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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끝내면 마침표를 찍고 싶은 욕구처럼

생각의 끝엔 항상 당신이 찍힌다.

 

나는 그냥 태연하고,

태연한 척도 한다.

 

박연준, 푸른 멍이 흰 잠이 되기까지

 

 

 

 

 

 

 

 쏟아지는 비에 급히 몸을 피했던 날이었다. 소나기라는 건 분명 금방 지나갈 비라는 걸 알면서도 언제나 갑작스러워서, 또 언제나 무서운 기세라 어느 곳이라도 들어가 몸을 숨겨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못하게끔 만들었다. 그날도 다를 건 없었다. 정환은 어떻게든 비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눈에 보이는 아무 가게에나 들어섰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유리창 너머 바로 건너편 골목에 있는 중고 서점을. 여태껏 그 길을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면서도 한 번도 발견하지 못 했던 곳이었는데.

 사실 그나마 그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중고 서점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그 안으로 들어가는 어떤 남자에게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 않고 모자 하나 푹 눌러 쓴 채 한 손으로는 캐리어를 끌고 가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갑작스러운 소나기 때문에 텅 비어버린 거리를, 캐리어를 끌고 묵묵히 걸어가는 남자라니. 어쩐지 그 자체가 어떤 공포 영화의 괴기스러운 장면처럼 보이기도 했다. 꼭 세상에 그만 홀로 남은 것 같았다.

 남자가 중고 서점 안으로 들어서는 걸 보고, 정환 역시 중고 서점으로 따라들어갔다. 가슴은 괜히 두근거렸다. 그리고 서점 안에서 아까 그 남자의 모자를 발견하고서야 안도하는 스스로를 느끼곤 웃음이 터졌다. 미행이나 하는 제 모습이 우스워서.

 남자는 중고 서적을 되파는 코너 앞에 줄을 섰다. 설마 저게 다 책이겠어? 하고 정환이 생각하기 무섭게, 남자가 연 캐리어에서는 정말 책만 가득 쏟아져 나왔다. 그 책들을 계산하느라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는 동안 정환은 카운터 근처를 맴돌며 괜히 남자를 흘끗 훔쳐 보기나 했다. 그러다 시선을 느꼈는지 제 쪽을 돌아본 남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정환은 순간 숨을 흡 들이켰다. 마주한 눈매가 아무래도 생각보다 앳돼 보여서.

 저 아이는 책을 팔겠다고 비 오는 거리를 우산도 없이 걸어온 건가. 왜 굳이? 당장 팔아넘기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더군다나 중고 책값이면 원가의 반도 못 받을 텐데.

 “방금 나간 저 친구, 자주 와요?”

 인사를 꾸벅하고 나가는 남자, 아니 소년의 뒷모습이 가게 문밖으로 멀어지고 나서야 정환은 카운터로 가 물었다. 아이가 팔아넘겼던 책들을 살펴보며.

 “주마다 한 번은 오는 거 같아요.”

 “항상 이렇게 책 잔뜩 가져오고요?”

 “네.”

 딱 봐도 어려 보이기에 쓰다 남은 문제집이라도 넘기러 온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다 읽어봤을 법한 베스트셀러나 흔히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고전뿐 아니라 지금은 다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던 유명 작가의 처녀작 초판본, 혹은 절판된 지 오래인 책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니까 모은 책들만 보면 확실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맞는데. 왜 그 애는 이 책들을 다 넘긴 걸까. 책 상하지 말라고 이렇게 비닐로 감싸놓기까지 했으면서. 정환은 비닐로 감싸 반들반들한 책 표지를 손끝으로 한참 쓸어댔다.

 

 그날 이후 정환은 틈만 나면 그 아이의 생각에 빠져있었다. 책을 되팔기 위해 매주, 하물며 비 오는 날에도 빠짐없이 중고 서점을 들락날락하는 소년이라니. 당장 그 책들을 다 팔아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이유라도 있는 걸까. 물론 단순히 용돈벌이 겸 되파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또 그렇게 생각하자니 겉표지를 일일이 비닐로 감싸 서점의 조명을 하얗게 튕겨내던 책들이 떠오르는 거고.

 또 완전히 넋을 빼놓게 만들었던 비 오는 날의 그 광경도, 단 한 번 본 장면이었을 뿐인데도 언제 상기해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약간 소름이 올라올 듯 서늘하게 불어오던 바람, 축축했던 공기, 평소보다 어둡게 젖어있던 거리 같은 걸 단번에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언제 다시 떠올리려 해도 방금 일어난 일처럼 생생한 감각들이었다. 무엇보다 죽은 듯 까맣게 가라앉은 거리를 걷는 아이의 조용한 뒷모습이 새벽녘이면 꼭 한 번쯤 떠오르곤 했다. 그 애에 대한 생각으로 담배 끄트머리만 질겅질겅 씹다가 끝내 꼬박 밤을 새워버린 날도 있었을 정도로.

 그가 처음으로 노트에 무언갈 서툴게나마 적어 내려갔을 적부터 생긴 버릇 중에 하나가 그런 것이었다. 연필이든 담배든 빨대든 그 끝을 질겅질겅 씹어놓는 것. 잔뜩 짓씹어 끝이 물러버리고 잇자국이 흉터처럼 남은 연필들이 그의 책상 위에 수없이 쌓이고, 연필 대신 담배가 그 자리를 대신할 때쯤 되었을 때, 글을 팔아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사람이 됐다. 다만 이번엔 그 모든 사념의 끝이 글이 아닌 그날의 그 아이에게만 뻗쳤던 것이다. 그 광경이 그렇게나 인상적이었을까. 다시 보고 싶은 걸까. 그러나 그날의 그 장면은 바닥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가 어떻게 일렁였는지까지 이미 세세하게 기록해둔 뒤인데. 뭘까.

 그러다 그날의 풍경보다는 모자 아래 보였던 그 어린 눈을 더 자주, 더 오래 떠올린다는 걸 깨달은 정환은 마냥 앉아서 고민하는 것으론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새 담배를 꺼내 물며 정환은 정리했다.

 다시 그 애를 만나러 가야겠구나.

 

 다시 찾은 거리는 그날처럼 어둡지 않았다. 햇볕이 내리쬐는 맑은 날이었고 길목마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북적거렸다. 텅 비어있던 그날의 거리와는 영 다르게 생동감 넘치는 거리의 모습에 잠시 주춤한 정환이 습관처럼 아랫입술을 물었다 놓았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여기 온다고 해서 꼭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온다고 해도 시간대가 맞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물론 정환은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 기다려볼 생각이긴 했지만. 게다가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이 가운데 섞여있다고 해도 당장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지가,

 “아.”

 알아볼 수 있네.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화사한 낯빛의 사람들 사이에서 그 아이만 홀로 무채색인 양 조용히 걸어온다. 서점으로 오는 발걸음인 줄 알았지만, 그래도 그게 꼭 제게 오는 발걸음 같아 가슴께가 괜히 간질거렸다. 왜 이러지. 사실 이곳을 찾아오면서도 왜 이렇게 그 남자 애에게 궁금한 것이 많은지, 쓸데없는 관심이 이는지 의아했던 정환이었다. 그러나 일단은 그런 의아함은 다 접어두기로 했다. 다 떠나서 그냥 시선이 갔던 거고, 그냥 궁금했고. 그냥,

 다시 보고 싶은 맘이었으니까.

 “저기.”

 “네?”

 그리고 서점 앞에서 다시 마주한 그 애의 팔을 대뜸 움켜쥐고 그 앳된 눈을 또 한 번 마주하는 순간, 정환은 역시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비 오는 거리를 걸어가는 뒷모습만 보고, 카운터에서 책을 되파는 옆얼굴만 보고, 그리고 겨우 딱 한 번 눈을 마주했으면서,

 “이 책들 팔아넘기면 얼마나 받아요?”

 “…….”

 “내가 살게요. 훨씬 더 쳐줄게.”

 그새 마음이 갔었구나, 나.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책맞게 설레기까지 하는 스스로가 기가 차, 정환은 조금 자조하며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맑은 눈동자에 담긴 저를 보고 있으려니, 꼭 사탕으로 아이를 꼬여내는 아주 나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여기도 버릴 거 되게 많네요.”

 정환은 아이를 무작정 집에 들이기부터 했다. 값을 훨씬 더 쳐주겠다는 말에 별말 없이 정환의 차에 올라탔던 아이는 오는 내내 말 한 마디 없더니, 현관문을 열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책장에 질린다는 얼굴을 하곤 불퉁히 쏘아붙였다. 눈매 자체는 분명 둥글둥글 그렇게 선해 보일 수가 없는데, 책장 가득 꽂혀있는 책을 쭉 훑어보는 눈빛만큼은 뾰족한 날이 서있었다. 사실 서재에는 이보다 더 많은 책들이 있는데. 거실 한 쪽 벽면을 차지한 책장만으로도 그런 반응인 아이를 보니, 괜히 심술부리듯 그렇게 대꾸라도 해주고 싶은 맘도 들고. 그러나 정환은 그보다는 아이가 들고 있던 캐리어를 빼앗아들었다.

 “마실 거라도 줄까요?”

 “…….”

 “뭐 좋아해요?”

 꼭 원래부터 제 짐이었던 양 자연스레 캐리어를 빼앗아가는 정환의 손을 한 번, 그리고 상냥한 어투로 물어보는 정환의 얼굴을 한 번. 그렇게 번갈아 시선을 주었던 아이는 다시 책장으로 시선을 넘기곤 대꾸가 없다. 계산이나 얼른 해달라는 듯 틈을 안 주는 냉한 옆얼굴에도 아랑곳 않고 정환은 “커피 마시나?” 하고 물었다. 물론 여전히 답은 없었지만.

