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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종이에 검은색 잉크가 번지며 숫자가 선명히 새겨진다.

1980.5.18

많이 들어 봤을 법한 날짜,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삶이 송두리째 바뀐 날였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날이 되었을 수도 있는 날이다.

지금은 벌써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아직도 누군가는 잊지 못하고 있다. 과거 속에 사는 것이 누구는 미련하다고 한다.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는데 바보같이 갇혀 산다고.

 

그러나 과거를 잊어버리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다. 좋았던 순간까지도, 잊혀지는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잊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1980.5.10

"정환아"하며 택이 밝게 웃으며 뛰어왔고 "어 택아"라고 답한 정환이를 봤는지 못 봤는지 계속 부르며 말을 건넨다.

 

"정환아 정환아 정환아"

"왜"

"아니 그냥"

택은 배시시 웃으며 정환을 쳐다보고, 그런 택이를 보며 정환이도 마지못해 웃었다.

 

"으이그 "

"정환아.. 너 내일 시간 돼?"

"응, 왜"

"우리 영화 보러 가자"

"그래 그러자"

 

그 말을 하고 택이는 해처럼 환하게 웃었고 정환이도 웃는 택이를 보며 밝게 웃을 수 있었다.

 

1980.5.11

거기서 그저 그런 영화를 보았지만 재미있었고

특별한 것도 아니었지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정환이 웃고 있을 때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었다. "신음소리" 야한 소리가 아닌 살고 싶어 내는 그러한 소리.

그 소리가 크게 들리며 영화관 문이 열렸고 제복을 입고 무장을 한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에게 곤봉을 휘두르고 있었고, 사람들에게 나가라고 외쳐대었다.

그에 정환은 그저 택이 손을 꽉 잡은 채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살고 싶어 하는 살려 달라 하는 사람의 눈빛을 보고서도

정환은 군인이 꿈이었다. 멋지게 군복을 입고 전투기를 조종하는 이러한 꿈이 깨지게 된 것은 이 사건 때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아니 체감상으로는

정환에게 몇 년이고 몇 십 년 이였지만, 날짜로는 몇 달도 되지 않아서 정환은 국가를, 군대를 증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1980.5.14

대학생들이 일어났다.

몇천 명이 전남대에서 민족민주화 성회라는 이름의 집회를 하고 지금까지 억제해왔던 것을 분출했을 때, 정환은 고등학생이고 학생이라는 것을 핑계로 대며 귀를 막고 눈을 막았다.

남들이 나라를 바꾸겠다며 일어났을 때 정환은 쪼그리고 앉아서 책을 폈다. 비겁해 보였지만 정환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한다고 해서 세상이, 정부가 바뀌는 것이 아닐 테니깐."

 

정환이 이렇게 비겁하게 골방에 숨어 공부할 때

택은 달랐다. 정환에게 우리도 이렇게 숨어 있을게 아니라 나가야 한다고, 몇 명이라도 더 시위에 참가해야 한다고 눈물이 그렁그렁 한 눈으로 정환에게 호소했다.

 

"택아"

 

정환은 낮은 목소리로 택을 불렀다.

 

"...."

"택아.. 최택"

"...."

"정신 차려 미쳤어? 우리 2명 나간다고 뭐 세상이 바뀌어? 택아.. 우리 이러다 죽을 수도 있어"

"...정환아 지금 우리 살겠다고 광주시민들 버려?"

"최택 내말 잘 들어 지금 니가 무슨 상황인줄 잘 모르는거 같은데 이거 장난 아니야 미친 새끼들이 진짜로 총 쏜다고 진짜 죽어"

"알아 그런데 정환아 너도 알잖아 지금.."

 

정환도 물론 알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매우 안 좋다는 것도, 정부가 타깃을 광주로 잡았다는 것도. 그 당시는 왜 하필 광주인지 알수가 없었지만 진정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0.5.15

평화롭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무시했다.

정환은 막은 귀를 다시금 막고 눈을 더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계속 혼자서 되 뇌었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 나중에 다 갚을 수 있을 꺼야. 그러니 지금은 아니야"

 

누군가는 이러한 행동을 보면서 맞다고 할 수도 있고 틀렸다고 할 수도 있다. 누구의 말이 맞던지 상관없이 그 당시의 정환은 어렸다. 그렇기에 누구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신이 생각과 판단이 중요했다 혹은 어떠한 계기라던가.

정환은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숨어있었지만 며칠만에 인생을 바뀔 것이라고

 

정환이 생각에서 벋어나 눈을 뜨자.

자신을 쳐다보며 눈을 끔뻑거리는 택이 보였다.

 

정환에게 택은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가족은 전부 서울에 있었기에 정환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은 택이 전부였다.

그 마음이 다른 감정으로 바뀐 걸 정환은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애써 가두고 무시를 했다.

 

"택아"

"응 "

"우리 집에 빨리 가자"

"왜 어디 아파?"

"아니 기분이 찜찜하네"

"그래 빨리 가자"

 

정환의 예감은 잘 틀린 적이 없었다. 정환이 택에게 이 말을 하고 있었을 때 대학생들이 시내 진출을 시도했고, 저지망을 뚫었다.

그리고 경찰은 그들에게 최루탄을 던졌다.

 

1980.5.16

밖은 시끄러웠지만 정환은 애써 조용하게 굴었다.

정환 옆에 있는 택이도 조용했기에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밖에서 뭐라 하는지 아주 선명히 들려왔다.

 

정문을 둥글게 싸고 이렇게는 안된다, 자신들도 시위를 해야겠다, 문을 열어달라 그렇게 소리를 빽빽 질러대는데도 선생님들이 꿈쩍하지 않자 큰소리로 구호를 외쳐됐다.

