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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환은 아무런 기별도 오지 않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번 더 통화 버튼을 누르고는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자 역시 같은 메세지가 나오고 있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정환이 인상을 쓰고는 전화를 끊었다. 며칠째 연락이 안 되고 있었다. 택은 가끔 무작정 연락 없이 사라지고는 했다. 정환이 제일 싫어하는 버릇이었으나 쉽게 고쳐지질 않았다. 짜증스럽게 이마를 문지른 정환이 전화기를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시발. 정환은 들릴듯 말듯 혼자 읊조렸다. 마침 현장에 있던 감식반 팀원이 나와 정환을 맞았다.

 "들어와서 보세요. 형사님."

 정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턱에 걸쳐져 있던 마스크를 올려 썼다. 폴리스라인을 넘어 들어간 곳은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던 피는 이미 응고되어 검붉어져 있었다. 바닥에 늘어져있는 시체의 상의는 난도질 되어있었다. 옷뿐만 아니라 가슴께와 배와 여기저기가 아가미처럼 벌어져있었다. 정환이 쯧, 혀를 찼다.

 "미친놈이네 이거."

 "아무래도 싸이코패스 같죠? 엄청난 놈이에요. 칼로 찌른 곳 모두 한방에 찔러 넣었어요. 망설인 흔적이나 반항흔도 없구요."

 팀원의 말에 정환이 피식 웃었다. 성인 남자의 몸에 칼을 정확히 한방에 찔러 넣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통의 힘과 기술만으로는 되는 일이 아니었다. 살인사건은 보통 원한관계로 일어나기 마련이었고, 대체로 어설픈 증오가 흔적으로 군데군데 남아있기 마련이었다.

 "전문 업자거나,"

 "도축하는 인간이거나."

 팀원의 말에 정환이 다시금 웃었다. 정환이 한쪽으로 늘어서 있는 증거물품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펜던트 대신 반지가 달린 목걸이가 놓여있었다. 살해된 50대의 남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정환은 그 목걸이를 응시했다. 낯익은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이거 여기서 나온 거죠?"

 정환이 묻자 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문 나왔어요?"

 "지문이랑 머리카락 다 나왔어요. 결과 나오면 바로 보내드릴게요."

 정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증거물품들을 한데 모아 차로 옮겼다. 날씨는 화창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에 정환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씨는 좋은데 최택은 또 사라졌다. 머리 아프다. 정환은 중얼거렸다.

 

 낡아 색이 바랜 회색 운동화는 택이 제일 좋아하는 운동화였다. 현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운동화를 보고 집으로 들어서던 정환은 멈칫했다. 최택이 돌아왔다는 말이었다. 돌아왔음에 안도했지만, 여전히 최택의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입을 열면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거실로 올라섰다. 불 꺼진 거실은 고요했다. 방 문을 여니 어둠 속에서 웅크려 누워있는 인영이 보였다. 사과는 택의 등에 제 등을 붙이고 자고 있었다. 정환은 형광등 대신 책상 위 스탠드를 켜 방을 밝혔다.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는 택의 옆에 조심스레 앉았다. 뒤에서 고개를 빼 얼굴을 내려다보니 잘빠진 코며, 턱선이며 그대로였다. 무심결에 정환이 손을 내려 손등으로 얼굴을 쓰다듬는데 손등에 닿은 얼굴이 제법 뜨거웠다. 택이 으응.. 하고 뒤척였다. 사과는 움찔하더니 조용히 기지개를 켜고, 정환의 무릎에 이마를 비벼왔다. 정환이 택의 이마를 짚어보자 택이 스르르 눈을 뜬다.

 "너 열 있다."

 "정환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정환의 이름을 부른 택이 가슴을 들썩일 정도로 크게 한번 기침을 했다. 정환이 택의 곁에 조금 더 가까이 앉았다. 정환은 택의 이마를 짚던 손을 내려 뺨을 쓰다듬었다.

