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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에 내린 진눈깨비가 밤바람에 얼어 길은 드문드문 살얼음 낀 물웅덩이로 지뢰밭이었다. 정환은 가방을 둘러매고 팔짱을 꼈다.

 “와, 개춥네.”

 김정환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떡볶이에 소주를 마신 뒤 명륜동에 있는 최택의 집으로 향했다. 밑창까지 언 뻣뻣한 운동화가 적막한 골목을 누볐다. 불이 켜진 집은 하나였다.

 빈 호주머니를 뒤지다가 스포츠백 바닥을 긁어 열쇠를 찾아냈다. 열쇠는 뻑뻑한 구멍에 잘 들어가지 않았고 기어코 쑤셔 넣었지만 돌질 않았다. 잘못 꺼냈나 싶어 가로등 아래 비추어봤지만 다른 열쇠는 아니었다. 큰 고민 없이 가방을 던지고 담을 탔다.

 현관의 센서등이 고요한 거실을 비췄다. 집에서 먹이는 고양이가 소파 머리맡에 앉아 정환을 빤히 쳐다봤다. 벽을 더듬어 2층 서재 문을 열었다.

 “왔어?”

 택이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피곤에 싸인 눈은 조금 충혈 되어 있었지만 낯빛이 나쁘지 않았다. 김정환은 이 모든 상황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렇듯 술 냄새가 나는 자신과 피로한 최택과 조용한 집안.

 “어, 일찍 자라.”

 새벽 세시에 어울리지 않는 밤 인사를 하고 늘 신세 지는 방에 들어가 씻지도 않은 채 드러누웠다. 그 방에 있던 앉은뱅이책상이 사라지고 정환이 남겨둔 책이 덩그러니 맨바닥에 놓여있는 것은 다음날 아침에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택이 없네요?”

 “학생 일어났어? 국 있는데 밥 먹을 거야?”

 정환은 식탁에 앉아 도우미 아주머니가 퍼주는 밥과 국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았지만 깊게 따지고 들지 않으면 다른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무엇보다 물어볼 상대가 집에 없었다.

 정환은 볕이 잘 드는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읽다 등교했다. 명륜동에 있는 최택의 사택(私宅)에서 연건동에 있는 학교까지는 걸어서 이십분 남짓이었다.

 혜화로터리에서 멀지 않은 이 집은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택은 스무살이 되던 해 승단을 했고 집에 출가를 알렸다. 봉황당 골목 어른들이 이런 저런 말들을 해댔지만 택의 논리는 단순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자기도 골목을 졸업해야 한다는 것. 무성은 별 다른 반대도 않고 아들의 한마디에 살만한 아파트를 구해 주었다. 정작 무성이 반대한 것은 택이 명륜동의 단독주택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존경하던 선생님이 서울살림을 정리하고 귀향한다는 소식에 택이 무작정 인수를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무성은 걱정이 앞섰다. 쌍문동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가는 것은 나쁘지 않았지만 주택은 살림 하는데 손이 많이 갔고 평소 상기증이 있는 택이 좁은 계단이나 턱이 많은 고택(古宅)에 혼자 지내는 것이 영 께름칙했던 것이다. 결국 안살림을 봐주는 도우미 하나를 두고서야 무성은 승낙했다. 덕선은 택의 출가를 앞두고 고양이 두 마리를 선물했다. 집에서 고양이라도 먹이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않고 내내 앉아있을 것이 뻔하다는 것이었다. 택은 거절하지도 못하고 난처하게 고양이를 안아들었다.

 택의 이사를 도우면서 5인방은 이곳을 제 2의 아지트로 삼을 것이라며 입을 모아 웃었다. 정작 제 집처럼 드나드는 사람은 김정환 하나였다. 다들 뿔뿔이 흩어져 대학생활을 했고 그마저도 의대생인 정환을 제외하고는 군대를 가버렸기 때문에 덕선이 혼자 찾아오기에 서먹했던 것이다. 학교에서 뛰어오면 십분 남짓인 택의 사택을 정환은 아지트처럼 드나들었다. 얼마 안 가 택은 정환에게 열쇠를 하나 맞춰주었다.