 

"전두환은 물러가라!"

"북괴는 오판 말라!"

"문을 열어줘라"

 

정환은 눈을 감아 버리고 무의식적으로 택이 손을 잡았다. 그러자 함성이 저 멀리 사라지고 정환의 심장소리만 들리기 시작했다.

쿵쿵대는 소리가 너무 커 택이한테도 들릴까 싶어 눈을 슬며시 뜨고 택을 멍하니 쳐다봤는데 택은 덜덜 떨며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택아 울지 마"

 

정환이나 택이나 서로 자신의 것으로 힘들어했다.

택은 자신이 용기를 내지 못해 힘들어 했고 정환은 시도 때도 없이 가둬버린 마음이 나오려는 것을 무서워했다.

 

"시위를 한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많지 않고 지금 상황은 좋지 않아 난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정환은 한치의 의심도 없이 이렇게 생각하고 믿고 있었다. 자신은 시위에 눈 돌릴 틈이 없다고 생각했다. 난 대학을 가야하고, 안간힘을 써 내려온 광주에서 택이를 만났다, 이제 그걸로 끝이나 야 한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 다가오고 있는 거 같았다.

 

"택아"

".. 어 정환아"

"집에 가자"

"그래 집에 가자"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둘은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보았다. 그 장면들은 마치 시간이 라도 멈춘 것처럼 아주 천천히, 스쳐지나 갔다.

 

옆쪽 길모퉁이에서 교련복을 입은 학생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반대쪽에서는 계엄군 두 명이 걸어가고 있었고, 학생이 지나가다 몸을 계엄군과 스쳤다. 그러자 계엄군 한 명은 학생에게 곤봉을 휘둘렀다. 학생은 맞으면서 두려움에 떨며 같은 말만 반복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요."

 

그러나 계엄군은 무시하고 계속 곤봉을 휘두르다 끝내 화가 가라앉지 않는 듯 허리춤에 차여 있던 권총을 들었다. 총구에서 나오는 쇳덩어리는 정확히 학생의 심장에 박혔고 학생은 눈도 감지 못하고 쓰러져 죽고 말았다. 계엄군들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걸어갔고, 택은 다리에 힘이 풀려버려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환은 택을 일으켜 세우고 죽어 있는 학생에게 다가가 눈꺼풀을 내려주었다. 정환과 택은 다시 집으로 걸어갔고, 둘은 한동안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정환은 일이 있고 나서 예전과는 다르게 눈빛이 바뀌었다. 그 눈빛이 지금까지 억제해왔던 분노였을까 아니면 정의로움 그것도 아니라면 어린 날의 치기 일까.

 

"택아"

"...응"

"나 시위하려고"

"뭐...?"

"너도 하려고 했잖아 그래서 하려고 "

"...어..근데.. 아니야 아무것도 "

 

정환은 시위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언젠간 택이에게 지금은 나가지 않게 움켜쥐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말하기 위해.

 

그러나 택은 생각이 바뀌었다.

시위를 하려고 했으나 자신의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는 것을 처음 보았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시위를 하다 누군가의 총구에서 총알이 날라올 때 그것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거나 정환이라면. 택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생각하기 싫었다.

 

1980.5.17

총구에서 은색의 쇳덩어리가 빠르게 나갔다.

그 덩어리는 얇은 천을 뚫고 심장으로 향했고, 그대로 박혔다. 심장은 고통하며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온몸으로 표현했다.

빨간 피가 서서히 퍼지며 교련복에 물들고

몸이 덜덜 떨리고, 아무 말도 못하고 눈도 못 감은 채로 온몸의 신경이 멈춰 그렇게 죽어버렸다.

 

"택아..택아 일어나"

 

아득히 저 멀리서 정환의 목소리가 들렸고, 택은 눈을 떴다. 식은땀으로 몸이 뒤 덥혀 있었다.

 

"정환아.."

"왜 그래 택아 너 악몽이라도 꿨어?"

"어... 어"

 

꿈이었구나. 그러나 총소리는 꿈이 아닌 듯 계속 귀에 들렸다. 택이 덜덜 떨며 울자, 정환은 슬피 웃으며 택을 꼭 안아주었다.

 

“괜찮아 꿈일 뿐이야"

"정환아"

"응, 택아"

"시위하지 말자... 제발"

"택아 "

"무서워서 그래"

"택아 울지 마 일단 진정하자"

"나도 내가 이러는 거 싫어....근데 죽기 싫어 너 죽는 것도 싫어"

"...."

"너도 봤잖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거"

"....."

"제발 안 하면 안 돼?"

 

택은 비겁한 자기 자신에게 신물이 나고 진저리가 났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시위를 하겠다고 광주 사람들이 무슨 죄냐고 말했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았다. 자신도 그렇게온몸의 신경이 멈춰 차가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택은 숨어버렸지만 먼저 숨은 정환은 앞으로 나섰다.

 

1980.5.18.

이미 전국적으로 계엄령이 선포됐다.

 

"계엄령이 확대되면 9시 40분까지 도청 분수대로"

 

시민 군들과 시민들이 한 약속이었다. 정환은 택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 준비를 했다. 힐끔 쳐다보니 택은 자고 있었고 안심하며 문을 열려는 찰나에

 

"정환아 어디 가?"

"어? 아..도청"

"도청? 도청은 왜?"

"서류 작성할게 있다 그래서"

"정환아 오늘 일요일이야"

 

택의 우는 것이 보기 힘들어 정환은 택에게 마지못해 시위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경계선을 넘어 버렸다. M16이나 K-1A, K-5를 잡고 싶어 했던 정환이 대신에 칼빈과 LMG 기관총을 잡아버렸다.