 한참의 고민 끝에 정환은 언제 사두었는지도 모를 오렌지 주스를 꺼냈다. 앳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우습지만 그 손에 커피를 들려주면 안 될 것 같았던 탓이다. 주스를 내어오는데, 그때까지도 책장만 죽어라 노려보고 있던 아이는 어느새 책장 한구석에서 책 한 권을 조심스럽게 빼들고 있었다. 책을 꺼내보는 표정이 꽤 심각하기에 정환은 주스라도 한 잔 마시라는 말도 삼킨 채 아이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울 것 같기도 하고.

 책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는 시선과 꾹 다문 입술에 그런 감정들이 걸려있다. 퍽 쓸쓸한 낯으로 책을 한참이나 만지작대는데, 여태껏 저를 쳐다보던 경계 어린 눈빛과는 그 온도부터가 달라서. 혹여 방해가 될까 정환은 그대로 더 다가서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채 숨소리조차 죽였다. 그저 창가로 들어오는 빛 때문에 한 쪽 얼굴에만 그늘이 져 더 묘하게 다가오는 아이의 옆얼굴을 살필 뿐이었다. 빛을 얹고 있는 속눈썹이나 목덜미에 돋아난 솜털, 무언가 삼켜내려는 듯 힘이 들어간 턱이나 울렁이는 목울대, 그런 것들. 손끝은 책을 펼쳐내지도 못하고 책 모서리만 더듬고 있었다.

 오래 이어지던 정적을 깬 건 정환이었다.

 “아, 어.”

 “…….”

 “살짝 내려둔다는 게…….”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들고 있던 컵을 식탁에 내려놓았는데, 생각보다 크게 소리가 났다. 아이는 잠에서 깨기라도 한 듯 몸을 흠칫, 떨더니 고개를 돌려 정환을 쳐다보았다. 방금 전까지의 무언가 일렁이던 그 분위기는 다 어디로 갔는지 다시 딱딱하게 가라앉아있는 얼굴이다. 물론 어느 쪽이든 말 한 마디 걸기 어렵다는 건 마찬가지긴 하지만. 정환이 머쓱한 듯 살짝 웃어 보이는데도 아이는 그저 그런 정환을 멀뚱히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머쓱하니 웃으면 같이 웃어줄 법도 한데. 사람 민망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아니면 뭔진 몰라도 지금 내가 마음에 안 들거나. 정환이 급히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찰나에,

 “얼른 계산해주세요.”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한참 만지작거리던 책은 다시 꽂아놓으려다 실패했는지,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위로 대충 눕혀 밀어 넣고. 당황한 듯 다급해 보이기까지 하는 손길로 책장에 책을 무작정 밀어 넣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자니, 아이가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한다. “책값이요.” 하고. 내어온 주스 따위에는 입 한 번 안 댈 기세라 정환은 하는 수없이 현관 신발장 앞에 세워뒀던 캐리어를 열어 책들을 하나둘씩 꺼내들었다. 얼마나 값을 쳐줘야 하지, 고민하며.

 “받아요.”

 “…….”

 “안 받고 뭐 해요. 달라며.”

 어차피 책은 목적이 아니었으니 값이 얼마든 상관없는 정환이었다. 그저 많이 주는 편이 낫겠다 싶어 무작정 수표를 내밀었더니 제 손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기만 한다. 받아들 기미가 없어 보이는 얼굴에, 아이의 손에 억지로 수표를 쥐여준 정환은 책장에 눕혀 꽂혀진 책을 꺼내들었다. 밤의 이면. 아, 이 책. 저 역시 닳고 또 닳도록 읽었던 책이다. 언젠가는 꼭 이 작품 같은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을 정도로 좋아하고 아끼는 책이었다. 정환은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조심스럽게 책의 표지 위를 만지작거렸다.

 갈게요, 그럼. 무뚝뚝한 얼굴로 꾸벅 인사를 하곤 그새 현관으로 가 신발에 발을 밀어 넣는 걸 정환이 급히 붙잡았다. 이대로면 집까지 데려오고 무슨 책인지도 모를 책들을 무작정 떠안은 보람이 없다. 어떡하지. 정환은 급한 대로 탁자 위를 더듬다가 책갈피 대용으로나 쓰여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제 명함을 쥐었다. 명함을 팔 때만 해도 책 쓰는 사람이 명함 쓸 일이 어딨겠냐고 질색을 했었는데, 지금은 이거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책을 펼쳐 중간에 명함을 끼워 넣은 정환은 아이에게 그 책을 내밀었다.

 “빌려줄게요.”

 “…….”

 “아까 한참 보고 있었잖아요. 표지만.”

 “…….”

 “보고 싶어 하는 거 같던데. 이거 나 아니면 어디서 구하기도 힘들어.”

 “…… 책 싫어해요.”

 방금 보였던 그 표정은 책을 싫어하는 사람의 것이 너무나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생각한 정환이 우습다는 듯 코웃음을 치곤, 책을 내밀었던 손을 거두기는커녕 오히려 앞으로 더 내밀기나 하자, 아이는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중얼거리듯 “진짜로, 싫어요.” 하는데, 정말로 진절머리 난다는 말투라 정환은 그제야 눈을 들어 아이를 다시 쳐다보았다. 눈을 꾹 내리감으며 한숨을 푹 내쉬는 얼굴을.

 이러면 더 궁금해지는데. 책을 무슨 사연으로 내다 버리는지, 이 책이 뭐라고 그런 얼굴을 했던 건지. 책을 싫어하는 이유는 뭔지.

 “난 되게 좋아하는데.”

 다시 떠낸 눈꺼풀 사이로 그 모습을 드러낸 맑은 눈동자가 저를 쳐다본다. 무슨 말이냐고 추궁하듯 저를 하나하나 뜯어보는 시선에 정환이 비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난 책 되게 좋아하니까 나한테 팔아요.”

 “…….”

 “나한테 버려.”

 “…….”

 “그리고 이 책은 나한테만 팔라고 주는 뇌물 같은 거.”

 사실은 뇌물이라기 보단 미끼에 가깝겠지만. 이대로 돌려보내면 분명 연락이 뚝 끊길 것 같으니 뭐라도 들린 채 보내야겠다는 심산이었다.

 “아끼는 책이니까 꼭 돌려줘요.”

 빌려준다는 건 언젠가는 꼭 돌려받아야 한다는 거니까.

 

 사실 그 뒤 연락이 안 올 줄 어느 정도 짐작하곤 있었다. 그래도 아주 만약에, 혹시, 하는 마음에 기대 책 사이에 명함을 끼워 넣었던 거였다. 진동이 울릴 때마다 급히 확인해보면, 출판사나 편집장 이름, 가끔 모르는 번호가 떠도 대출 전화 그런 것들뿐이었다. 그만큼 낚였으면 이젠 좀 포기할 법도 됐는데 여전히 휴대 전화 진동이 울리면 급하게 확인하곤,

 “이 새낀 왜 전화질이야.”

 꼭 이렇게 실망하길 반복했다. 매번 기대를 했다가 매번 실망을 하는 것도 이제 좀 지칠 법 한데, 여전히 그러고 있는 정환이다. 훅 올라오는 짜증에 거절 버튼을 쓱 밀어버리자, 곧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안 봐도 뻔했다. 축하주 한 잔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한 턱 쏴라. 뭐 그런 말들이겠지. 흘끗, 확인해보니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말이라 정환은 복잡한 얼굴로 눈가를 손바닥으로 한 번 크게 쓸었다. 그런 것도 글이라고. 팔리라고 쓴 글이긴 하지만 정말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꼴을 보니, 이걸 감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러고 보니 주말이다. 그 애가 책을 버리러 서점에 들르는 날. 정환은 나갈 채비를 했다.

 

 이 건물 앞을 찾은 것만 벌써 세 번째다. 삼고초려도 아니고. 나한테 쌀쌀맞기만 한 그 애가 나는 왜 이렇게 궁금하고, 보고 싶을 일인지. 이제 제 집 건물만큼이나 익숙한 중고 서점 건물 문 앞에 서서 정환은 자조했다. 항상 이쯤 온다고 했던 거 같은데? 하고 시계를 한 번 보고 고개를 드니, 정말 거짓말처럼 또 드르륵, 캐리어를 끌고 걸어오는 남자 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정환을 뒤늦게야 발견했는지 중간에 휙 등을 돌리는 걸, 정환이 달려가 겨우 그 손목을 붙잡았다. 그때처럼 캐리어를 대신 쥐고 한 손으로는 아이의 손목을 쥔 채 주차해놨던 차 앞으로 가는데,

 “뭐 해요. 지금?”

 손을 비틀어 빼낸 아이는 정말 제법 화가 난 모양인지 목소리도 한 톤은 높아져있었다. 정환은 대수롭지 않단 듯 입을 열었다.

 “나한테 넘기라니까. 훨씬 더 쳐줬잖아요. 더 달라면 더 줄 수도 있는데?”

 아예 트렁크에 캐리어를 실어놓을 작정으로 트렁크를 여니, 아이가 캐리어를 다시 제 쪽으로 가져가버린다.

 “왜 그렇게 주는데요?”

 “…….”

 “그렇게 해서 아저씨가 얻는 이득이 뭔데요.”

 “내 이득이 어떻든 학생은 어차피 손해 안 보는 장사잖아.”

 캐리어를 다시 가져가려는 정환의 손을 잡아 제지시킨 아이는 제 아랫입술을 하얗게 질릴 때까지 꾹 물었다 놓으며 말했다.

 “…… 불편해요.”

 “…….”

 “아저씨 나한테 왜 이래요?”