 ‘문 열어주기 귀찮아.’

 더불어 본인 것처럼 쓰는 방도 생겼다. 이불 한 채와 앉은뱅이책상 하나가 덩그러니 있는 작은 방은 택의 작업실로 쓰고 있는 서재와 마주보고 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정환이 다시 택의 집을 찾았을 땐 대문 잠금쇠가 바뀐 정도가 아니었다. 맞지 않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정환이 이번에는 새 열쇠를 받으리라 결심을 하면서 담을 넘었다. 그 순간 사설 보안경비업체의 경보기가 작동했고 마침 인근을 돌던 순찰차에도 의심을 사 새벽 한시에 동네를 수선스럽게 만들고 말았다. 그 소란에도 정작 집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정환은 자초지종을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최택이 대문을 열고 나왔다.

 택은 순경과 실랑이를 벌이던 정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전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대국을 할 때면 사람이 바뀐다던데 택은 저런 얼굴을 하고 바둑판 앞에 앉을까, 순간 엉뚱한 생각까지 해버렸다.

 “뭔가 오해가 있었나 보네요.”

 택은 경비업체의 출동확인서를 받은 후에도 정환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수런거리던 움직임은 금세 정리되어 골목은 조용해졌고 정환은 어안이 벙벙한 채 밤거리에 서 있었다. 택은 들어가지도 그렇다고 정환을 부르지도 않았다. 그저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발, 그거 안 시렵냐?”

 정환이 턱짓으로 택의 맨발을 가리켰다. 순간 눈에 물기가 어렸다고 생각했다. 늦은 밤이었고 실내복 차림으로 바깥에 오래 서있느라 코와 귀가 빨갰다. 그러니까 건조한 찬바람에 탓일 것이다. 정환은 반응이 없는 택을 쳐다보았다. 내가 서운한 일 아니던가. 아닌가. 잘못을 한 일이 있나. 순간 이 모든 게 이십여년간 택을 알아오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낯선 기분임을 깨달았다. 의식하기 시작하자 어떻게 행동해야 자연스러운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나 집에 간다. 택시타면 얼마 걸리지도 않는 거.”

 정환이 돌아서자 등 뒤로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하고 걸쇠 걸리는 소리가 컸다. 슬리퍼가 질질 끌리는 소리가 멀어졌다. 대로변으로 나오기 전에 뒤돌아보자 2층 서재 불이 밝았다. 정환은 그 이후 이 집을 찾지 않았다.

 

 군대를 간 동룡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기말고사를 막 끝낸 유월이었다. 정환은 제법 여유를 갖고 도서관을 들락거렸다. 신문 열람대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다 책을 내팽개치고 술을 마시러다녔다. 인적도 차도 드문 밤의 대학로를 숱하게 걸어가면서도 잠만은 꼭 쌍문동에서 잤다. 정환은 그런 자신을 기특하게 여겼다. 숙취로 늦잠을 자다 번뜩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시계가 아니라 천장이고 책상이었다. 꿈속에서는 몇 번 만취해 그 집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은 없었고 익숙한 대문이라는 자각이 들기 시작하면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깼다.

 정환은 얼이 빠진 채 침대에 앉아있었다. 문이 열리던 참에 잠에서 깼고 방문에 걸린 블루라군 포스터를 보고 나서야 제 방인 것을 확인했다.

 “동생아, 도룡뇽에게서 전화가 왔구나.”

 치토스를 집어 먹던 손가락을 쪽쪽 빤 정봉은 무선수화기를 건네주고 방을 나갔다.

 “나왔냐.”

 -하, 김정환 뜨겁구만.

 “무슨 소리야.”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나 기다렸니?

 개소리마. 정환이 겨우 웃었다. 선우와 휴가가 겹치는 이틀 동안 택의 집에서 보내자는 것이 용건이었다. 대답도 하기 전에 전화가 뚝 끊겼다. 명륜동에 다니지 않은지 반년은 족히 지났다.

 사흘내리 같은 꿈을 꾸었다. 택이 대문을 열고 나오는 꿈을.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 야속 했던 그 밤 그 때처럼 슬리퍼를 신은 맨발이 대문 새로 나왔다. 호주머니를 뒤지는 것도 월담도 포기한 채 멍청하게 서 있는 정환 앞에 들어오라는 말도 가라는 말도 없는 최택이.