 

"그게 택아.."

"너 지금 시위하러 가는 거지?"

"아니야"

"정환아... 거짓말하지 마"

"택아 그게"

"가지마 너 안 가도 사람들 다 하잖아.. 응?"

"택아.. 나 가야 해 이유가 생겼어"

"무슨 이유.. 목숨 걸고 하는거 잖아"

 

정환은 씩씩거리며 화를 내고 있는 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택아, 너한테서 당당해지고 싶어서 그래, 넌 무서워 해도 돼 내가 방패막이 될게. 이일이 끝나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이 흘러갈 때 그때는 이맘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할 수 없다 해도 내가 만들어 볼게 예전 같은 광주.

 

"택아"

"왜 "

"미안해.. 택아"

"...."

"내가 나중에.. 다 끝나면 말할게"

"정환아.. "

"응"

"꼭 끝나면 말해줘"

"그럴게"

 

정환은 택을 한참이고 쳐다보다 도청의 분수대로 향했다. 저 멀리서 아득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지체되어 시계를 보니 10시 13분이 되었다.

정환은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숨겨버린 뒤 였지만 눈은 그들을 향해 있었다. 한 남자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고, 그 뒤에 다른 남자를 사병이 연행해 오는 것을 정환이 고개를 돌리자 길 건너편에 시민들이 숨어 숨죽이고 지켜보는 것이 보였다. 정환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지만, 그냥 무작정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두 명의 학생이 걸어오는것을 보았다. 한 명은 다친 듯 절뚝거렸고 다른 한명은 부축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정환은 뛰어가 절뚝거리는 학생을 부축했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걸었다. 그때 세 네 명의 공수부대 사병들이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정환은 당황하며 말을 해보았지만

 

"저기요 사람이 다쳤어요."

 

사병은 아무 말없이 정환을 향해 곤봉을 내리쳤다. 그 사이에 멀쩡하던 학생은 도망을 갔다. 사병은 학생을 쫓아가 넘어트린 뒤 M16을 그 학생의 심장에 그대로 쏘았다. 정환은 사색이 되었고 눈빛이 초첨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표정을 본 사병은 피식 웃으면서 총을 꺼내들었다.

 

정환은 머리가 깨질 거 같은 고통에 신음하며 깨어났다. 각종 소음이 들렸다. 최루탄 파열음, 엔진 소리 ,사병들의 대화 소리까지 정환은 팬티 차림에 온몸에 피범벅이었다. 정환은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던 중 사병들이 군용트럭에 타라고 큰 소리로 외쳐됬다. 정환은 그곳에 자신과 같은 차림의 시민 스무 명을 보았다. 사병들은 계속해서 시민에게 시비를 걸었고 폭력을 가했다. 정환은 자신의 빰을 툭툭 쳐대는 사병을 쳐다보고 배를 그대로 찼다. 사병은 고꾸라졌고 정환은 달리는 군용트럭에서 뛰어내렸다. 사병은 씩씩거리며 총을 쏴댔지만 이미 멀어진 뒤였다. 정환이 온 힘을 다해 달렸지만 몇 시간이 흐른 뒤에야 택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택아..."

"너 왜 이제... 정환아.. 무슨 일이야 너 얼굴이랑 몸이 왜 이래 응?... "

 

택은 말을 더 못 잊고 눈물이 눈에 그렁하게 맺혔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정환의 상처 난 몸에 약을 발라 주었다.

 

"택아.."

"왜.."

"미안"

"뭐가 미안한데 "

"그냥 다친 거"

"알면 하지마 정환아.. 제발 "

"택아"

"..."

" 끝나면 꼭 할 게 있어"

"그거 꼭 끝나고 해야..."

"조금만, 택아 조금만 기다려줘"

 

정환은 택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잠을 자는

척했지만 사실 숨쉬기도 벅찰 정도로 머리가 아파왔다. 서툴게 부친 반창고에서 피가 찔끔 씩 세어 나왔고, 정환은 쉬지 않고 나는 피비린내에 질색하며 잠을 설치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1980.5.19

정환은 디 틀리는 머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이마에서 흐른 피가 얼굴에 바싹 마른 채로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눈이 빨갛게 충혈된 택이 일어났다.

 

"정환아.."

"응"

"너 빨리 일어나 병원 가자"

"나 안 가도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정환은 지친 몸을 겨우 일으켜 머리를 부여잡고 얼굴에 잔뜩 묻어 있는 피를 싰어내고 보채는 택에 이끌려 병원으로 갔다.

 

병원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죽어 있거나, 고통스러워 신음하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 정환은 한참 뒤에 있는 자신의 번호표를 보며 서있었다.

택은 불안한지 입술을 깨물었고 시간이 계속 흐르자 훌쩍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정환은 아무 말 하지 않고 택을 꼭 안아주었다.

그냥 안았을 뿐인데 시간이 멈춘 것처럼 주변이 조용해졌다. 이 세상에서는 정환과 택 밖에 없는 것 처럼 둘을 빼고 흐려졌다.

 

"택아"

"응"

"너 시위 안 해서 다행이다"

"... "

"진짜 너는 안 다쳐서 다행이야"

"조용해 김정환"

 

정환은 인상을 찡그리며 눈물을 훔치는 택을 보며 생각했다.

 

택아 네가 다치지 않아서, 무서워해서 나한테 의지해서 나쁘게도 너무 좋다. 많이 늦게 깨달은 거 같은데 택아 니가 나한테 전부인 거 같아. 너를 중심으로 내 모든 것이 돌아.

 

미쳐 말하지 못하고 삼켜버린 말을 정환은 다시금 삼키고선 택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택아, 있잖아"

"응"

"이야기하나 해줄까?"