 저번에 보니까 책도 이미 많던데. 정환은 조용히 제 할 말 다 하는 작은 입술을 가만히 지켜봤다. 불편해죽겠다는 듯 일그러진 미간도. 왜 이러냐고? 뭐라고 얘기를 해야 좋을까. 비 오는 날 캐리어를 끌고 가던 네 뒷모습을 봤었다. 텅 빈 거리를 우산도 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고, 그날부터 네 모습이 안 잊히더라. 그런 말들은 길기만 할뿐더러 스스로 생각해도 무슨 뜻인지 모호했다. 그래서 그게 정말 다는 아니니까.

 정환은 아이가 오늘도 푹 눌러쓰고 온 모자의 챙을 잡아 모자를 벗겨버렸다. 모자 때문에 도통 눈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아이가 엇, 하는 소리를 내며 정환의 손에 잡힌 모자에 손을 뻗는 와중에, 정환은 그대로 드러난 주먹만 한 얼굴의 턱을 한 손으로 쥐어 저와 마주 보게끔 만들었다. 이제야 눈이 보인다.

 “좋아서.”

 “…….”

 “맘에 들었거든.”

 제 턱을 잡고 있는 손을 떼어내려던 아이가 움직임도 멈추고 멀뚱히 정환을 쳐다본다.

 “잘 보이고 싶으니까 잘해줄 거고.”

 정환을 한참 쳐다보던 아이가 꺼낸 말은,

 “후지다.”

 “…….”

 “이런 대사가 팔려요?”

 정환이 무안해질 정도로 날선 물음이었다. 기도 안 찬다는 얼굴로 비꼬듯 말하더니, 제 턱을 쥐고 있던 정환의 손을 잡아 내린다. 그리곤 그냥 놓아줘도 될 그 손을, 굳이 거칠게 털어냈다. 그러는 동안 마주친 시선은 한 번을 피하질 않았다. 온 힘을 다해 '나는 당신을 기분 나쁘게 만들 거예요.'라는 의도가 뻔히 보여서, 정환은 그저 픽 웃고 말았다. 목적의식도, 자아도 없이 그저 팔리는 글을 쓰는 작가라는 비난을 듣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이 정도 비아냥거림은 별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누가 정수리 끝을 잡아당기고 있기라도 한 양 조금 들떠있었다. 이런 대사가 팔리냐, 그런 말을 한다는 건 그러니까,

 “책 봤구나.”

 책을 펼쳐봤다는 거 아냐.

 “아저씨 책이요?”

 자의식 과잉이냐고 한 번 더 비꼴 기세의 심통 난 얼굴에, 정환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양껏 비아냥거렸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하는 눈앞의 아저씨가 영 이상한 사람 같은지, 혹은 이 아저씨가 저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아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다. 그게 꽤 재밌다고 생각하던 정환은 아이가 자리를 뜨려고 할 참에야 겨우 웃음을 꾹 누르고 대답했다.

 “아니 내 책 말고. 빌려준 책.”

 빌려준 책. 그렇게만 말했을 뿐인데 짜증만 가득해 보이던 낯빛에 금세 다른 분위기가 내려앉는다. 조금 어두워졌다가 곧 난처한 기색으로 바뀌는 얼굴. 정환은 하나라도 놓칠세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아이의 얼굴을 빠짐없이 모두 지켜보았다.

 “안 봤어요.”

 “그래요?”

 “네.”

 도대체 그 책에 무슨 사연이 얽혀있기에 낯선 이 앞에서도 속내를 다 내보일 듯 풀어지는 얼굴을 하는 건지.

 “그럼 내가 글 쓰는 사람인 건 어떻게 알았는데.”

 “…….”

 “명함 봤으니까 안 거 아닌가?”

 말렸다고 생각한 건지 아랫입술을 또 한 번 꾹 깨물었다 놓는다. 볼수록 귀엽네, 진짜. 정환은 그때까지도 손에 들고 있던 모자를 다시 아이의 머리 위로 꾹 눌러씌워줬다. 그리곤 장난치듯 챙을 아래로 툭 치니, 불퉁한 얼굴로 다시 모자를 바로 쓰는 아이에게 정환이 물었다.

 “그 책 갖고 왔어요, 안 갖고 왔어요?”

 “…… 없어요.”

 “갖고 왔다고 하면 섭섭할 뻔했는데 잘 됐네.”

 “…….”

 “아주 나중에 줘요.”

 그렇게 말하곤 아이가 제 뒤로 숨겨놓았던 캐리어로 다시 손을 뻗는데 옆얼굴이 따갑다. 정환이 왜 그러냐는 듯 쳐다보자, 아이는 “됐어요.” 하고 포기한 듯 중얼거렸다. 왜 그러는지 알 것도 같고.

 “이 아저씨 되게 어이없다.”

 “…….”

 “그런 얼굴인데. 그렇죠?”

 “…… 알긴 아시네요?”

 딱딱하게 대답하더니, 정환이 슬쩍 제 쪽으로 가져다 놓은 캐리어를 다시 붙잡으려 아이가 손을 뻗었다. 그 손을 붙들어놓은 정환이 잠시 제 이마를 긁적이다 “간단하게 생각해.” 하고 운을 뗐다.

 “넌 책을 팔고 싶은 거잖아. 이왕이면 비싸게 파는 게 좋은 거 아냐?”

 “…….”

 “근데 난 얼마를 주고서라도 네 책을 살 거거든.”

 “…….”

 “그러니까 나한테 팔아. 나 이용해.”

 기꺼이 호구가 되어주겠다는데도 왜 마다하는데. 가만히 말을 그 말을 듣던 아이가 한참만에야 “알겠어요. 일단 오늘은 그렇게 해요.” 하고 캐리어에 뻗던 손에 힘을 풀었다. 그제야 캐리어를 차에 실을 수 있게 된 정환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띤 채 계속 이런저런 말을 던졌다. 밥은 먹었어요? 밥 먹고 들어갈까요? 어디 살아요? 이따 집에 갈 때도 데려다줄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말 그냥 한 말 아니었어.

 

 평화로운 아침. 창을 통해 아침의 따사로운 햇볕이 집안으로 마구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밝은 빛이 제게 쏟아지자 잠시 얼굴을 구기던 정환은 이불을 머리 위로 조금 더 끌어올렸을 뿐 누운 그대로 더 이상은 꼼짝하지 않았다. 글 쓴답시고 낮밤이 바뀐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이 정도의 햇빛은 잠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환의 패턴대로라면 오히려 지금은 완전히 한밤중인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동터 올 때쯤에야 겨우 눈을 감았었다. 그나저나 방금 누군가 문을 두드렸던 것 같기도 한데. 밖에서 들렸던 소음에 슬쩍 잠이 깼던 정환이 그렇게 다시 까무룩 잠에 빠져들 때쯤,

 “아저씨!“

 다시 한 번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며 저를 부르는 소리에 정환은 눈도 못 뜬 채 이불 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누구……. 헉. 곧 그 목소리가 택의 목소리임을 알아챈 정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옷. 옷 어디다 벗어놨지. 옷. 잘 때만큼은 속옷이라도 걸치고 자면 양반일 정도로 다 벗고 자는지라 당장이라도 안 열면 부수고라도 들어올 듯 쉴 새 없이 두드려지는 문에, 정환이 허둥대며 방안을 뒤적거렸다. 머릿속도 엉망이다. 아니 왜 이 시간에 갑자기? 게다가 오늘 주말도 아니고 평일인데?

 일부러 규칙처럼 정해둔 건 아니었지만 매주 주말마다 캐리어를 끌고 정환의 집을 찾는 택이었다. 호구가 되길 스스로 자처하며 절절맸던 정환의 모습에 못 이기겠다는 듯 택이 한 번 더 정환의 집에 왔던 날, 택은 정환의 집에 도착하자 눈에 띄게 굳었었다. 차를 타고 정환의 집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내내 불편한 기색이었고. 물론 그걸 모를 리 없는 정환이었다.

 「왜.」

 「…….」

 「뭐가 그렇게 심각해요.」

 또 뭐가 불편해서 그러는데. 거실 한가운데서 누가 봐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어색하게 서있기만 하는 모습에, 애를 소파로 데려간 정환이 일단 앉혀놓고 달래듯 묻자, 그 다정한 어투에 턱에 힘이 들어가는 게 다 보일 듯 이를 세게 문다. 그러더니 정환의 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아이가 물었었다.

 「아저씨는 그렇게 다 쉬워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정환은 그저, 저렇게 이 악 무는 버릇 있으면 이 다 상할 텐데 그런 생각이 나 하고 있던 터라 그 갑작스러운 물음의 의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잠시 침묵했다.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다만 이상한 쪽으로 생각이 텄다는 건 알아챌 수 있겠다 싶을 뿐이다. 무슨 생각인지 들어나 보자. 그런 마음으로 정환은 택이 다시 입을 열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날 얼마나 봤다고…….」

 「…….」

 「아저씨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답지 않게 쭈뼛대며 말하는데, 그렇게만 듣고도 정환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작게 웃음이 샜다. 그러자 아이의 얼굴이 시뻘개져선 지금 내가 웃기냐고 묻는데 정환은 얼른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니라고 열심히 변명했다. 자꾸 픽픽 새는 웃음 탓에 아이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새빨개진 얼굴로 정환을 노려봤지만.

 그러니까 하고 싶었던 말이, “날 얼마나 봤다고 갑자기 내가 좋다고 해요?”인 거지? 차를 타고 오는 내내, 그리고 도착해서도 그 문제로 심각하게 골몰하고 있었을 걸 생각하니, 아무래도 귀여워서 정환은 새는 웃음을 막을 길이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웃어댔다간 저를 쳐다보는 아이의 눈빛이 꼭 마음속으로 이상한 아저씨라고 결론을 낼 것 같은 눈이라, 정환은 웃음을 간신히 꾹 눌러 참았다.