 “택이 없나?"

 각자 장 본 것을 한 짐씩 든 셋은 곤란해 하고 있었다. 벨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는 대문 앞에서 동룡은 선우를 찾았고 덕선은 짜증스런 투로 돼지새끼들이 따로 없다며 든 짐을 무거워했다. 내내 호주머니 속 열쇠를 만지고 있던 정환은 덕선의 봉투를 채서 들었다.

 “미안 미안. 야, 시끄러워 벨 그만 눌러.”

 군낭을 맨 채로 달려온 선우는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낡은 대문에 어울리지 않은 반질반질한 새 걸쇠가 달칵하고 풀렸다. 꼭 맞는 열쇠였다. 김정환은 실없이 웃었다.

 “벌써 더위 먹었네, 정팔이.”

 덕선은 짐을 든 정환의 어깨를 툭 치고 고양이들을 찾아다녔다. 덕선이 맡긴 고양이는 노란 눈의 밀빛 줄무늬 하나와 배가 하얗고 등은 검푸른 고양이였다. 야옹거리며 마당을 뒤지고 다녔다.

 집안에 들어가자 택은 2층 서재에 앉아있었다. 왔어, 하고 태연하게 대꾸하는 모습에 동룡이 달려가 꿀밤을 먹였다. 택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맞은 이마를 긁적였다.

 “문 왜 안 열어줘. 열어 놓든가.”

 아아. 택은 힘없이 웃었다. 지난 겨울과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 이 방도 얼굴도 하얗게 질린 그대로였다.

 택이 조금 뒤늦게 웃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면서 친구들이 하는 말을 곰곰이 들었다. 여전히 티비와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들에 어두웠고 군생활도 대학생활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들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조심성 있게 쳐다보고 곱씹고 있으면 친구들이 비비적대며 손을 잡아 당겼다. 정환은 얼마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분위기가 오히려 설었다. 바뀐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가끔씩 영문 모를 표정을 지으며 친구들의 수다와 소란스러움을 상대하던 택이 조심스럽게 자리를 일어났다. 달려들어 먹어 치우던 음식들은 바닥이 났고 어울려 마시던 술도 적잖이 비어서 다들 거실 여기저기에 누웠다.

 덕선과 동룡이 지껄이는 말들을 흘려들으며 정환은 커다란 거실 창을 넘겨다보았다. 택은 포대에서 사료 한바가지를 퍼 현관 입구에 있는 밥그릇에 부어주었다. 평소 보지 못하던 고양이 몇 마리도 모여들었다. 덕선이 선물한 고양이 둘은 집안과 밖을 자유롭게 다니며 지냈고 택은 집 안팎에 밥그릇을 두고 고양이를 먹였다. 동네 고양이들도 심심하면 이 집 마당을 뛰어 다니고 밥을 먹으러 드나들었다. 개 중에 살가운 한 마리가 택의 발등에 고개를 부볐다. 택은 엉성한 자세로 만지지도 떼 내지도 못한 채로 서 있었다.

 머릿속이 쨍할 정도로 찬바람이 불었던 그 밤이 생각났다. 수런거림이 사라진 골목에서 택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정환을 쳐다봤다.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아니 정환은 무슨 말이든 해주길 바랐다. 미친 새끼라고 욕이라도 하길 바랐다. 그렇다면 말도 없이 열쇠를 바꾸어 버린 일을 대수롭지 않게 물어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깨동무를 하며 장난스럽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 그랬냐고. 무척이나 서운했다고.

 반응이 없자 제 풀에 떨어져 나간 고양이가 물그릇에 고개를 처박았다. 택은 그릇을 핥고 있는 고양이들에게서 몇 걸음 떨어져 담뱃불을 붙였다. 후드득 하고 창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유리창 위로 빗금을 치며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고 정환이 일어났다.

 “우산 줄까.”