"너 안 아프지?"

"아니 진짜 아파 근데 이거 이야기하고 싶어서."

"에효.. 뭔데"

"세상에 사람들한테 색깔이 있어. 권력이 있고 강한 사람들은 진한 색깔이야, 힘이 없고 약한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 색깔이고 그 색깔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아. 진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씹어 먹고 사라지게 해도 그들을 비판하고 맞설 사람이 없어. 왜냐면 색깔이 진한 사람들을 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흐릿해 그 사람들이 존재하는지도 모를 만큼 근데 그 희미하게 존재하는 사람들이 진한 사람들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 뭉치기 시작해 괜찮아 이야기?"

"응"

"그래.. 그럼 더 이어 갈게 더 희미해져서 사라지고 싶지 않아서 한 명 한 명이 뭉치자 투명하던 색채가 하나둘씩 조금씩 진해졌어. 그러자 진한 사람들이 그들을 보기 시작했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데?"

"어떤 결말일 거 같아?"

"모르겠어 근데 슬픈 결말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나도 그래"

 

정환은 한참을 기다려 진료를 받았다. 단순히 이마가 찢어진 것이라고 했지만 택은 울음을 터트렸고, 택을 한참이고 달래다가 7시를 넘어서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시민들로 북적였었다.

사람들이 분노에 차있었고,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집으로 가는 시간이 계속 지체되었다.

정환과 택은 사람들 사이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두 손을 자신들도 모르게 꽉 잡은 채로

 

어느새 시계가 8시를 가리켰다.

그때 수많은 시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외치기 시작했다.

 

"전두환 타도"

 

큰 소리로 타도하고, 몇 만 명이 하나가 되어 외쳤다. 시민들은 아주 강해 보였다. 그들을 이길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1980.5.20

고요한 정 막을 깨트리며 전화 소리가 들렸다. 정환은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정환이니?"

"네 누구세요"

"담임 선생님이다"

"아 네 선생님"

"휴교령이 내렸어 학교에 오지 마라 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만"

"네..."

"택이랑 같이 살지?"

"네"

"택이 잘 챙기고 몸조심하고"

"네.. 그럴게요"

"그래 조심해라"

"네.. 들어가세요"

 

"누구 셔?"

 

택은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물어 왔다.

 

"선생님 학교 휴교령이래"

"아..."

 

얼마 안 있어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네 엄마 "

"어? 지금 학교 갈 시간 아니니?"

"맞아요 휴교령 내려져서 안 가요"

"휴교령?"

"네. 한동안은 안갈꺼 같아요."

"그래? "

"네 너무 걱정은 하지마세요 잘 있어요"

"정환아... 광주에 큰일이라도 있니?"

"네...아니?.. "

 

걱정하는 목소리가 드렸지만 정환은 이야기를 더 들을 수가 없었다.

토할 거 같이 매스껍고 머리가 아파 왔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내 눈앞에서 맞았고, 죽고, 피를 토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광주가 아닌 곳에서는 모른다. 그들은 이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감추고 숨기고 없던 것처럼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정환아"

"어..택아"

"어머님이셔?"

"응"

"왜 그래? 머리 아파?"

"어 조금"

"많이 아파? 어떡하지.."

"택아.."

"응,정환아 약이.."

"저번에 했던 이야기"

"어..? "

"그거 마저 이야기해줄게"

"갑자기... 그래.."

"흐릿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뭉쳐서 강해진 줄 알았어..... 그런데 생각보다 진한 사람들이 너무 강하고 치사한 거야..."

 

정환은 말을 하며 꾹 참아 왔던 울분을 터트렸다. 이제 자신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눈에 선명히 그려졌기에

 

"정환아..."

"그래서... 무서워해 과연 이길수 있을까?

아니 살수라도 있을까? ... 만약 사라진다면 누가 기억이라도 해줄까? 이거 진짜 비참하다. 나도 이런데 저곳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

"있잖아..이런 생각 웃길지도 몰라 근데.. 택아 나는 우리가 이길수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 아니야 누군가는 아니 광주가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은 우리가 싸우고 있다는 것도 몰라"

"정환아.."

"그래.. 네 말대로 슬픈 결말은 아니였으면 좋겠어"

"...그럴 거야"

 

정환과 택은 한참을 가만히 창문을 바라봤다.

머릿속은 새하얗게 떠다녔고 허탈한 심정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가슴을 쳐봐도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살려고 있는 힘껏 발버둥 친 행동을 아주 가뿐히 짓밟았다.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기적은 가끔씩 아주 간절히 바라면 찾아온다. 물론 기적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기적이다.

 

"정환아...."

"왜 그래?"

"저기 연기.."

"연기?"

 

정환과 택은 하염없이 연기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날 밤은 몇 차례나 큰 총소리를 들었다.

분명히 듣지 못했지만 들렸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비명소리, 숨이 끊어지는 소리가

 

1980.5.21

정환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기만 해도 아직도 익숙지 않은 아니 익숙해질 수가 없는 총소리가 귀를 지나갔고 결국 정환은 눈을 떴다. 택은 지쳐잠들었는지 숨을 색색 쉬고있었다. 정환은 이불이 부스럭거리지 않게 조심하며 일어나 옷을 주워 입고 나갔다.

 

해도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많았다.

저 멀리서 몇몇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초록색의 리어카를 끌어 광장에서 이곳 금남로까지

리어카 안에는 잔혹하게 죽은 시체 두구가 있었다.

그 시체 두구는 피가 잔뜩 묻어 있는 맨발에, 차마 감지 못한 눈, 한없이 일그러져 있는 표정까지

 

저 멀리서 대학생 한 명이 비장한 표정으로 걸어오더니 바닥에 굴러다니는 확성기를 잡고 외쳤다.