 「이상한 사람이면?」

 「…….」

 「다시 도망갈 거예요?」

 그렇게 묻자, 눈만 이리저리 굴리다 다시 정환을 쳐다보는 아이였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에요? 이상한 사람 아니지 않아요? 하는 얼굴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불신 어린 표정으로 이상한 사람 아니냐고 물었던 사람 치고 도망갈 준비도 않고 영 긴장감이 없네. 그런 대사가 팔리기나 하냐고 매섭게 쏘아붙일 때는 언제고 정작 지금은 이렇게 맹한 얼굴로 절 쳐다보기나 하고 있다. 이러니까 자꾸 놀리고 싶어지잖아. 그러나 정환은 그쯤에서 장난을 마무리했다. 이러다 정말 이상한 아저씨라고 오해라도 하면 어떡해.

 「이상한 사람의 기준이 뭔질 모르겠네.」

 「…….」

 「다른 꿍꿍이가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런 거라면,

 「그냥, 보자마자 처음부터 좋았어서 그래.」

 처음 본 날 이후로 자꾸 생각나던데. 머릿속에서 잊히질 않았어. 첫눈에 반했다고. 뻔한 말이지만 그 뻔한 말밖에는 해줄 말이 없고, 스스로도 그 이상 납득되는 말이 없는 정환이었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시를 읊을 거야, 처음 봤던 그날에 대해 줄줄이 설명할 거야. 설명해줘봤자 애는 궁금해 하지도, 듣지도 않을 텐데. 정환이 담백하고 짧게 말하는 동안, 가만히 눈을 맞추고 듣고 있던 아이는 이내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곧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제가 말을 잘못했나? 싶어 순간 당황했던 정환은, 그런 아이의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어서, 그제야 안심한 얼굴로 부엌에 들어서며 말했다.

 「밥 먹고 쉬다 가요.」

 「…….」

 「싫어요?」

 다시 시선을 돌려 거실 쪽을 바라보니, 소파에 앉아있던 아이가 우물쭈물한 얼굴로 대답을 망설이기에 정환이 웃으며 덧붙였다.

 「딴 짓 안 해요. 어린애 붙잡고 뭐 허튼 거 생각 없어.」

 「아…….」

「그냥 편하게 밥 먹자고.」

 편하게 생각해요. 내 책 사주는 아저씨라고. 이왕이면 좋은 아저씨. 그렇게 몇 번 더 말해주고 나서야 조그맣게 “알겠어요.” 하는 대답 소리가 들렸었다. 그러고도 주말마다 찾아오는 게 자연스럽게 되기까지는 또 한참이 걸렸었다. 하여간 의심도 많고 확인할 것도 많은 최택.

 그래서 지금은 왜 뜬금없는 평일에, 그것도 왜 이 이른 시간에 나를 찾아온 건지. 정환은 의아해하면서도 겨우겨우 옷을 꿰어 입고, 그 급한 와중에도 눈곱이라도 꼈을까 급히 눈가를 매만졌다. 까끌까끌한 턱을 아쉬운 기색으로 한 번 훑으며 면도라도, 아니 세수라도 할까, 하는 와중에 기어이 문을 발로 차기에 이르렀는지 문짝이 떨어져 나갈 듯 쾅쾅 두드리는 소리를 듣곤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하여간 성질머리는.

 “아, 왜 이렇게 늦게 열어요?”

 “…….”

 “무거워죽는 줄 알았네.”

 “야…….”

 학생이라고 짐작은 했었지만 아저씨 양심에 가책 느끼게 아예 교복을 입고 나타날 건 또 뭐야. 교복 차림의 택을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자 택이 정환에게 가방을 넘기며 “개학했어요.” 했다. 개학. 개학날 교복 입고 학교 가는 고등학생, 진짜 맞구나. 정환은 택이 한숨을 푹 쉬며 넘겨주는 가방을 얼른 대신 받아들었다. 돌덩이라도 들었는지 빵빵하니 어지간히 무거워서 의아하게 쳐다봤더니, 지퍼를 찌익 열어준다. 안에 책이 가득 들어있었다.

 “학교 가기 전에 들른 거라 캐리어는 좀 그랬거든요.”

 “전화라도 하지. 무겁게.”

 “아저씨가 받았겠어요?”

 “…….”

 “누가 봐도 막 깬 얼굴인데.”

 아니라고 부정하기에는 택이 턱짓으로 가리키는 머리께를 더듬어보니, 안 봐도 까치집의 형상이었다. 대충 한 손으로 꾹꾹 눌러 가라앉히고 나니 이번엔 하품이 다 나온다. 시간을 보니 잠든 지 두세 시간 만에 다시 일어난 셈이었다. 정환이 뻑뻑한 눈가를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떼자 택이 그새를 못 참고 또 비아냥거렸다. 고작해야 글 쓰느라 날밤 깐 거, 그것도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면서 되게 피곤해 보인다고. 택은 늘 그랬다. 책이나 글에 대한 것이라면 과하다 싶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다. 꼭 알레르기 반응이라도 일으키듯 무조건적인 그 반응이 익숙하면서도,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어서 정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투덜댔다.

 “그러니까 왜 이 아침에 와. 게다가 오늘 평일인데.”

 “이제 개학이니까 알바 주말로 옮겨서 그래요. 시간이 안 날 거 같아서.”

 주말마다 이것도 다 책값에 포함된다는 명목으로 애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데에 그새 맛 들인 정환이었다. 어느 날은 외식을 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가볍게 산책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사심 채우려는 거냐며 질색을 하던 택도 군말 없이 따르기 시작하기에 이제 정말 재미가 붙고 있었는데. 그러나 그게 아쉬운 것보다도 정환은 '알바'라는 말에 더 당황해서 눈을 휘둥그레 뜬 채 택을 쳐다봤다. 알바?

 “너 알바 했었어?”

 “네. 지금도 하고. 근데 저 좀 늦었는데.”

 “아, 어어.”

 물끄러미 가방을 쳐다보며 하는 말에 정환은 그제야 택에게 받아들었던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실상은 마음이 급해서 가방 안을 탈탈 터는 듯한 동작에 더 가까웠다.

 “어디야? 차로 태워다 줄게.”

 “됐어요. 무슨.”

 원조 교제라도 한다고 소문낼 일 있나. 들으라고 그런 건지 아닌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돈은 다음에 올 때 받을게요. 갈게요.” 하며 늘 그렇듯 인사는 꼭 깍듯하게 하고 나가는 택의 모습에, 정환은 택이 나가고 난 후로도 꽤 오래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나저나 알바를 한다고? 내가 저한테 챙겨주는 돈이 얼만데.

 

 사실 별게 아니라면 아닐 수 있고, 그냥 그 애의 사정이구나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제가 쥐여주는 돈은 고등학생이 용돈으로 쓰기에는 넉넉하다 못해 넘칠 수준임을 정환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당장 계속 만날 구실이 필요하고, 또 그렇게라도 환심을 사고 싶어서 돈을 그렇게 쥐여줬던 건데. 거기에 굳이 아르바이트까지 더 한다고? 책을 팔았던 게 적어도 단순한 용돈벌이는 아니었다는 거겠지. 한 마디로 돈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거다. 네 책이면 얼마를 주고서라도 사겠다고 했던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아예 이용하라는 말까지 했었는데 왜 나를 찾지 않고.

 뭐가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그 생각을 며칠 하다가, 결국 정환은 이번에도 전과 같은 방식을 택했다.

 [저녁에 잠깐 보자.]

 [밥 혼자 먹기 싫어서 그래.]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고, 보고 싶으면 보러 가는, 그의 식대로. 메시지를 미리 보내놓았던 정환은 대충 시간 맞춰 택의 학교로 향했다. 답은 없었지만 메신저의 1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거절하지 못할 걸 아니까. 밥 먹고 가라는 말을 매번 튕겨내려고 하기에 한 번은 흘리듯, 밥 혼자 먹는 게 싫어서 그런 거라고 한 적이 있었다. 뭐라고 살살 구슬려도 꿈쩍도 안 하더니, 그 말 한 마디에 알겠다는 듯 순순히 식탁 앞에 앉는 걸 본 뒤로는, 그 말은 정환의 필살기쯤이 되었다. 아쉬운 얼굴로 밥 혼자 먹기 싫다고 하면, 언제든 택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곤 했다. 매번 반복한대도 매번.

 그런 걸 보면, 알면 알수록 모진 애는 아니라고.

 “…….”

 해가 저무는 중이라 붉은 노을 빛이 운동장에 넓게 깔렸다. 그리고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틈에서 그 어느 때보다 생동감 넘치고 화사하게 웃고 있는 얼굴. 옆에 있는 친구와 뭐라 떠들더니 밀치고 찌르고 하며 내려오는 택을 멍하니 보다가 마침내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정환은 살짝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어 보였다. 그러자 친구들에게 급히 뭐라 얘기하더니, 놀란 얼굴로 얼른 뛰어내려오는 택이다. 그 얼굴을 보는데, 언젠가는 놀라서 뛰어내려오는 게 아니라, 나를 발견하자마자 방긋 웃는 얼굴을 한 번쯤은 보고 싶다고, 정환은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미쳤나 봐. 어떻게 왔어요. 여긴?”

 “동네에 똑같은 교복 입는 애 있길래 붙잡고 물어봤는데?”