 처마 밑으로 바짝 붙어선 택이 고개를 돌렸다. 담배를 든 손을 휘휘 저었다. 됐어.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말한 택은 빗물이 튀는 고양이 밥그릇을 쳐다봤다. 정환이 제 앞에 놓인 그릇을 발로 밀었다. 택은 빗물이 들이치는 제 발끝을 보고 있었다.

 가늘고 긴 목 위로 머리카락이 살풋 덮였다. 머리카락이 길고 뺨이 조금 야위었다. 굵은 비가 되지 못한 옅은 물방울이 머리칼에 달라붙었다. 내리는 비에도 불구하고 식히지 못한 잔열로 이마에 땀이 서렸다.

 좁은 처마 아래서 정환은 남이 피우는 담배 냄새를 맡았다. 한참 말이 없었다. 좀 이상한 걸까. 사실 언제나 둘은 대화가 길지 않았다.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대답할게.”

 잠긴 목소리에 끝말은 공기 속에 흐려졌다. 눈이 마주쳤다.

 정환은 택과 있을 땐 늘 평소와 같이 지내려고 노력했다. 어제의 나, 일 년 전의 나 그리고 십년 전의 나와도 달라지지 않는 것. 오늘의 나는 항상 어제의 나와 비교 당했다. 마음속에서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것들을 감당할 수 없어지면 말을 아끼고 딴청을 피웠다. 그렇게 속을 어지럽히며 불쑥불쑥 들이미는 생각들을 에둘렀다.

 모든 것에 의미를 두거나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생각했고 단순하게 움직였다. 어떤 다짐이나 구호도 만들지 않고 명륜동을 드나들었고 택과 마주앉아 밥을 먹었다. 명확한 결심이 없었기 때문에 들통 날 의도 같은 건 없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택이 알 리가 없었다.

 이 마음을.

 어떤 단어로든 정리를 해 버리고 나면 사실이 되고 그 이후 모든 감정은 그 단어를 통해서만 파생될 것 같았다. 손 쓸 방법도 없이 엉망진창이 되고 말 것이다.

 누구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택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한숨처럼 연기를 뱉었다. 정환이 힘겹게 입을 뗐다.

 “너 내가 얘기했지.”

 되묻듯 눈을 동그랗게 뜬 택이 쳐다봤다.

 “그거. 머리 나빠진다고.”

 뭐야. 택이 웃었다. 진짜라고. 학교에 골초들 다 병신이야. 둘이 마주 보고 웃었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잘 가꾼 마당이 비로 젖었다. 처마를 타고 빗물이 흘렀다. 두 발 모두 젖었다. 제 발보다 작은 슬리퍼를 신은 정환이 발을 털었다. 둘은 반쯤은 젖은 채로 좁은 처마 아래 서 있었다.

 “택아, 비 온다. 우리 짬뽕 시켜줘.”

 

 동룡이 거실창에 매달려 손을 흔들었다. 뒤에 누워있던 선우가 발로 동룡의 엉덩이를 찼다.

 다섯은 짬뽕을 시켜 먹는 대신 택이 끓여준 라면을 먹었다. 다들 기특해 하는 눈치를 줘서 택은 어수룩하게 웃었다. 혼자 할 줄 아는 것이 많이 생겼고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더 많아졌다. 모든 것은 웃음 속으로 사라졌다.

 

 스터디룸 책상엔 노트와 책과 페이퍼와 과자부스러기와 술병으로 어지러웠다. 정환과 동기들은 다들 나름의 편한 자세로 숨만 쉬었다. 미친 듯한 쪽지시험은 사람을 피 말리게 했다.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찼다. 인명을 구한다는 사명감을 갖기 전에 내가 살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새벽 두시에도 낮 두시에도 수시로 모여 술을 마셨다.

 화제 거리는 금세 동났다.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없었고 사는 얘기도 지겨웠다. 책은 신물이 났다. 음주는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재밌는 일이었다.

 “아오. 미친 진짜.”

 원초적인 분노에 아무도 응해주지 않았다. 흔한 일이었다.

 “똥은 화장실 가서 싸라. 여기 화풀이 하는데 아니다.”