 

"여러분 이곳을 보십시오. 지금 계엄사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다 하였는데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처참히 죽어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때 상공에서 들리는 헬기 소리와 확성기 소리에 사람들은 모두 하늘을 쳐다봤다.

 

"폭도들에게 알린다 지금 즉시 해산하라"

 

사람들은 이 말을 듣자마자 각목과 쇠막대기를 흔들며 일제히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대형 간판이 쓰러지고 정류장 입간판, 공중전화박스 따위로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이곳 넘어서는 경찰들이 최루탄을 던지고 있었다. 정환이 택이 걱정되어 집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누군가 정환을 잡았다.

 

"야 이거 던져"

"네?"

"던지라고"

"소주 병을 던져봤자 "

"그냥 소주 병이 아니야"

 

그 말을 하고 소주 병에 불을 붙이더니 있는 힘껏 전경들이 있는 곳으로 던지자 불꽃이 전경들 발밑에 떨어졌다. 정환은 어리둥절해하며 자신이 잡고 있던 화염이 들어 있는 소주 병을 전경들에게 던졌다. 길게 쭉 뻗은 금남로는 시민들로 넘쳐났고 시민들은 함성과 노래를 합창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정환은 주변을 몇 번 보더니 집으로 돌아가려고 있었던 자리를 벋어날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 정환을 툭툭쳤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택이 해맑게 웃으며 정환을 쳐다보고 있었다.

 

"택아 너 왜 왔어"

"그냥 "

"빨리 돌아가자

"됐어, 들어보니깐 이제 끝이라는데 시민대표가 도청에 들어갔대"

 

그때 하늘에서 헬기가 낮게 접근하며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분 저는 전남의도지사 입니다. 진정들 하시고 제 말씀을 들어주세요. 금일 정오까지 계엄군을 철수시키도록 해볼 테니 해산해 주십시오"

 

시민들은 박수와 환호소리를 보냈다.

저 멀리 바리게이드 넘어서 전경들이 철수 준비 하는것이 보였다. 5월의 뜨거운 태양에 아스팔트 바닥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전경들이 빠지자 군수 사병들이 경직된 표정으로 시민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민들은 신이 났는지 10분 남았다, 잘 가라 등을 큰소리로 외쳐됐고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웃었다. 5분이 남은 그때 도청 스피커에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애국가를 따라 불렀고 누군가는 울먹이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정환은 같이 웃고 있다. 무심결에 공수부대를 바라 보았다. 앞줄에 있던 한 명이 총에 탄환을 장착을 할 준비를 하는 것을 보았다. 정환은 옆에 있는 택을 툭툭 쳤다.

 

"택아... 뛰어"

"그게 무슨"

 

정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병들이 일제히 탄창을 꺼내 장착하고 곧바로 쏘 기 시작했다.

애국가가 흐르며 사람들은 하나둘씩 쓰러졌고 총구에서는 하염없이 총탄이 나왔다.

정환이 말한 뒤 바로 뛰어서 인지 좁은 입간판 뒤에 숨을 수 있었다. 쉼호흡을 한 뒤 비처럼 총알이 날라다는 곳을 쳐다 봤다. 아이 한 명이 울부짖고 있었다. 아이 아빠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아이를 데리로 간 그 순간 아빠의 등짝에 구멍이 뚫렸고 아이는 아빠 위에서 버둥거리다 총탄이 날라오는 그곳에서 이리저리 다니며 울었다. 아무도 아이를 보지 않았다.

 

"택아 나 같다 올게.. 저러다 저 아기 죽어"

"정환아..."

 

정환이 총탄을 헤집고 달려갈려는 그 순간 아슬아슬 하게 총탄을 피하고 있던 아이의 작은 어깨가 터졌고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정환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숨을 헐덕이며 떨고 있었다. 어깨에서는 피가 쉬지 았고 나오고 있었다. 정환이 뛰어가려고 하자 택이 정환을 꽉 잡았다.

 

"안돼, 너도 죽어"

"그치만 택아.."

 

그 순간 쓰러져 있던 아이에게 다가가던 학생이 날라오는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시발 새끼들 야 이 좆같은 새끼들아.. 니네가 사람이냐 "

 

정환은 계엄군들을 향해 외치고 선 저 멀리 나뒹구는 낡은 철판을 방패 삼아 총탄을 피해 아이에게 달려갔다. 총탄은 쉬지 않고 날라왔고, 사병들이 총을 너무 쏴대 총구가 하얗게 피어올라도 멈출 줄 몰랐다. 총탄은 철판을 뚫고 정환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고, 철판을 뚫지 못한 총탄이 튀기며 포연이 날렸다. 하얀 연기가 흩날렸다. 아이는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고, 온몸을 들썩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정환은 아이를 업고 총탄을 피해 다시 반대쪽으로 뛰어갔다. 정환은 아이를 한 손으로 잡아 어깨에 기대게 한 뒤 다른 한 손으로는 체력이 약해 잘 뛰지 못하는 택이 손을 잡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아이의 몸과 맞닿은 부분에서 새빨간 피가 물들어 있었다.

 

병원은 예전보다 정상인 사람들이 더 없었다. 죽어있거나 죽기 직전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정환은 이리저리 주변을 살폈지만 환자들만 보일뿐 의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의사 한 명이 수술실에서 나왔고, 정환은 의사에게 달려가 애원했다.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아이는 산소호흡기를 꽂고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정환은 초조해하며 바라보았고 택은 입술을 꽉 물었다. 전기 충격을 수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모니터에는 동일한 기계음과 일직선만 보였다. 의사가 착잡한 얼굴로 죄송하다고 이야기를 꺼내자 택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한 번만, 한 번만 다시 하면 안 돼요?"