 “못 살아, 진짜.”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면 어떡해요. 칭얼대는 택의 뒤로 방금 전까지 택과 같이 웃고 떠들던 애들이 정환을 보더니 어색하게 인사를 꾸벅 하곤 사라진다. 아이들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응한 정환이 택에게 물었다. “애들한텐 나 뭐라고 얘기했어?” 하고. 전에 원조 교제 어쩌고 했던 말이 떠올라 그렇게 묻자, 택이 “삼촌이라고 했죠.” 하며 당연한 걸 뭘 묻냐는 듯 뚱하니 답한다. 삼촌과 조카래도 할 말 없는 나이 차이이긴 하지.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맨 채 학교에서 나오는 걸 보니 확실히 어린애이긴 어린애라, 정환이 택의 머리를 한 번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삼촌이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간만에 근사한 레스토랑을 찾았다. 그동안은 애 부담스러워 할까 집 앞의 식당에서 외식하는 게 전부였던지라, 둘이 이런 곳을 온 건 처음이었다. 입구부터 사뭇 다른 분위기에 음식이 나오고서도 택이 괜히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걸, 테이블을 똑똑 두드려 제 쪽을 보게 만든 정환은, 정신없어 보이는 택의 모습에 빙긋 웃었다. 어디서든 기 안 죽고 주눅들 지도 않을 거 같더니, 고작 비싼 밥 좀 먹으러 왔다고 답지 않게 귀엽게 구네. 애긴 애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정환은 택의 교복 자켓을 가리켰다. “자켓이라도 좀 벗자.” 그 말에는 금세 또 샐쭉 웃는다.

 “왜요. 새삼 양심에 가책을 느껴요?”

 “좀? 교복 입은 거 보니까 새삼 어린애구나 싶긴 하네.”

 “그러니까요. 그 어린애 데리고 왜 이런 델 와요?”

 아무래도 부담스럽긴 한 모양이었는지 타박하는 투로 그러기에 정환이 부러 더 가볍게 대답했다. “잘 보이고 싶다고 말했잖아. 잘해준다고.” 그러자 괜히 포크로 음식을 뒤적거리기만 하던 택의 손이 순간 멈칫한다. 그 모습에 정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평소와 같은 어투로 얼른 먹으라는 말이나 덧붙였다. 애 곤란하게 만들기 싫기도 하고 부담주기도 싫어, 친한 형인 양 대하긴 하지만, 정환은 때때로 정말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말들을 던지곤 했다. 뭘 보채지도, 바라지도 않지만 그냥 알고나 있으라는 식으로. 그런 식으로 툭툭 던진 게 몇 번이 반복이 됐는데, 택은 아직도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눈도 못 마주치고 딴청을 피우거나 고개를 숙여버리곤 했다. 그때마다 보이는 빨개진 귀 끝이 얼마나 귀여운지. 이런 낯간지러운 말에는 도저히 면역이 안 생기는 모양이다. 정환은 그 모습을 볼수록 더 놀리고 싶어지곤 했다. 그래서 오늘도 멈춘 그 손을 흘끗 보곤 픽 웃고 마는 거고.

 “너무 잘해주지 마요.”

 늘 민망해 죽겠다는 얼굴로 시선을 피하기나 하더니 이렇게 뭐라고 대꾸한 건 또 처음이다. 조용히 말하는 목소리에 정환이 눈을 들어 택을 보니, 속이 타는지 기어이 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방금 들었던 목소리는 쑥스럽다기보다는 곡 겁이라도 난단 느낌이었는데. 그러고 보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거나 혹은 그저 가만히 쳐다보기만 해도, 택은 못 견디겠다는 기색을 띌 때가 종종 있었다. 단순히 부끄러워하는 것 그 이상으로, 택의 그런 것들에 약해 보였다.

 정환은 택의 말에 답하는 대신, 조금 전부터 계속 칼질이 엇나가 음식이 제대로 썰리지 않은 택의 접시를 가져와 먹기 좋게 썰어주었다. 장난스레 “너 은근히 손 많이 간다?” 하며 접시를 돌려주니 멍하니 정환이 하는 걸 보고 있던 택이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받아든다. “인사는 안 해?” 하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들릴락 말락 “고마워요.” 대답하는 택의 귀 끝은 또 터질 듯 빨개져있었고. 정환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우면 자켓은 좀 벗자고.” 하고 재차 말했다. 그러자 웃음이 터졌는지 앞에서 풉, 하고 바람 새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인심 쓰듯 택이 교복 자켓을 느릿하게 벗는데, 그럼에도 셔츠에 넥타이 차림이 고등학생스럽지 않은 건 아니어서 정환은 그런 택을 가만히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포기해야겠네. 누가 정말 원조 교제 따위로 봐도 어쩔 수 없겠다. 그렇게 또 한 번 정환이 한숨을 푹 내쉬니, 단번에 그 뜻을 알아챈 건지 이번엔 아예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리는 택이었다. 아저씨가 원조 교제 소리 듣는 게 그렇게 좋니. 하고 뚱하니 말을 뱉으려던 정환은 환하게 웃는 택의 얼굴에, 그저 따라 웃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웃으면 따라 웃지 않고는 못 배기겠잖아. 따갑게 노려볼 줄만 아는 눈인가 싶었는데, 예쁘게 접히기도 하고.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 않던 이전의 모습을 떠올리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 따로 없다. 앞으로도 딱 이 정도만 같았으면 좋겠지.

 그렇게 퍽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친 둘이었다. 정작 정환이 물으려던 건 어째 적당한 타이밍을 못 잡아 계속 나중으로, 뒤로, 밀리고만 있었지만. 다짜고짜 알바 얘길 꺼내면 최택 성격에 분명 기분 나빠할 게 뻔한데, 평소보다 조금 편해 보이는 애 기분을 한순간에 망치기도 그렇고. 하지만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도 없고. 계산을 하고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조금 늦게 밖으로 나온 정환은 훅 끼치는 바람에 담배 냄새가 섞여있어, 냄새를 좇아 고개를 돌렸다. 분명 차에 가서 먼저 기다리라고 말해뒀는데. 벽에 비스듬하게 기댄 채 담배를 태우고 있는 택이 눈에 들어왔다.

 “담배도 피워?”

 “그럼 안 돼요?”

 아예 제 쪽을 본 채 시선도 피하지 않고 담배 연기를 훅 내뱉는다. 반문하는 그 조용한 목소리를 들으며 정환은 택에게 가까이 다가가 담배를 빼앗았다. 이거 알고 물어보는 거 맞지. 뭐든 간에 내가 제 말에는 안 된다고 못할 거 알고. “안 될 게 뭐 있어.” 대답한 정환이 빼앗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곤 담배 연기를 후욱 뱉어내자, 그런 정환의 옆모습을 가만히 보던 택이 문득 물었다.

 “아저씨는 글이 왜 좋아요? 왜 써요?”

 선선한 바람을 타고 흘러드는 목소리는 조용하고 나직하니 딱 듣기 좋았다. 정환은 고갤 돌려 다시 택을 보며 도리어 물었다.

 “나야말로 묻고 싶었던 거다.”

 “…….”

 “넌 왜 그렇게 싫은데.”

 “내가 먼저 물었잖아요. 아저씨한테 글이 뭔데.”

 정환은 길게 고민도 않고 답했다.

 “내 밥벌이.”

 “그게 다예요?”

 왜 글을 쓰냐고? 다른 누구도 아닌, 책이라곤 있는 대로 다 갖다 버리는 애의 입에서 그런 질문이 나오니, 왜 묻는지 궁금한 동시에, 인터뷰나 공식 자리에서 하는 포장 가득한 대답도 꺼내놓을 수가 없다. 사실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부분이었다.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정환은 제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자극적이고 누가 봐도 이슈만을 노린, 팔리기 위한 글들. 깊은 고민이나 무게감 같은 건 전혀 없이 무작정 이리저리 휘둘리며 흘러가는 글. 확인이라도 하도 하듯 재차 묻는 택을 보며 정환은 담배를 한 번 더 깊게 빨아들였다 숨을 내쉬었다. 글쎄. 나한테 글이 뭘까. 그냥 그게 정말 다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정환은 순간 비죽 웃으며 “아. 그리고,” 하곤 입을 뗐다.

 “어려운 거. 알고 싶은 거.”

 “…….”

 “너만큼.”

 정말로. 지금 내 세계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알고 싶은 것 딱 두 가지가 있다면 주저 없이 꼽을 수 있는 것들.

 “이런 거 진짜 후지다고 했죠.”

 “많이 후져?”

 “촌스러워요.”

 “글 쓰는 사람들이 원래 좀 촌스러워.”

 정환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웃자, 택이 그런 정환을 한참 가만히 보다가 시선을 떨어뜨리더니, 한숨을 길게 뱉으며 말했다. “그래서 싫어해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택을 쳐다보자 그런 정환의 눈은 마주 보지도 않고 중얼중얼 말을 잇는다.

 “글 쓰는 사람들, 촌스럽고 무책임하고 현실 감각 없고.”

 “…….”

 “진짜 싫어.”

 꼭 누군가를 떠올리며 말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무언가 사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었는데. 이렇게 정색을 하고 말하는 걸 보니 이전에 글 쓰던 사람에게서 크게 상처받은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 그러나 무언가 짐작하기에는 뚜렷한 게 한 가지도 없다. 그러니 어떤 말도 쉽게 해줄 수가 없고. 다만,

 “아저씨는 무책임하고 현실 감각 없진 않은데.”

 “…….”

 “촌스럽긴 해도.”

 있는 힘껏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정도의 어필은 할 수 있지. 굳이 촌스럽게 “알잖아. 나 돈 되는 글만 쓰는 거.” 덧붙이기까지 하며 정환이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장난스레 웃으며 말하긴 했지만 날 싫어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마음만큼은 장난일 수가 없다. 여유로운 척 농담을 던지지만 마음만큼은 늘 질질 매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해서 늘 가볍게 넘겨버리지만, 그래도 무시해도 되는 걸로 보이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무책임한 사람도 아니니까.

