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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벳은 고사하고 기역 니은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다. 우주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기도 전부터 김정환은 우주를 사랑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과,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모든 것. 자라나는 소년에게 사전 속 무한함은 이층 주택의 옥상 위를 빛내는 별들이었다. 김정환은 몇 십 년에 한 번 혜성이 지구로부터 자신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했을 때, 제 눈 바로 앞까지 현란하게 비춰 보인 순간을 기억한다. 닿지 않을 600km 거리의 공간을 마음에 담으면서, 소년은 저 광대한 공간이 자신을 품어 유영하게 해주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린 날 어머니의 손을 잡고 형의 병실을 드나든 것을 김정환은 기억한다. 베개에 파묻은 머리통은 숨을 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병실 천장에 형의 손바닥쯤이나 되는 스티커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띠를 두른 야광색 동그라미는 형의 우주였다. 색이 바래 희미한 을 쳐다보는 형은 김정환에게 별똥별을 알려주었다. 주말 아침 앉아 만화를 기다리는 어린 동생에게 몇 번을 돌려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스페이스 오디세이 테이프를 틀어 지구 밖을 보여준, 저보다 우주를 사랑한 형이다.

 

 김정환이 제 형을 위해 종일 학교에서 칠한 검정색과 파란색 크레파스가 한데 섞인 종이를 건넸을 때 형은 가만히 손을 뻗어 받아 들었다. 크레파스 기름이 손가락을 까맣게 하는 지도 모르고 품에 안았다. 엄마는 가운이 지저분 해지니 하지 말아라,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다. 매끄럽지도 않은 크레파스의 으깨진 부스러기가 형의 흰 환자복 위로 하나둘 떨어졌다. 김정환은 손톱 밑에 묻은 어쩌면 검은 때로 보일 부스러기를 다른 손으로 비집어냈다. 이러니저러니 자랑하는 말은 없었다.

 

 "정환아."

 호스에 딸린 옅은 형의 목소리로 이름이 불렸다. 고개를 드러누운 형의 얼굴과 눈을 맞췄다. 고마워. 멋있다. 숨소리는 두 마디를 뱉어내고서 가빠졌다. 수술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친 탓이었다. 형의 심장은 기형이었다. 심장 판막이 얇아 피가 거꾸로 돌았다. 둥그렇고 붉은 형의 뺨은 호스, 바늘자국과 어울리지 않았다. 김정환은 침대 옆으로 고개를 돌려 울음을 삼키는 엄마와 팔을 들어 사각 천장에 그림을 대어보는 형을 번갈아 보다 다시 손끝에 집중했다. 떨구어낼 것도 없었지만 하얀 거스러미가 다 떨어지도록 비집어냈다. 눈 주위가 뜨거워졌지만 저까지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교복을 입고서부터 브라운관으로 보는 별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김정환은 셔츠 밖에 입는 감색의 재킷 소매가 성겨 새끼손가락 둘째 마디를 간질였을 때부터 망원경을 만지기 시작한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관측소는 버스로 두 시간을 달려야 했다. 낯익은 풍경을 지나 도착하면 김정환은 관측소의 제일 안쪽에 자리한 망원경을 잡았다. 손가락을 한번 두번, 세번 놀리면 흐릿했던 초점이 닦아낸 듯 꼭 맞아떨어졌다. 작은 구멍이 보여주는 천체의 시작은 늘 그렇듯 북극성이다. 2등성의 코카스 ,벨라리스로 시선을 옮긴다. 작은 곰 자리를 지나 대사각형 옆의 희미한 물고기자리. 메시의 74은하. 인류가 만든 전구 따위가 따라 할 수 없는 반짝임의 무리를 따라 눈과 손가락을 움직인다. 별들의 도시, 구조체는 익숙해지지 않는 세계였다. 김정환은 모두가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자리를 지키다 관측소가 문을 닫을 때쯤에야 내려놓았던 가방을 어깨 위에 올린다. 몇 시간이나 만진 망원경에 손을 떼어내는 순간이 아쉬웠다. 김정환에게 별은 형의 소망이었고 형제가 품은 꿈이며 처음 마음에 담은 사랑이었다.

 

 소년은 자라 자켓의 소매가 손목에 잘 자리 잡은 뼈에 스치게 된다. 김정환은 한치의 이변 없이 천문학을 전공으로 삼는다. 원초적 방법과 개정되지 않은 교과과정은 탐구욕에 목마른 소년, 이제는 청년이 되어버린 김정환에게 부족했다. 지식의 습득 방식은 육식동물의 포식에 가까웠다. 구할 수 있는 모든 학술지, 논문을 찾아다녔다. 코 피를 보는 일도 적지 않았다. 김정환이 앉는 연한 합판 무늬의 책상은 코피가 번져 진갈색 얼룩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하루의 절반을 연구실에서 지내는, 무서울 만치 놀라운 집념에 김정환의 주변인들은 모두 혀를 내두른다. 주변인 중 가장 가까움에도 김정환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최택이었다.