 "괜찮아?"

 "이제 왔어?"

 "왜 아프냐. 화도 못 내게."

 정환의 말에 택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가라앉은 정환의 목소리가 서글프게 들렸다.

 "미안해..."

 때때로 말없이 사라지고는 하는 택의 행동을 정환이 싫어한다는 것을 안다. 택이 할 말을 삼켜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정환이 택의 목울대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추워 보이는 목이라고 생각했다. 그 추워보이는 목이 외로워 보인다고 생각했을 때 택을 좋아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런 정환이 택에게 제일 처음 한 선물은 목도리였다. 정환이 선물한 흰색 목도리를 두르고 쑥스러운 듯 웃던 그 얼굴은 아직도 선연했다.

 "더 자."

 정환이 이불을 택의 목께까지 끌어올려 주었다. 사과가 택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사과는 언제나 택을 좋아했다. 침대에서 일어선 정환이 눈을 감는 택의 모습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화를 내고 싶어도 입 밖으로 내뱉어 확인하는 순간 찾아올 균열이라는 것을 알았다. 택을 어찌해야 할지 정환은 몰랐다. 이유를 물으면 입을 다무는 연인이 지겨웠지만, 부딪쳐오는 입술엔 속수무책이었다. 생각은 깊어졌다. 너는 왜 나에게 왔을까. 우리는 왜 함께 하는 것일까.

 

 

 "지문 감식 어떻게 됐대요?"

 "일치하는 지문 없다고 전화 왔어요. 외국에서 업자 사서 쓴 거 같은데 이거 복잡해지겠는데요."

 "빚도 없고, 애인도 없고, 하루에 거래처랑 연락 두세 번 하는 사람을 사람까지 사서 죽일 이유는 뭐야."

 정환이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했다. 사건 현장 잠복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지 며칠째였다. 범인은 현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팀원의 말대로 돈을 받고 일하는 업자라면 현장에 돌아올 이유가 없으니까. 장기전이 될 것 같았다. 사건 파일을 넘겨보던 정환이 파일을 손가락으로 튕기고는 몸을 뒤로 기댔다. 의자 뒤로 머리를 넘기고 이마에 손등을 올렸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문득 택이 생각났다. 뭐하고 있을까. 병원은 갔다 왔을까. 무언가 번뜩 스치고 가는 생각에 정환이 의자에 기댔던 몸을 튕기듯 일으켜 세웠다. 사건 파일을 몇 장 더 넘기자 증거 목록 사진이 나왔다. 체인에 반지가 달려있는 목걸이. 낯익던 이유가 있는 목걸이였다. 모든 가능성을 의심해야만 했다. 사진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목걸이. 택의 웃는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정환이 핸드폰을 들어 택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는 동안 정환은 급히 일어서 파일더미를 챙겨들었다.

 "택아. 집으로 좀 와."

 작은 틈새로 삐져나온 의심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뒤흔들 만큼 폭발적이었다. 아무런 말없이 사라졌던 최택. 사건이 발생한 날 택이 돌아왔다. 현장에 떨어져 있던 목걸이. 너무 당연하게 아니라고 생각해 지나친 것들이었다. 가끔 택과 함께 보던 뉴스에서 나오던 살인사건들을 떠올렸다. 정환은 핸들을 잡은 손이 떨리는 것 같아, 주먹을 쥐었다 펴보았다. 후우 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택이 오고 있는 것을 알았는지 구석에서 잠을 청하던 사과는 어슬렁 어슬렁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쇼파 팔걸이에 팔을 기대고 있던 정환은 힐끗 사과를 보았다. 자세를 잡고 현관 앞에 앉아 택을 기다리는 사과. 곧 이어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정환은 차마 택을 바로 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떨궜다. "사과야." 하고 부르는 택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 왔어."

 정환이 고개를 들자 택이 서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말간 얼굴을 하고. 정환은 파일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택의 앞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손을 떨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정환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 사람 알지."