 머릿속이 그새 시끄러워져서 정환은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담배 끝을 꾹꾹 씹었다. 그러자 정환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택이 “에이, 지지. 그걸 왜 씹어요.” 하고 담배를 빼앗아간다. 기껏 지지, 하고 빼앗았으면서 저도 모르게 제 입으로 다시 갖다 대는걸, 정환이 다시 빼앗아 바닥에 버렸다. 불씨를 죽인다고 꽁초를 꾹꾹 눌러밟는데,

 “아저씨.”

 조그맣게 부르는 소리에 정환은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눈을 마주하기도 전에 입술이 맞닿았다. 정환은 꾹 감은 눈과 가지런히 뻗은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는 걸 잠시 멍하니 보다가, 키스라고 하기엔 영 어색하게 입술만 꾹 눌러찍었다 떨어지는 얼굴을 붙잡아 다시 입 맞췄다.

 

 좁은 골목 모퉁이 앞에 차를 대자, 바로 꾸벅 인사하고 내리려는 택을 붙잡고 무작정 돈부터 내민 정환이었다. 차에서 뭔가 평소와 달리 아무래도 좀 묘한 분위기가 흘렀어서, 내내 말 한 마디 없었다가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내밀어지는 돈에 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거 왜요?” 하고 물었다. “저번에 안 준 책값.”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야, 고맙다는 말과 함께 또 급히 내려버리려는 걸 정환이 다시 한 번 붙잡았다. 이번엔 또 뭐냐는 그 눈빛에 정환이 머릿속으로 한참 말을 정리하다, 안 되겠다는 듯 일단 입을 열고 봤다. 내내 어떻게 정리해서 말을 해야 할지, 그걸로 고민했지만 답은 안 나왔다. 어떻게 해도 어차피 어려울 말이라.

 “집에서 용돈 별로 안 줘?”

 “…… 네?”

 굳어지는 얼굴을 보니 이렇게 첫 마디를 던지면 안 됐던 거 같긴 한데. 그러나 이미 뱉어버린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방금 전까지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깨진 걸 느끼면서도 정환은 이미 말을 시작한 제 입을 막을 수가 없었다. 수습을 해야 하니 다시 급하게 뭐라고라도 덧붙여야지 했는데, 그게 또,

 “돈 필요하면 말해. 내가 더 줄게.”

 “…….”

 “그러니까 알바 그만두면,”

 “아저씨.”

 말을 하면 할수록 굳어지는 얼굴을 보니 영 아닌 말이었나 보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며 힘주어 부르는 아저씨, 소리에 보통 화가 느껴지는 게 아니라서, 정환이 하던 말도 멈추고 택의 안색을 살폈다. 막상 택은 정환을 불러놓고도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제 쪽은 보지도 않고 정면만 바라보고 있는 옆모습이 처음 봤던 그날보다도 훨씬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한참을 말이 없던 택은 정환이 “택아. 그게 아니라,” 하고 말을 잇자마자 그대로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얼른 따라 내린 정환이 급하게 택을 붙잡았다.

 “놔요.”

 “택아. 내 얘기 좀.”

 억지로 붙잡아 돌렸는데 마주 본 얼굴이 그새 눈시울이 붉어져있어서, 정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무슨 얘기. 정말 원조라도 하자는 얘기요?”

 “아니, 그 말이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뭔데요.”

 “…….”

 “아니면 내가 아저씨한테 왜 이유 없이 돈을 받아.”

 돈이 필요하다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해주고 좀 기댔으면 하는 바람이라서. 그 정도도 요구 못 할 사이인 건지 서운해서. 그런 마음이었다. 어떤 일이 됐든 네 일이면 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인데, 나는. 내가 너한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어른이라고 믿었다고. 그러나 택은 도무지 무슨 말을 들으려고 하질 않았다. 틈을 안 줬다. 화가 나 숨을 씨근덕대고 눈까지 빨갛게 물들인 애한테 윽박을 지르거나 도리어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정환은 답답함에 한숨만 연거푸 내쉴 뿐이었다.

 “나는 너 힘든 거 싫어서,”

 “아저씨가 뭔데. 뭔데 그런 생각을 해요.”

 “…….”

 “나 불쌍해요? 적선하는 셈 치는 건가?”

 “…… 택아.”

 “그냥 돈만 주면 끌려 다니니까 재밌죠?”

 더 주면 완전히 휘두를 수 있을 거 같고. 그래서 오늘 그런 데 데려가서 돈 자랑해가며 밥 먹이고 그랬던 거 아냐. 고맙다고 뭐 아양이라도 떨어요? 비꼬듯 묻는 택의 말에 아니라고 아무리 부정해봐도 택은 이미 저 듣고 싶은 말만 들었다. 제 팔을 붙잡고 있는 정환의 손을 차갑게 떼어낸 택이 정환을 완전히 무시하며 걷다 제 집 앞에 다다라선, 여전히 안절부절 저를 따라오는 정환을 보며 못 박듯 말했다. 나 그냥 여기까지만 할래요. 책 안 줘도 되니까 돈 다 다시 돌려드릴게요. 한꺼번에는 어려워도 차차 갚을게요.

 “그러니까 다시 안 봤으면 좋겠어요. 아저씨.”

 그리고 다시 붙잡을 새도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떻게 밤을 샜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 사위가 다시 밝아져있기에 아침이구나, 여기서 밤을 꼬박 샜구나. 했을 뿐이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버리면 정말 다시는 못 볼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정환은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새벽 내내 여기서 밤을 보냈다. 몇 번이고 새벽의 하늘 빛깔이 바뀌는 동안 정환의 마음도 수십 번씩 그 색을 달리했다. 좀 더 말을 신중히 꺼낼걸, 조금 더 조심스럽게 얘기할걸. 안 그래도 저를 쉽게 믿지 못해 몇 번이고 확인시켜줬던 아이인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또 다른 마음 한 편으로는, 그렇게나 몇 번씩 확인시켜줬던 마음을 결국에는 믿지 못하고 순식간에 다시 외면해버린 것 같아 서운함이 울컥 몰려오기도 했다.

 학교를 갈 때가 됐으니 이제 다시 나올 법도 한데. 정환은 시간을 재차 확인하며 저 초록 대문이 다시 열리기만을 바랐다. 마음 상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런데 정말 그런 의미 아니었다고. 미안하다고. 그렇게 어떻게든 사과하고 다시 보지 말자는 얘기만큼은 없던 일로 하자고 얘기할 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나 열리길 바라던 그 집 대문이 열리고 택은 분명 정환의 차가 아직도 어제 그 자리에 서있는 걸 봤음에도 그대로 시선을 돌려 제 발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정환은 차에서 내려 택을 급하게 붙잡았다.

 “최택!“

 돌아보는 얼굴이 쎄하니 굳어있다. 어제처럼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말없이 손만 비틀어 빼내려는 걸 정환이 다시 급하게 붙잡았다. 눈을 맞추려 해도 좀체 시선을 주지 않는 택의 눈은 조금 부어올라 있었다.

 “어제 말했잖아요. 다시 보기 싫다고.”

 조용히 말하는 목소리는 푹 잠겨있었다.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듯 제 얼굴을 훑어낸 정환이 최대한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뗐다. “내가 어제 말을 잘못했어. 미안해. 아저씨 말 한 번만 들어주라.”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 또 횡설수설하려는 스스로가 답답해 정환이 한숨을 몰아쉬며 안절부절못하자, 그제야 겨우 눈을 들어 얼굴을 마주 봐준다. 그런데 그 얼굴이 겨우 하루 만인데도 확 지쳐 보이고 기운 없어 보여 정환은 저도 모르게 입이 다물어졌다.

 “미안할 것도, 잘못한 것도 없어요.”

 “…….”

 “어차피 이제 더 볼 일 없잖아요. 책을 팔 것도 아닌데.”

 아, 진짜구나. 진짜다. 지친 목소리로 하는 말에 여기서 놓치면 이대로 정말 영영 놓칠 거 같단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숙여 한숨을 푹 내쉰 정환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겨우 다시 택을 마주 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볼 일이…… 왜 없어.”

 “…….”

 “빌려준 책 돌려줘야지.”

 “…… 아저씨.”

 “아끼는 책이야, 그거.”

 “…….”

 “그러니까 다음번에 그거 들고 찾아와.”

 다른 건 몰라도 다시 보지 말자는 얘기만큼은 거두어들이게 하고 싶어서 정환은 빌려줬던 책이라도 운운하며 시간을 끌려고 했다. 지금은 너무 화가 나고 지치고 힘들어서 무슨 말을 들어줄 여유도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책을 다시 돌려주러 오면 그때는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저 역시 무슨 말이라도 다시 준비해서 차근차근 얘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사실은 다 떠나서 그냥 무작정 시간을 끌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책 버렸어요.”

 “뭐?”

 “버렸다고요.”