 이렇다 할 단어로 둘의 관계를 정의할 수 없었다. 김정환에게최택은 우주와 자리를 나란히 하는 존재였으나 최택은 김정환이 주는 혀의 온기가 좋았다. 최택은 하루가 다르게 김정환의 연구실 바닥을 밟았다. 최택은 먼지 바닥 위 종이 더미가 순서를 잃고 나뒹굴어도 개의치 않았다. 입과 입 사이, 나눌 수 있는 가장 작은 공간을 내어주는 순간만큼은 수식의 방해를 받지 않았다.

 연구소의 돔 유리를 사이에 두고 비치는 별 무리 아래 나란히 누웠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고개가 느리게 호를 그렸다. 선의 끝은 김정환의 옆모습에 멈춘다. 최택은 둘의 관계를 정의할 수 없었다. 혀의 온기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 김정환이 좋았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유인 탐사선의 평속, 거리, 탐사 과정에 관한 과학 교지와 근현대 과학 역사서 기록은 십 년 단위에서부터 매 년마다 그 속도를 좁힌다. 실패를 거듭하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역사서가 적지 않은 기록 뒤 사망한 우주인들의 명단을 근거로 윤리 문제를 거론하는 단체가 적지 않았음을 밝히는 바다. 그럼에도 국제기구의 협력 유도는 형식에 불과한 꼴이었다. 자본과 기술이 있는 곳은 모두 국가적 산업으로 우주선을 만드는데 총력을 가한다. 김정환의 집념을 높게 사는 스승은 예견이라도 한 듯 그를 프로젝트에 추천한다. 어디에서도 시도되지 않은 연구이자 투자였다. 마다하는 나라는 없었다. 노랗거나 혹은 붉거나. 김정환을 포함한 그의 동료들 중 검은 머리칼을 한 사람은 유일했다. 김정환은 자신의 알파벳 열한 자를 처음으로 올린다. 동양인 최초의 수식은 너 나 할 것 없이 김정환의 이름 앞에 붙였다. 

 

 최택은 축하해야 할 소식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축하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다면 끝까지 외면하고 싶었다. 속눈썹이 짙게 내려앉은 눈이 두어 번 껌뻑이다 벌겋게 달아오른다. 떨리는 손가락을, 입술을 눌러 울음을 참는다. 손톱 끝이 새하얗게 질려버리고 서야 최택은 입을 떼었다.

 

"말이 좋아 프로젝트야. 두 달도 안 지나 쓰레기들 사이에 섞여 부유하다 죽어버릴 거라고, 그래도 좋아?"

 상기된 목소리를 뱉어낸 김정환의 보기 좋게 올라갔던 입꼬리가 일직선으로, 일직선에서 보기 좋지 않게 구겨졌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행성에 도달하지 못한 실패작의 무리는 지금도 비행 예상 궤도를 돌고 있을 것이다. 김정환이 무리 중 하나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무전이 닿지 않으면 김정환 또한 그들처럼 기록되지 않은 역사로 잊혀진다. 그러나 김정환은 구차한 변명도 내놓지 않았다. 고집스럽게 다물린 그 입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최택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두번째 사랑은 첫사랑을 이기지 못 했다.

 

 

 김정환은 끝내 꿈에 그리던 자리에 앉는다. 탄소-탄소 복합물질의 몸체에 첫 발을 내딛었다. 모의 비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과 크게 다른 것은 없었다. 비행을 재설정 하더라도 무중력 상태가 멈추지 않으리라는 사실만 달랐다. 마지막으로 헬멧 밑 단단히 조여진 결합부를 다시 한번 만져 확인한다. 테크론 층의 표면이 소리 없이 구겨졌다 원래 자리를 찾았다. 반쯤 젖힌 좌석 위로 무전기가 지직 소리를 낸다. 남은 시간은 삼분도 채 남지 않았다. 최택은 전 세계가 집중하고 있을 단 하나의 순간을 부정하고 있을 것이다. 12,756.27km의 지면에서 멀어지기까지 숨을 마시고 뱉는다. 되돌아 갈 방법은 없었다.

 

 "카운트 다운 10  9  8  7  6  추진 탱크 확인 바람  5  4  3…."

 그 이상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얼마쯤을 더 가야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대기권을 벗어나기 위한 준비, 그 이외의 것은 배워보지 않았다. 지루할 리 없을 거라 생각했던 기다림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기동석 앞의 우주선 창과 두 눈이 마주한다. 관측소 천장의 절반이나 되지 않을 유리벽 너머 지구가 있다. 우주에서 보는 지구. 형의 심장 판막이 끝내 터져 박동기가 멈추고 나서야 김정환은 무중력의 세계에 도달한다. 남은 것은 자신을 담고 궤도를 비행하는 우주선 하나였다.

 

 "본부 들립니까."

 발사 시점과의 거리가 한참 멀어지고 나서야 김정환은 처음으로 교신을 시도한다. 산소 탱크는 세 번째 교체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차 반복해도 스피커는 어떠한 단어도 수신하지 않았다. 선체 안은 터번이 작동하는 진동소리만 울려펴졌다. 우주선은 이제 막 화성을 지나 잊혀진 역사의 파편들 사이를 지난다. 지구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김정환은 혼자가 되었다. 소년의 첫사랑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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