다. 맨 살결 마주 닿는 게 처음도 아니면서 두 얼굴 모두 홧홧히 열이 올랐다. 서로의 몸을 더듬고, 입술을 쪽쪽이는 어린아이 같은 전희는 끝났다. 민감한 곳으로 큼직한 손 파고들자 아득함에 택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열이 오른 제 몸에 태양이라도 삼킨 듯 뜨거운 정환의 몸이 닿자 그저 안달이 나 괜히 눈물이 돌았다. 낡은 침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삐걱이며 울어도 그리운 이 한 몸 가득 품는 허리짓은 멈추지 않았다.

 창밖으로 여명이 드리우며 작별의 횃불이 오르고 있었다. 담배를 태우는 택의 허리를 끌어안고 누운 정환이 계속해서 옆구리에 남은 흉터를 지분거리던 손장난은 택이 그 손을 맞잡고서야 비로소 멈추었다. 정환은 한 손에 잡히는 택의 팔을 끌어 몇 번이고 입술에 진득한 입맞춤을 내렸다. 미련으로 택이 한 박자 늦게 입을 떼어내자 정환이 퍽 다정한 손길로 택의 부은 입술을 쓸어주었다. 이번 일 마무리 되면, 가라앉은 목소리가 운을 떼었다. 택은 여전히 시선 속에서 욕심껏 정환을 옭아매고 있었다.

 “만주로 가자.”

 “…….”

 “가서 너희 아버지 곁 지켜드리면서 그곳에 터 잡자. 너는 시를 읽고 나는 그런 너 보던 예전처럼 살자, 택아. 서로가 백발노인이 되어서 늙어 죽을 때까지, 그리 살자.”

 “…정환아.”

 그리운 목소리가 잊혀진 이름을 불렀다. 머지않은 미래의 꿈을 미리 꾸는 것일까, 허황된 비원 입에 담아본 것일까, 묵직한 한숨이 택의 어깨 위로 쏟아졌다. 택은 제 허리 힘주어 감싸 안는 팔뚝 가만가만 쓸었다. 그러자, 그렇게 하자, 턱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하얀 목덜미에 코를 박고 숨을 깊이 들이쉰 정환은 몸을 일으켰다. 날이 완전히 밝기 전에 떠나야만 했다.

 봉황당을 떠나기 전 정환은 총 한 자루를 내밀었다. 필요 없어, 택은 손을 아예 등 뒤로 숨기고 고개를 저었지만 항상 져주었던 정환도 이번만큼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기어코 손에 총이 쥐어진 택은 고집 다 드러나는 철부지 같은 정환이 애달파 웃어버렸다.

 “봄에 보자.”

 정환은 별이 박힌 군모 깊이 눌러 썼다. 택은 애써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두꺼운 안경알은 차마 눈물로 얼룩진 눈 가려주지 못하였다. 애처로운 제 연인 마음껏 안아주지도 못하는 팔은 택의 어깨를 두어 번 도닥거렸다. 금방 올게, 귓가에 그리 속삭인 정환은 등줄기를 쭉 펴고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지나가던 순사 하나가 얼른 경례를 하자 정환의 손 역시 칼날같이 세워지며 챙에 닿았다. 빛까지 다 바랜 가죽 줄의 손목시계가 슬쩍 모습을 보였다가 숨어버렸다.

 거사를 목전에 둔 이 곳 경성은 아직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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