 이제 정말 볼 일 없어요. 갈게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택의 뒷모습을, 정환은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눈이 떠진다. 잠이 깼음에도 이불을 덮어쓴 채 한참이나 눈만 한참 깜빡이고 있던 정환은 가려지다 만 커튼 사이의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빛에, 자리에서 일어나 빛이 새어들어온 틈이 없도록 다시 꼼꼼히 커튼을 쳤다. 그리곤 다시 침대에 돌아와 누웠다. 그냥 의욕이랄 게 없었다. 안 그래도 택을 만난 뒤부터 영 더디게 흘러가던 글 작업은 이제는 아예 접은지 오래였다. 택이 대놓고, 어차피 다 같은 삼류 로맨스 소설이나 쓸 거 아니냐며 막무가내로 공격을 퍼부었을 때에도 택의 말대로 이런 글이나 붙잡고 써내 돈벌이 하는 게 낯이 뜨거워 도저히 뭘 써내질 못했는데, 지금은 제게 비아냥거렸던 그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콱 막히는 기분이 들어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스스로 지독한 자기혐오에 시달리면서도 글을 쓰는 일을 계속 이어갔던 건 벌어먹자고 팔리는 글을 쓰면서도, 그런 글이나마 어쨌든 글을 쓴다는 것 자체를 이어나갈 수 있어 좋았어서. 단순히 그래서였다. 내 지겹고 꼴보기 싫고 모두 다 불태워버리고 싶어져도 정환은 항상 어느 틈엔가 글을 쓰고 있고는 했다. 습관처럼. 그렇기에 언젠가 막연히, 글을 쓰는 직업이 아니면 안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던 정환이었다. 다만 처음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 그렸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많은 부분 다르지만. 그래도 그 마음만큼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 글을 좋아하고 찾고 유명세도 누리고, 그걸로 돈도 넉넉히 벌 수 있으니 다 괜찮다고, 아니 사실 가끔은 꽤 우쭐대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 모든 것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을 보면 그랬다. 그것만큼 부질없는 것이 없었다. 어차피 팔리는 글이나 쓰는 작가 아니냐고 비웃는 택의 시선을 견디는 것도 마음 따가울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아저씨한테 글이 뭐냐고 물었던 택에게 진지하게 돌려줄 수 있는 대답이 아무것도 없었던 스스로가 가장 어이없고 우습고, 한심했다. 그 정도의 고민도 덮어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게나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던 스스로를 누구보다 잘 아니까.

 침대 맡에 놓인 휴대 전화에 정환은 눈길도 안 주고 거실로 나갔다. 어차피 출판사에서 오는 지독한 독촉 전화 때문에 전원은 진작 꺼둔 상태였다. 까맣게 화면이 죽은 휴대 전화를 뒤로하고, 거실 소파에 앉으니 바로 정면에 보이는 책장 끄트머리 한구석에 책 한 권이 비어 유독 더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칸이 눈에 들어온다. 그게 무슨 책의 자리인지 정환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택에게 책을 받으면 이 책장에 꽂아뒀는데, 나중엔 자리가 없어 집안 구석이나 책상에 아무렇게나 쌓아두면서도 저 칸만은 채우지 않고 비워뒀었다.

 밤의 이면. 그 책의 자리.

 시작점이 된 책이었다. 여러 면에서. 택과 제 사이 뭔가 처음으로 주고받은 것이라 관계의 시작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 책이었지만, 그 책은 정환이 처음으로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만든, 어찌 보면 작가로서의 김정환의 시작점이 된 책이기도 했다. 생활에 깊숙이 맞닿아있는 숱한 고민들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솔직하고 적나라하지만, 말하는 어조에는 다정함이 묻어났던. 그래서 이런 글을 나도 한 번쯤은 꼭 써야지. 그렇게 다짐했었다. 결론은 제가 가는 길은 그 책과 완전히 반대의 길을 걷게 되긴 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자주 다시 읽어보게 됐던 책이기도 했다. 안타까운 게 있다면, 다만 누가 봐도 매끄럽게 쓰였다고 보긴 어려운 글이어서 그런지, 평단에서도, 대중들에게도 크게 주목을 받진 못했다는 것이었다. 정환은 오히려 그 투박하고 촌스러운 느낌이 좋았던 터라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더 있나 찾아봤지만 이 작품 외에는 없었다. 더군다나 몇 달 전 겨우 찾아낸 그 작가 관련 기사에서는 그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쉽지만 앞으로 다른 작품을 기대하기는 더 어렵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아는 사람도 얼마 없을 그 책을,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한참이나 만지작거리는 택의 모습이 얼마나 묘하게 다가왔었는지. 결국 어떻게든 연결 고리를 만들어보겠다고 그 책을 택에게 빌려주기도 했었다. 아끼는 책이니까 꼭 돌려달라는 말까지 덧붙여가며. 그러나 그 책을 택은 버렸다고 했다. 아낀다고 했던 그 책을.

 그게 꼭 제 진심이 버려진 기분이 들어서.

 한참이나 책이 빈자리를 눈으로 더듬던 정환은 잠을 청하려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정환은 요새 잠으로 도피처를 정한 듯, 쉴 새 없이 자고 또 자는 것만 반복했다. 그게 얼마나 바보 같고 비겁한 일인 줄 알면서도, 지금 당장은 뭘 어떻게 할 엄두가 안 났다. 모든 것을 외면하고 도피하기로 맘먹게 한 시발점이 무엇인 줄은 알았지만 꼭 그날이 문제의 모든 것은 아니고, 지금은 우울보다는 무기력함이 정환의 온몸을 덮친 상황이었다. 불시에 손을 놓아버린 많은 것들 중에서 뭘 먼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침대에 멍하니 기대앉아 있던 정환은 문득 옆에 놓여있던 휴대 전화를 집어 들었다. 전화를 꺼두기 전 마지막까지 전화를 걸었던 상대는 택이었다. 몇 번을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더 이상은 전화를 할 일도, 올 일도 없겠거니 싶어서 미련 없이 전화를 꺼뒀었는데. 그래도 출판사 쪽에 연락은 넣어놓는 게 낫겠지, 그런 생각이 이제야 들어 전화를 켜는데,

 “어…….”

 수십, 수백 개씩 뜨는 부재중 통화 기록 중 잘못 본 건가 싶은 이름이 있어서. 정환이 멍한 얼굴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길어야 몇 줄로 정리되는 글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무게감은 어느 정도일까. 몇 달 전, 좋아하는 작가의 소식을 찾다가 그가 혼수상태에 접어들어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정환이 느꼈던 무게감은 사실상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그 무게감이 마치 목을 죄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독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현실로 부딪히는 일이라는 건 대체로 그랬다.

 한참만에야 전화를 받은 택이 했던 첫 마디는 “아저씨, 나 아파요.” 하는 말이었다. 작게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다 쉬어있었다. 그 뒤로는 더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쌕쌕 숨만 내쉬는데 그 숨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핑 돌 것 같아서 바로 나갈 채비를 하고 택의 집에 찾아온 정환이었다.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고 길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도 왜 이 길을 다시 오기가 그렇게 힘이 들고 오래 걸렸던 건지.

 낡은 집의 문을 두드리며 “택아.” 하고 부르자, 열리는 문 사이로 보이는 얼굴이 핼쑥하게 상해 있어서 정환은 바로 택의 이마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곧바로 울 듯한 얼굴이 되더니 기다렸다는 듯 제게 기대오는 택을, 정환은 그저 마주 끌어안으며 등을 가만가만 쓸어줬다. 오른손에 들린 약 봉투가 자꾸 바스락거렸다.

 “너 이렇게 열이 높아서 어떡해.”

 “…… 죄송해요.”

 “뭐가.”

 “아저씨밖에 생각이 안 났어요.”

 동그란 뒤통수를 살살 쓸어 만져주니 어깨에 고개를 파묻으며 더 깊숙이 기대온다. 그에 정환은 그저 말없이 계속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나라도 생각이 나서 다행이지.” 하며. 이럴 게 아니라 병원을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에도 택은 아무런 대답 없이 계속 정환에게 몸을 기대고 있을 뿐이다. 조심스럽게 떨어뜨려 얼굴이라도 보고 다시 물으려니, 얼른 고개를 저으며 허리를 끌어안아 더 품에 파고드는 걸, 확실히 전보다도 더 살이 빠진, 마른 몸이 안쓰러워서 어쩔 수 없이 내버려 뒀다.

 그렇게 한참이나 더 다독여주다 방 안에 애를 눕혀 재우고 나서야, 정환은 이런저런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이 없었는지 어지럽게 정리가 안 되어있는 집 안과 구석구석에 놓여있는 책들, 그리고 방 한구석에 놓인 액자.

 “…….”

 검은 띠를 둘러놓은 걸 보니, 누군가의 영정 사진이다. 딱 봐도 분위기가 택과 많이 닮아있는 걸 보니 택의 아버지인 듯했다. 액자를 집어 들었던 정환은 막 잠이 든 택을 내려다봤다. 최택 그 고집스러운 성격에, 다신 안 보겠다는 말까지 했으면서 왜 갑자기 연락을 했던 걸까 그렇게 생각을 하긴 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일 줄은……. 택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저를 찾았을 때, 잠이나 잤을 제 모습을 생각하면 체한 것처럼 속이 답답해졌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해줘야 할까. 어떻게 하면 기운 좀 나게 할 수 있지. 갑작스러운 일이라 정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우왕좌왕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일단 애 깨어나면 먹일 죽이라도 끓이려고 액자를 탁자 위에 내려놓는데, 그 옆으로 익숙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버렸다더니…….”

 반가운 마음에 책을 펼쳐들었던 정환은 문득 드는 기시감에 멈칫했다. 책 표지 안쪽 '작가의 말'에 실린 얼굴, 분명……. 설마 하는 마음에 고개를 비스듬히 꺾었던 정환은 탁자에 내려뒀던 영정 사진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봤다.

 “아.”

 다시 봐도, 그 작가가 맞았다.