 벗었던 안경을 쓴 여동기가 휴대용 티슈를 던졌다. 일상적인 소음인 듯 다들 개의치 않았다. 정환은 열쇠 꾸러미를 만지작댔다. 집, 사물함, 명륜동. 애매하게 낡은 열쇠를 뺐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다. 돌려주는 것도 버리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정환은 열쇠를 도로 끼우고 호주머니에 넣었다.

 “나 간다. 족보 얻으면 입 닦지 마.”

 이미 열두시를 넘긴 시간인데도 더웠다. 가로등 불빛에도 열기가 있는 것 같아 정환은 부러 어두운 곳만 골라 걸었다.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원내로 들어왔다. 정환의 고개가 사이렌을 따라갔다. 차에서 내린 것은 유대리였다.

 정환은 택의 본가에 전화를 걸었다. 김해에 내려갔다는 진주의 대답에 말을 더하지 않고 끊었다.

 ‘공항서 열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아 모시러 갔다가….’

 별다른 증상 없이 갑작스런 혈압강하로 쓰러진 최택은 만 하루를 꼬박 자고 일어났다. 눈을 꿈뻑이던 택은 정신이 들자 번쩍 몸을 일으키다 악하는 소리도 못 내고 맥없이 다시 드러누웠다.

 “깼냐.”

 보호자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던 정환이 얼굴을 내밀었다. 시계를 찾아 눈만 데굴데굴 굴리는 택 앞으로 정환이 시간을 불러줬다. 두시. 새벽.

 “너 가야하는 행사, 그거 늦은 거야.”

 응. 택이 순순히 수긍했다.

 “사실, 가기 싫었어.”

 웃을 힘도 없어 눈썹만 팔자로 지었다.

 “집에 전화 했더니 김해 가셨다고 해서 전화 더 안 넣었는데. 어차피 신문에도 안 나왔고.”

 정환이 신문을 접어 협탁 위로 던졌다. 내가 있다 할게. 택이 힘겹게 모로 몸을 틀었다.

 “너 그거 왜 그런지 알지?”

 “…담배 많이 피워서?”

 어휴, 저거 정신 나간 새끼. 정환이 킬킬 웃으며 팔짱을 꼈다.

 “안 먹고 안 자서 그런 거야.”

 장차 의사선생이 한다는 한심스런 소견을 들으며 택은 눈만 깜빡였다. 가진 기운으로 할 수 있는 건 눈을 맞추는 일 밖에 없었다.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어 보여서 다행이었고 한편으로는 서운했다. 말로 나오지 않는 어떤 것들이 목 안에 꽉 뭉쳐서 먹먹해져왔다. 눈가에 저절로 눈물이 차올랐다. 몸에 기운이 없으니 작은 것 하나도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야, 아파?”

 가까스로 울음을 참은 택이 픽 하고 샌 소리를 냈다.

 “너는 환자 받을 때도 대뜸 아파? 이렇게 물어볼 거냐?”

 참나. 김정환이 제법 토라진 얼굴을 했다.

 “물 줘?”

 택의 머리맡에 떠다 놓은 물을 따라줬다.

 “따뜻한 물.”

 새끼, 진짜. 정환이 당직 간호사에게 뜨거운 물을 얻어왔을 때 택은 다시 잠들어 있었다. 정환은 병실의 불을 끄고 어둠 속에 앉았다. 블라인드 새로 가로등 불빛이 가늘게 들어왔다.

 명륜동을 찾을 때 마다 이불을 덮어주려 서재 문을 열었다. 찬기가 서린 외투를 털고 들어가면 열에 아홉은 불만 켜진 채로 아무렇게나 고꾸라져있는 택이 있었다. 잠든 얼굴을 실컷 보고 이불을 끌어다 눕혔다. 반복된 일은 습관이 되었고 스스로 최면에 도취될 정도로 단단하게 마음을 잠가두었다.

 ‘하필이면 없을 때.’

 정환은 가로등 불이 툭 꺼지고 어슴푸레한 빛이 들어올 때까지 멍청한 생각을 했다. 성격에도 맞지 않고 재미없는 일이어서 진즉에 때려 친 것들. 가능성 없는 짐작으로 나를 탓하고 모든 일을 다 알아서 처리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쓸모없는 생각들. 보호자용 침대를 뺄 생각도 하지 않고 정환은 손님용 소파에 몸을 기대 억지로 눈을 감았다.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 새벽녘에 잠에서 깬 택의 눈에 보인 것은 김정환의 얼굴이었다. 창 밖에서 비추는 부연 빛에 잠든 얼굴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담요도 없이 팔짱을 낀 채 정환은 나흘을 병실에서 밤을 보냈다.