 

의사는 고개를 가로졌자 택은 털썩 주저 않았고 정환은 의사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야, 이렇게 죽을 리가 없잖아... 나.. 아직 이 아가 이름도 몰라요 근데.. 죽어요?.. 아직 따뜻한데 이렇게 따뜻한데.."

 

택은 주저앉아 울면서 말했다.

 

"더 해봐주세요. 제발요 당신 의사잖아요.. 그렇잖아요. 살려내 주세요.."

 

아이는 평온하게 아무것도 격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편안히 눈을 감고 있었다. 아이 장례식을 부탁드리고 정환과 택은 병원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구석진 골목을 들어가자 누군가 고개를 내밀고 정환을 보더니 잡아 총을 건넸다. 교련복을 입은 학생이었다.

 

"누구세.."

"이거 터미널에서 시민 군 들이 나눠준 건데 댁도 쓸거면 써요"

"아.. 저 시위.."

"안 쓸 거면 말고"

"아니.."

 

정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 멀리 빌딩에서 기관총을 가지고 시위대를 집중사격하는 것이 보였다. 총을 한번 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쓰러졌고, 붉은 피가 총구에서 총알들이 흘러나올 때마다 흘렀다. 정환은 망설이다 자신에게 건넨 총을 꽉 잡고, 공수부대가 있는 빌딩을 한번 노려보았다.

택은 심호흡을 하더니 떠나려고 하는 학생을 잡았다.

 

"저기.."

"어?"

"저도 총 주세요."

"뭐요?"

"저도 쏠 줄 알아요"

"그래요? 하나 더 있어 줄게요"

 

정환은 잠깐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위험해 택아"

"괜찮아 "

"..."

"아가... 복수해주려고"

 

정환과 택을 쳐다보던 학생은 택에게도 칼빈을 건네고 떠났다. 택은 총을 받아 소중한 물건처럼 한번 쓰다듬고 꽉 잡았다.

 

"택아.. 가자"

"응"

 

텅 빈 금남로에서 도로를 사이로 두고 총격전을 벌이는 시민 군과 계엄군 총탄이 날라다는 가운데 곳곳에서 총격을 당한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정환은 트럭 뒤에서 몸을 숨기고 격발하기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공수 사병들이 쉬지 않고 사격을 가했다. 정환은 인상을 찡그리고 하늘을 봤다. 무심코 보이는 빌딩. 거기 계엄군들의 저격수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관총을 쏘고 있었다.

 

"택아."

"어.."

"나랑 저 빌딩으로 가자"

"어..? "

 

정환은 아무 말없이 빌딩을 가리켰고 택은 한번 쳐다 보더니 정환을 따라 일어섰다. 먼저 걸어가고 있는 택을 정환이 붙잡아 손을 잡았다.

 

"정환아.."

"그냥 이러고 싶어서"

"뭐야"

 

택은 그냥 웃으며 걸어갔고 정환은 오랜만에 잡은 두 손에 심장이 요동쳤고, 총소리도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일빌딩 옥상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자 이 생각을 정환만 한건 아니었는지 이미 시민 군과 계엄군들이 싸우고 있었다. 저격수 중 한 명이 M16을 들어 거총하자 정환은 들고 있던 칼빈으로 쳐버렸다. 저격수가 휘청하자 M16을 빼앗아 들었고 저격수가 정환에게 덤벼들었다. 그 와중에도 정환은 계속 택을 보면서 택아 빨리 피해, 도망가 하염없이 외쳐됐고, 몸싸움을 벌이다, 정환이 휘청거리며 M16을 놓쳐 택 앞에 놓이게 되자 택은 화들짝 놀라 정환을 쳐다보다 M16을 들었다. M16을 놓치자 화난 저격수는 개머리판으로 정환을 내리찍었고 아슬하게 피하며 정환은 저격수의 빰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저격수는 허리에 찬 칼을 가지고 정환에게 달려들었고 정환은 칼을 맞잡고 저항했다. 점차 저항하는 손이 내려갔고 칼이 정환의 목덜미에 닿을 듯 말듯할 때 탕 소리를 났고 저격수가 쓰러졌다. 정환이 놀란 표정으로 택을 쳐다보자 택은 덜덜 떨고있었다, 그리곤 M16을 바닥에 두더니 택은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환아.. 내가 사람을.. 죽였어.."

"택아.. 괜찮아,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LMG 기관총을 옥상 난간에 설치하고 정환은 입술을 깨물며 도청을 향해서 격발했다. 요동치는 탄약 벨트를 택이 눈물이 맺힌채 잡고 있다. 도청 방향에서 시민들의 함성이 들린다. 난간에서 보자 수십 대의 공수 부대가 철수하는 것이 보였다. 어느덧 하늘이 붉게 물들고 경찰들이 버리고 간 진압용 도구들과 여기저기에 있는 바리케이드 불탄 버스 와 트럭들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여러분 놈들이 완전히 물러갔습니다"

 

이 말에 시민 군들과 시민들이 일제히 만세를 외치고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웃고 또다시 울고를 반복했다. 정환이 택을 보며 씩 웃자, 택도 정환을 보며 웃었다.

 

"택아."

"응"

"우리가 이긴 게 맞을까?"

"그렇지 않을까?"

"그런가.."

"아닌 거 같아?"

"어, 이게 끝이 아닌 거 같아"

 

1980.5.22

아침부터 상무관으로 정환과 택이 갔다.