 

 한 평생 글 쓰는 일밖에 몰랐던 아버지였다. 끊임없이 책을 사 모으고, 돈이 되지도 않을 글 끼적이는 일에나 전념하느라 방에 콕 박혀 나올 생각을 하질 않던 아버지. 집안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관심도 없고, 돈벌이를 제대로 해오는 것도 아니면서 글을 쓸 때면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예민해졌었다. 때문에 엄마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살림으로도 모자라 늘 그 뒤치다꺼리에 돈벌이까지 하느라 바빴던 엄마는 결국 잠깐 시장 다녀오겠다고 나가선 며칠 밤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로 아버지는 글에 더 몰두했고, 택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은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저를 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린 엄마에게는 원망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란 이해가 앞섰고, 모든 화와 미움과 원망은 죄다 아버지에게로 쏠렸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식물인간이 됐다. 치료를 이어갈 거냐는 말에 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 와중에도 눈을 감은 채 누워있는 제 아버지는 그렇게 편해 보일 수가 없어서, 어쩌면 어디까지 나를 힘들게 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던 택이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인생과도 같았던 책들을 중고 서점에 무작정 팔아넘기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좁아죽겠는 집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어 지긋지긋하게 꼴 보기 싫었던 책들을 하나둘씩. 그 인간 죽어서까지 책 짊어지고 가는 꼴은 도저히 속 답답해 못 보겠어서.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

 “생각보단 그렇지도 않네요.”

 한숨 자고 일어나 조금 진정이 됐는지, 무릎을 모아 앉은 택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기껏 힘들게 알바 해서 병원비 댄 보람도 없이 며칠 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무슨 정신인지도 모르게 장례를 치르고 나자 몸이 으슬으슬 춥더니, 그대로 몸살감기에 걸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고. 이렇게 아픈데도 챙겨주는 사람 하나 없이 텅 빈 방에서 그저 혼자 앓고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정환이었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흐릿해지고, 이제는 아버지의 온기마저도 사라진 텅 빈 공간을 눈으로 더듬으며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약을 먹었는데도 아직 열이 떨어지지 않아 조금 붉어진 얼굴로, 택은 “그리고 저 사실요.” 하고 입을 열었다.

 “진짜 혹시라도, 그런 기대했었거든요.”

 “…….”

 “아버지 때문에 떠난 거니까, 아주 어쩌면 이제는 엄마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아무리 메시지를 남기고 전화를 해도 받질 않았거든요. 십 년 동안. 번호가 바뀌어서 다른 사람이 받거나 아예 없는 번호라고 뜨면 모르겠는데, 신호음은 또 가요. 근데 꼭 중간에 뚝 끊겨요. 이번에도 그랬어요. 답장도, 찾아오는 일도 없었어요. 당연한 일인데 기운이 쭉 빠지는 거 있죠. 진짜 웃기죠, 저.

 그렇게 말한 택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얼굴이면서, 웃었다.

 “그러다 정말 아무도 없이 혼자 남은 거 같아서,”

 “…….”

 “괜히 무서워져서 아저씨한테 전화를 했는데.”

 “…….”

 “아저씨도 전화기 꺼져있다고 그러고…….”

 푹 잠긴 목소리로 더듬더듬 이어나가는 말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어서 정환은 그대로 택을 품에 끌어안았다. 품에 안기자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단박에 울음이 터지는데, 그게 그렇게 서럽게 느껴질 수가 없어서 정환은 택을 끌어안은 채 몇 번이고 그 마른 등을 쓸어내리고 어깨를 감싸 안아줬다. 아픈데 울기까지 하면 더 진 빠지고 힘들 텐데.

 나는, 아저씨가 정말 나 다신 안 볼까 봐. 그때 한 말을, 내가 얼마나 후회하고……. 나 아저씨 진짜, 싫어요……. 왜 작가 해요? 딴 거 해…….

 울음 때문에 다 뭉개진 발음으로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데, 이제껏 들은 적 없는 투정 어린 말들이라 마음이 더 미어지는 기분이었다. 어디 가버릴까 봐 겁이라도 나는지 택은 정환의 허리께의 옷자락을 꼭 붙들고 있었다. 옷이 구깃해지도록 꼭 그러쥔 손을 보는데, 어쩌면 평소와는 다른 기색으로 잠깐 시장에 다녀오겠다던 제 엄마를 이렇게 붙잡고 싶었을 수도 있고,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않는 아버지에게도 한 번쯤 이렇게 안기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게 등을 보인 아버지를 멀찌감치서 보는 수밖에 없었을 어린 날의 택이 자꾸 머릿속에 그려져서, 정환은 제가 더 울고 싶어졌다.

 옷자락을 쥔 손을 떼어내자 고개를 들어 저를 쳐다보는 눈이 바쁘게 흔들린다. 정환은 떼어낸 손을 깍지 껴잡으며 손등 위로 입을 맞췄다. 그리고 눈물로 젖은 볼이며, 부어오른 눈가에도 입을 맞춘 정환은 조심스럽게 택의 입술을 머금었다. 아랫입술을 강하게 빨아들이자 벌어지는 입술 새를 가르고 들어가 서로의 귓가에 질척거리는 소리만 울리도록 진하게 핥고 옭아매자, 깍지를 끼고 있는 택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정환은 그런 택의 손을 더 빈틈없이 꽉 맞물리게 마주 힘주어 잡아주곤, 눈을 감은 채 택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금은 꼭 감겨있겠지만 눈을 뜨면 동그랗고 사랑스러운 눈매, 때때로 처연하게 느껴지던 눈빛, 쭉 뻗은 콧날과 갈라진 코끝, 언제 봐도 입 맞추고 싶은 입술. 손을 푼 정환은 조심스럽게 택을 밀어 눕혔다. 자연스레 입술이 떨어지고, 쪽 소리가 나게 몇 번 더 짧은 입맞춤을 한 정환이 머리를 쓸어 넘겨주는데,

 “아저씨…….”

 그대로 일어나려던 정환의 손을 택이 붙잡았다. 손바닥에 입을 맞추곤 그 손을 끌어다 제 뺨에 부빈다. 안아달라는 듯 팔을 뻗는 택의 귀 옆으로 정환이 한 팔을 짚은 채 몸을 다시 숙이자, 둘이 시선이 마주쳤다. 이미 온 얼굴이 축축하게 다 젖을 정도로 울었으면서 또다시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이 붉게 젖은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택을, 정환은 말없이 내려다봤다. 그렇게 서로 숨죽여 눈만 마주하는데, 택이 먼저 정환의 목을 끌어안으며 두툼한 입술을 혀를 내어 살짝 핥았다. 그럼에도 정환이 쉽게 입을 열어주지 않자, 택이 칭얼거리는 것처럼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숨이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울리는 그 소리에, 정환은 그 입술에 제 입술을 다시 포개며 택의 위로 올라탔다.

 

 “너 못 보는 동안 내가 얼마나 폐인 같이 살았는지 알아?”

 “그걸 제가 알아야 해요?”

 쏘아붙이듯 말하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멍하니 쳐다보자, “그러다 사고 나요. 앞에 봐.”하고 툭 말을 뱉는다. 며칠 지극정성으로 밥 해먹이고 제 때 약 챙겨주고 했더니, 이젠 좀 살만한가 보구나. 당황했던 것도 잠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몸살 다 나은 게 어디냐고 생각하기로 한 정환이었다. 기운 없는 얼굴로 가만히 고개 끄덕이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그럼. 정작 저는 그대로 택에게 옮아 기침을 연달아 하면서. 연달아 터진 기침에 목이 쓰려서 인상을 살짝 찌푸렸더니, 신호 걸린 사이에 물을 건네주는 택이다. 아저씨를 가지고 노네, 아주. 그렇게 생각하며 웃은 정환이 말을 이었다.

 “난 좀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

 “너 못 보는 동안 정말 아무것도 못 하고, 못 쓰고,”

 “오. 그건 좋다.”

 그새 아무것도 못 썼다는 말만큼은 귀신같이 알아듣고 반응한다. “너는 내가 길거리에 나앉았으면 좋겠나보다.” 중얼거리며 정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이유로 글 쓰는 일이며 작가며 싫어했던 건지 대충 알고 나니, 정환도 거기에 더 이상 무슨 말을 보태고 싶진 않았다. 가족에 대한 문제는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종류의 것임을 잘 아니까.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면,

 “내 책을 줘도, 내 책도 버릴 거야?”

 “네.”

 정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떨어지는 대답에 정환이 또 한 번 천천히 고개를 돌려 택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자 택은 “앞에 봐요.” 하고 앞쪽으로 턱짓만 할뿐, 정환의 쪽으로는 시선 한 번 주지 않는다. 그래, 누구의 책이든 책은 다 보기 싫겠지. 애초부터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택이 말한 대로 운전에나 집중하는데, 한참 후에야 옆에서 택이 조용히 무어라 중얼거렸다. 못 들었다고 하니 택이 “버리진 않겠다고요.”하고 다시 힘주어 말했다.

 “어? 뭘.”

 “아저씨 책이요. 버리진 않을게요.”

 “…….”

 “읽지도 않겠지만.”

 “굳이 뒷말은 안 하는 게 좋았을 뻔 했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싶어서 정환은 “고맙다, 그래도.” 하며 손을 뻗어 택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줬다. 마침 신호가 바뀌어 시선을 돌리진 못했지만, 옆에서 조용히 꼼지락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괜히 머리를 다시 한 번 만진다든지 고개를 또 푹 숙이고 있겠지. 답지 않게 쑥스러움을 타는 최택은 언제 봐도, 언제 떠올려도 사랑스럽다. 정환은 기분 좋게 웃었다.

 정환의 집 앞에 도착해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내려준 정환은 트렁크 문을 닫다가 드르륵, 하고 울리는 캐리어 끄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꼭 언젠가 봤던 것처럼 캐리어를 쥐고 혼자 느릿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얼른 쫓아가 택의 손에 잡혀있던 캐리어를 빼앗아들었다. 그리곤 캐리어를 반대쪽 손에 옮겨 잡고선 택에게 손을 내밀었다. 낯간지럽다고 빼면 어떡하나 싶었던 생각이 무색하게, 택은 한 번 픽 웃더니 정환이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가벼운 발걸음 뒤로 캐리어가 여전히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떨며 딸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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