 깊은 밤, 과로한 몸이 견디지 못하고 앉은 채로 잠이 들거나 약에 취했을 때면 정환은 머리를 괴어 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얕은 잠을 자다 방문 틈새로 들어오는 손님방 불빛에 정신이 든 때도 있었다. 때때로 그 앞을 서성이는 숨죽인 그림자도 보이곤 했다. 아침에 거실엘 나가면 집주인인양 신문을 펴 읽고 있는 김정환을 보면서 간밤에 가물가물한 정신 속에서 본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어리둥절했다. 그럴 때면 마주 앉은 밥상이 불편했다.

 ‘신경 쓰여.’

 작은 말소리가 조용한 병실에 유독 크게 들렸다. 정환이 천천히 눈을 떴다. 택은 잠결에 다른 소음으로 들렸길 바라며 숨죽이고 있었다. 수액을 맞고 있는 왼팔이 저렸다.

 ‘…그거야?’

 모로 괸 어깨가 아파왔다. 물어봐 주길 바랐다. 물어본다면 쉽게 답할 작정이었다. 불편하고 신경 쓰인다고.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고. 널 계속 보고 있으면 정말 이상하다고.

 ‘열쇠 바꾼 이유.’

 자정이 넘으면 마음은 죽 끓듯 끓어서 종잡을 수 없었다. 2층 서재에 앉아있으면 밖에서 나는 발소리, 고양이들이 작게 우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방의 시계는 진즉에 치워버렸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았다가 돌연 나빠지곤 해서 쉽게 지쳤다. 억지로 기운을 모아서 기보를 놓으면 다른 때 보다 배는 힘이 들었다. 열쇠공을 부른 것은 제 풀에 지친 결과였다.

 ‘최택.’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정환이 이마를 짚었다. 택의 눈높이에 맞춰 앉은 정환이 식은땀이 난 이마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손이 찼다.

 ‘못 잤어. 나 나흘 내내 못 잤어.’

 택은 대답을 하는 대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소란한 마음을 앓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 아닐 거라는 말. 이마에 얹은 찬 손이 뜨끈해 질 때까지 말이 없었다. 마음이 놓이자 택은 문득 다른 것들이 걱정 되었다.

 ‘정환아. 고양이 밥 어떻게 해?’

 이 새끼, 진짜. 택의 말을 곱씹던 정환이 웃었다.

 

 정환이 낮에 명륜동을 들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개는 술을 마시거나 도서관 열람실이 폐관한 후에나 다녔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창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마음으론 어떻든 정환은 태도에 있어선 칼 같은 면이 있었고 매몰차고 차게 정리할 줄 알았다. 하지 않기로 결심하면 결코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명륜동을 다시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택의 퇴원 이후였다. 입원했던 나흘 동안 정환은 집에서 죽통을 들고 나오면서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택은 봉황당에 안부전화를 하면서 지금 병원에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병원생활은 쌍문동엔 비밀로 붙여졌다. 그리고 주말 한낮 2층 서재에선 김정환이 책상에 앉아 있었고 최택이 바둑판 앞에 앉아 있는 상황에 이르고야 말았다.

 이어폰을 낀 채로 책만 들여다보던 정환이 뒤를 돌아 본 것은 벌써 세 번째 약봉투를 뜯고 있는 최택 때문이었다.

 “심해, 너.”

 귀도 밝네. 한 입에 약을 털어 먹고 관자놀이를 누르며 택은 인상을 썼다. 정환은 나오지도 않는 이어폰을 빼버리고 바닥에 앉았다. 걱정스런 얼굴로 택의 머리통에 손을 얹었다.

 “너랑 있으면 불편해.”

 택의 투정 섞인 말에 정환이 씩 웃었다. 짓궂은 얼굴을 하고 택의 머리를 지근지근 눌러주었다. 택은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다.