태극기로 싸인 관 그러한 관들이 수십 개가 노여 있었고, 숨이 멎을 만큼 오열하는 사람들 그사이로 초점이 흐려진 정환과 택이 걸어 한 관 안에 멈춰 섰다. 그 관의 주인인 아이는 사진에서 아주 해맑게 웃고 있었다. 택은 숨을 삼키고 아이의 관위에 국화꽃 한 송이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놨다. 그러다 택은 참았던 눈물이 터트렸다. 처음 본 아이였고, 이름도 몰랐지만 정말 간절히 빌었다. 살려 달라고, 살려주세요. 아무 잘못 없는 아이잖아요. 숨을 다시 쉬고 웃을수 있게 살려주세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진심을 다해 기도했었다.

 

정환은 울지 않으려고 이를 꽉 깨물었지만 눈은 어쩔 수 없는 듯 눈가에 물이 고였다.

 

"정환아.."

"...어"

"저기 아가 이름.."

"..."

"인성이네, 박인성"

"인성아.. 내가 너무 늦게 알아서.."

 

정환은 말을 더 못 이어가고 입술을 깨물며 하염없이 아기가 웃고 있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택은 그런 정환을 보며 다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군용지프에서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분 지금 부상당한 우리의 형제, 자매, 부모들이 피가 모자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 애달픈 목소리에 택은 아기가 떠올랐다. 죽기 전에 파르르 떨며 피를 흘리던 모습 평생 잊지 못할 거 같다. 사진에서만 본 웃는 모습도 함께.

 

정환과 택은 애원하는 소리가 귀에 맴돌았는지 병원으로 갔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다시 돌아가는 길은 어느새 사람들이 많이 다니기 시작했다. 상점들도 다시 문을 열기 시작해 한산하던 도로에 소리가 들렸다.

 

"정환아"

"응.."

"진짜 돌아온 거 같다"

"그러게 이제 끝난 거 같다.."

"이제 나한테 말해줄 수 있어?"

"뭘"

"끝나면 이야기해준다며"

"너.. 이야기들어도 안 도망갈 거야?"

"무슨 도망이야 너 없으면 나 못 살아"

"택아...있잖아.."

"....응"

"아니다 나중에, 나중에 말할게"

"정환아.. 나도 할말 있어..."

 

 

정환은 하얗게 웃으며 택의 눈을 쳐다봤다. 웃는 것만으로도 선명히 도드라지는 감정, 택도 분명 그런 눈빛으로 정환을 쳐다봤지만 정환의 눈빛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응, 말해"

"정환아.."

 

택이 말을 꺼내려는 찰라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고,

 

"뭐라고 택아? 잘 안 들려."

"아니야.. 나중에.. 나중에 말할게."

 

푸른 하늘의 색깔이 서서히 물들면서 붉어지고 있었다. 오늘의 하루가 서서히 저물어 갔다.

 

1980.5.23

햇빛이 창가에 들어왔다. 따스한 빛은 어느 5월처럼 빛낯고 이번 5월도 햇빛은 다르지 않았다.

 

"총기를 소지한 시민 군들은 즉시 광주공원으로 모이시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정환은 시끄러운 소리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택을 깨웠다. 택이 눈을 뜨고 옷을 입을 때 정환은 총을 챙기고 밖을 나설준비를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듯 하나는 집에 그대로 두고 하나만 챙기고 집을 나섰다.

 

공원으로 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교련복을 입은 학생들, 까까머리를 하고 있는 중학생, 이마에 주름이 진 나이 드신 분까지 사람들에게 "무기 반납" 이란 흰 끈을 두른 대학생들이 사람들에게 무기 반납을 요구하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 명이 화가 났는지 그들에게 총을 겨누며 말했다.

 

"새끼들 하는 짓들 보소 다 뒈졌어 아니 총을 이제 와서 달라고? 돌아버렸는가? "

 

대학생들은 겁에 질려 손을 들고 눈치를 보고 미안하다 빌면서 뛰어갔다.

정환과 택은 무기를 회수를 하는 대학생에게 총을 건네주었고 다시 집으로 걸어갔다.

 

"그거 끝은 어떻게 될까?"

"무슨 끝?"

"예전에 보다만 영화.."

"그러게.."

"사실 그거 기억이 안 나서..다시봐야 해"

"나도.. 기억하나도 안 나"

".....정말?"

"응, 집중이 하나도 안됐거든.."

"택아"

"....응"

"있잖아"

"..어"

"택아, 나 너 ... 아 왜 이렇게 떨리지. 좋아.. 아니 좋아해.. 아니야 장난.."

"나도"

"어?"

"나도 너 좋아한다고.."

"택아..."

"정환아..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택아..."

 

더 말을 못 잊고 정환은 택을 끌어안았다.

고마워서 좋아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싫다고 하지 않아서, 인상 찡그리지 않아서 , 정환은 뭔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아. 멍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왜? 진짜 장난이야?"

 

아무 말도 못하는 정환이 어색한지 농을 던지며 웃는 택을 지긋이 바라보며 정환은 말했다.

 

"아니.. 택아 고맙다.."

".. 고마울"

"어, 너무 고마워 택아"

 

정환은 일반적으로 향하던 눈빛을 택과 마주쳤다.

 

1980.5.24

더운 날씨가 포근하게 느껴질 만큼 기분이 좋았다.

닿을 듯 말듯하던 눈빛이 정환이, 택에게 택이, 정환에게 닿았다.

 

"택아 일어나자"

 

정환의 말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칭얼거리는 택을 보며 정환은 웃으며 바라봤고,

 

"택아 일어나야지 응?"

 

택은 얼굴을 이불에서 내밀고 자신의 옆을 손바닥으로 치자 정환이 다가왔다.

 

"..정환아 더 자자 응?"