 택이 정환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사진을 자세히 보려고 허리를 숙였다. 택은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정환은 오른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겨우 고개를 들어 택의 얼굴을 보았다. 택은 딱히 놀라거나, 두려워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택도 곧 정환을 마주 보았다. 정환이 파일을 열어 증거물 사진을 꺼냈다. 그 언젠가 택의 목에 달려있던 목걸이였다.

 "정환아..."

 "진짜 너야?"

 택이 다른 말을 하기도 전에 정환은 말을 끊었다. 그제야 정환은 택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이 사는 곳은 어딘지, 무슨 일을 하는지. 수많은 날을 함께 지내왔으면서도.

 "너 뭐야...?"

 정환이 울컥해 너, 하고 끊기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죽였어?"

 정환의 물음에 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메고 있는 크로스백 가방끈을 꾹 쥐었다. 택의 손등 위로 핏줄이 툭 튀어 올랐다. 정적이 흐른 뒤에 택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의뢰 받아서."

 "의뢰?"

 기가 차는 대답이었다. 택은 의뢰를 받아 사람을 죽였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닌 돈을 보따리로 꾸려와 사람들은 말했다. 이 사람을 죽여주세요. 택은 의뢰인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다. 브로커들은 그저 택에게 돈과 지시사항을 건넬 뿐이었다. 사람들의 증오는 서로 생김새가 달랐고, 증오 혹은 복수의 방식 역시 그랬다. 택의 직업은 그저 사람의 모양으로 남은 증오를 제거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서있는 택의 발치에 사과가 왔다 갔다 몸을 부볐다. 정환의 붉어진 눈이 택을 응시하고 있었다. 택이 정환의 앞에 꿇듯이 앉았다. 택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정환의 한쪽 뺨을 만졌다. 괴로움이 고여있는 마른 뺨이었다.

 "정환아."

 정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택의 눈을 바라보던 시선이 바닥으로 떨구어졌다. 택이 정환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었다. 택은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고 정환에게 용서를 빌 날을.

 "미안해. 숨겨서 미안해."

 

 

 그렇게 택이 떠났다. 정환은 택이 아무런 증거를 남겨놓지 않음을 알았다. 택이 입고 있던 티셔츠도, 바지도 모두 정환의 것이었다. 정환은 택의 주소도 몰랐다.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걸지 않았다. 택이 빠져나간 집은 지독히도 쓸쓸했다. 정환은 집에 들어오면 다른 것도 하지 않고 매일 잠만 잤다. 사과만이 집에 들어서는 정환을 노려볼 뿐이었다. 택은 어디 갔냐고 묻는 것 같았다. 정환이 집에 있어도 사과는 택을 기다리는 것처럼 현관문 앞에 앉아있고는 했다.

 "사과야."

 사과는 돌아보지 않고 뒷통수만 보여주고 있었다. 정환이 입을 꾹 다물었다. 간식 캔을 까 앞에 내려놓아도 조금 먹다 말았다. 정환이 얕게 한숨을 쉬었다. 간식들은 택이 사다가 채워놓은 것이었다. 정환의 부드러운 사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고싶지."

 

 며칠 만에 들어오는 집은 냉기가 감돌았다. 신발을 벗고 마룻바닥을 딛자 냉기가 발을 타고 올라와 정환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겉옷을 벗어 던지고, 불을 켜자 예상 밖의 인영이 나타났다.

 "씨발 깜짝이야!!"

 쇼파에 귀신처럼 흰 얼굴을 하고 앉아있는 것은 택이었다. 깜짝 놀란 정환이 여전히 전구 스위치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는 허리를 숙였다. 오른손으로 심장께를 붙잡은 정환이 여전히 허리를 펴지 못한 채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택은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집 주인한테 말도 없이 들어와, 불도 꺼놓은 채 쇼파에 앉아있는 인물은 누구든 간에 예상 밖의 인물이다.