 택은 사소한 투정이 제법 늘었고 작은 일에 정환을 탓하곤 했다. 정환은 다른 때보다 심술궂게 굴었고 때로는 부러 택의 속을 긁었다. 서로에게 불편하고 이상한 구석을 숨기지 않았다. 둘은 같은 방법으로 부끄러운 마음을 감췄다.

 “최택.”

 마음대로 풀리지 않자 얼굴이 좀 상기된 택이 안경을 벗었다. 조용히 이름을 부르는 김정환을 쳐다보았다.

 “십오년 지기 친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연인이 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눈을 동그랗게 뜬 택이 멀뚱히 정환을 쳐다봤다. 한참을 눈동자를 굴리던 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비디오 봐. 못하겠어.”

 택이 빌려다 놓은 비디오는 <양들의 침묵>이었다. 정환이 이거 뭔지는 알고 빌렸냐는 말에 신작을 가장 먼저 빌렸다며 기세등등하게 대답했다. 정환은 혀를 차고 소파에 앉았다. 의외로 쇠심줄 같은 신경을 가진 택은 영화를 보다 고개를 떨구기 시작했다. 정환은 볼륨을 줄이고 보다 꺼버렸다. 전원이 나간 브라운관에 제 어깨에 기댄 택의 얼굴이 비췄다. 고개를 만져 자세를 고쳐주었다. 밖은 비가 내렸고 집안에서 키우지 않는 고양이가 들어와 거실 카펫에서 잠들었다.

 “어디로 들어온 거야.”

 제집마냥 편하게 구는 고양이들은 어떻게 집까지 들어왔는지는 모를 노릇이었다. 부엌인지 보일러실 인지 미리 보지 못한 문이 열려있는 모양이었다. 쌍문동 봉황당 문도 늘 열려있었다. 주인이 없는 방에서 집에서 보지 못할 것들을 나누어 보거나 비밀 공모(共謀)를 했다. 라면을 끓여 먹고 아이스크림을 사다 먹었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아무 때나 가면 누구든 만나 놀 수 있었다.

 열쇠로 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최택의 공간은 생각한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열쇠를 받았을 때 정환은 낯설었다. 그리고 열쇠가 없으면 택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잔인하게 깨달았다. 말한 적은 없었지만 그 당연한 것들은 모두 정환에게 허락된 것들이었다.

 병원에서의 그 밤, 정환은 호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명륜동 열쇠를 꺼내서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

 ‘난 친구 같은 연인을 바래. 연인 같은 친구를 바라는 게 아냐.’

 정의(定義)를 유보했던 마음에 확신이 서자 정환은 피하고 싶지 않았다. 멍청하게 굴다가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이 정환을 초조하게 했다. 잠을 잘 수 없었다. 깨끗하게 도려낼 수 없는 마음이라면 운 좋게도 택이 같은 마음으로 혼란스러워했다면 정환은 확실하게 매듭을 짓고 싶었다.

 택은 조금 비겁하게도 어둠 속에 있었다. 동이 터오자 정환의 얼굴을 새하얗게 비췄다. 눈은 캄캄한 그늘에 숨은 최택의 눈을 정확히 찾아서 맞추었다. 택은 축축하게 젖은 손으로 정환의 손을 잡았다. 다음 날 정환은 새 열쇠를 받았다.

 한바탕 비가 쏟아지고 마당은 푹 젖었다. 날은 싸늘하게 식었지만 햇빛은 따뜻했다. 정환은 거실창에 의자를 끌고 와 일광욕을 했다. 홑겹의 얇은 커튼 너머로 반양말을 신은 검은 고양이가 애옹거렸다. 젖은 발이 유리창을 툭툭 쳐댔다. 소파에서 선잠이 든 택을 힐끗 쳐다보자 눈을 가늘게 뜬 택이 배시시 웃었다.

 “벌써 끝났어?”

 “너는 저거 보다 잠이 오냐?”

 “라면 먹을래?”

 내가 끓여줄게. 택이 몸을 일으키자 정환이 크게 웃었다.

 “왜, 이제 못 먹을 정도는 아니잖아.”

 택이 따라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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