 

정환은 마지못해 택이 옆에 누워,

다시 눈을 감고 있는 택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택아, 이렇게 행복해도 괜찮을까? "

 

택은 눈을 감은 채로 정환의 귀에 속삭였다.

 

"응, 돼 우리 그동안 힘들었잖아 .."

 

그말에 정환은 웃으며 택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1980.5.25

시민 궐기 대회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사건의 진상을 알리고, 자신의 것을 아무런 보상 없이 나눴다. 광주시민들이 계엄군과 협의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아슬아슬하지만 정리되는 것처럼 보였기에, 이제 더 이상의 죽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은 따스했다. 밖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쉬지 않고 들리던 총소리도, 시위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폭풍이 치기 전 바다가 아주 잠잠한 것 처럼.

 

"정환아.."

"응"

"되게 조용하다"

"그러게.."

"이러니깐 뭔가 두렵다"

"뭐가 무서워, 내가 지켜줄건데"

"너나 다치지마"

"알았어, 너도 지키고 나도 안다칠게"

 

1980.5.26

오늘따라 정환은 유난히 빨리 깨어났다.

무언가가 불안했다. 끝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아닌 거 같아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택이를 위험한 곳에 굳이 데리고 가고 싶진 않았다. 정환은 자고 있는 택을 보고 종이를 찢어 적었다.

 

"나 잠깐만 갔다 올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빨리 올게 걱정하지 말고 집에 있어 푹 자"

 

정환은 도청으로 뛰어가 봤다. 수십 개의 칼빈소총이 보였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광장으로 가니 또다시 궐기대회가 열려있었다. 광장 한가운데 시민 군 대장처럼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고, 그는 시민들을 향해 종이를 펼쳐들었다.

 

"자 이것이 미국 new york times에 나간 기사요. 인자 전 세계가 광주에 뭔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됐소 딱 5일만 버티면 우리가 이길 거라고"

 

사람들은 환성을 지르고 손뼉을 쳤다.

정환은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조금 걸었을 때 저 멀리서 탱크가 보였다.

정환이 깜짝 놀라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정말 탱크였다. 하나가 끝이 아니었다. 큰 소리를 내며 뒤에 하나가 더 오고 있었다. 정환이 놀라며 도청으로 뛰어갔다. 도청에 들어가서 아무나 붙잡고 말했다.

 

"허..허 헉 저 쪽.. 에서 탱크가.. 하 있어요 두 개 정도요.."

"정말인가?"

"예.. "

"고맙네"

"아닙니다"

 

정환은 시민 군에 알리고 나서 다시 집으로 뛰어갔다. 숨이 차서 헉헉 거렸지만 쉬지 않고 달렸다. 겁이 났다. 애써 아닌 척 했지만 두려웠다. 용기를 내서 시위에 참가했다. 누군가 죽는 것을 보았고 누군가를 총으로 쏴 다치게까지 했다. 역시 숨어 있을걸 그랬나 보다. 괜시리 불안해졌다. 이 느낌이 무서워 확인하러 온것이였는데 탱크라니 우린 죽은거나 틀림 없다.

 

택은 입술을 깨물고 정환이 남기고 간 종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문소리가 들렸고, 헉헉대는 숨소리도 들렸다.

 

"택아.."

"정환아.."

"택아, 우리 죽을지도 몰라. 도청 갔다 왔는데 탱크 봤어. 그러니까 우리..."

 

정환은 말을 더 이상 못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표정은 일그러지고 입술에서는 피가 났다.

피맛이 알싸하게 입안을 돌았다.

 

"정환아.. "

 

1980.5.27

시간이 많이 흐른 거 같았다. 귀에 또다시 익숙하게

들려오는 총소리, 비명소리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고 또다시 해가 뜨려고 할 그 순간 하늘은 어두웠지만 땅은 빨갛게 피로 물들었다. 우리는 목격하지도 죽이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 밖을 듣고 있었다.

 

"정환아.. 우리 진 걸까?"

"..."

"정환아.."

"어, 택아"

"우리 아니 광주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응, 아주 잠깐만 참으면 돌아갈 거야. 이런 일이 있었던지도 모를 만큼 나중에 십 년이 지나고 삼십 년이 지나면 오늘 덕분에 세상이 더 많이 좋아져 있을꺼야 그럴거야.. "

"그래, 그래야지"

 

그때 저 멀리서 아득하게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싸우다 죽어갔는지 잊지 말아주세요"

 

큰 소리로 총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 그리고 다시 들리는 확성기 소리.

 

"사랑하는 광주시민 여러분, 저희를 잊지 말아주세요."

 

"있잖아 택아,"

"응 정환아 왜?"

"아마도 난 이 5월 못 잊을 거야."

"나도 그래.. "

"난 다른 의미로도 못 잊을 거같아"

"다른 무슨 의미?" "

"너가 나를 보며 웃고,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순간들과 손 잡던 뛰어가던 그런 기억들"

"나도 못 잊을 거야.."

"택아, 수많은 끔찍한 일이 있었잖아. 근데 나는 너랑 함께 있는 한 순간순간이 소중해서 이런 끔찍한 기억조차 기억할거같아"

"나도 기억할 거야.. 전부다.."

 

그때 들리는 누군가의 절규 소리와 총소리

하늘은 어느덧 푸른빛이 맴돌고, 날이 밝아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가 용기가 없어 같이 싸워주지 못 해서 당신들이 차가운 방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듣고만 있어서 남들이 당신들을, 이 역사를 잊어버려도 저희가 잊지 않겠습니다.

 

하얀 종이가 빼곡히 검은 글씨로 채워졌다.

그러다 선명히 새겨진 글씨에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서서히 글이 번져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1980.5.18~1980.5.27 광주 민주 항쟁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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