 "뭐야. 귀신이냐?"

 택은 정환의 말에도 대답 없이 그저 앉아서 눈만 깜빡거릴 뿐이었다.

 "사과 너무 오래 혼자 두면 안 돼."

 택의 갑작스러운 한 마디에 정환이 허, 하고 작게 실소를 터트렸다. 불청객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혼자 두면 안 되는 사과는 택에게 안겨 택의 팔에 턱을 올리고 잠들어 있었다. 그제인가 옷 갈아입느라 잠깐 집에 들어왔을 때 사과는 애옹거리며 정환의 발치를 맴돌았다. 정환은 미안해서 사과의 턱을 한참 긁어주고는 사과의 밥을 사과의 밥그릇에 듬뿍 부어주고는 나갔다. 택은 사과의 하얀 털을 쓰다듬고 있었다.

 "마스크 쓰고 있으니까 진짜 무슨 범죄자 같다."

 정환이 비꼬듯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택에게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었다. 정환의 집에 오래 머물 때마다 택은 언제나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서는 끝없이 기침을 하고는 했었다. 눈물 콧물을 매달고서는 저를 좋아하는 사과를 좋아해주던 택이었다. 사과는 주인인 정환보다는 택을 좋아했다. 아침에 깨어나 사과를 찾으면 사과는 언제나 택의 옆구리 꼭 붙어서 자고 있었다. 섹스를 하느라 닫아둔 문을 아침에 열어두면 사과는 뛰어들어와 택의 품에 푹 안겼다. 택이 오면 언제나 좋아서 애옹거리며 택의 발 꽁무니를 쫓아다니고는 했다. 그러다 조심성 없는 택의 뒷발에 턱을 얻어맞으면서도 택을 좋아했다. 이 집에 사는 두 수컷들은 택을 참 좋아했다. 정환이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도 택은 여전히 사과를 안은 채로 쇼파에 앉아있었다.

 "마스크는 기침 나서?"

 정환의 물음에 사과의 이마를 긁어주고 있던 택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환이 가까이 다가서자 택이 정환을 올려다보았다. 정환은 잠들어 늘어져있는 사과를 안아올렸다. 사과는 졸린지 택의 팔을 두발로 붙잡았다.

 "사과. 너 이렇게 모르는 사람 집에 들어오게 두면 어떡해 이놈의 자식아."

 정환이 말하며 사과의 얼굴에 입술을 가까이하자 사과는 앙증맞은 두발로 정환의 얼굴을 밀어냈다. 정환이 사과의 몸을 틀어 옆얼굴에 쪽쪽거렸다. 사과를 바닥에 내려주자 고새 택의 발치에 가서 배를 깔고 눕는 사과였다. 하여튼 최택 좋아하기는. 사과를 내려놓자 두 사람 사이엔 정적만이 가라앉았다.

 "가. 나 잘 거야. 집에 며칠 만에 왔어."

 정환이 옆으로 비켜서며 문가로 팔을 쭉 뻗었다. 나가라는 듯한 제스처였다.

 "정환아."

 택이 정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정환의 눈에 피로가 차는 것이 보였다. 사과를 처음 데려온 것은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였다. 손에 올려둔 사과는 하얀 떡 같기도 하고, 비누거품 같기도 했다. 온기라는 것은 놀라워서 이미 손에 닿는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음을 알았다. 그 쬐그맣던게 집안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그 후 정환은 최택을 만났다. 사과만큼 사랑스러운 게 또 나타날 리 없다고 믿었던 정환 앞에 최택이 나타났다. 그러니 최택이 저렇게 자기 이름을 부르면 속수무책이 되는 것이다. 정환은 도망치는 법을 잊어버렸다. 마치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그 사이로 돌아가는 것 같아 정환은 피곤해졌다. 힘들게 결정해놓은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정환은 택이 부르는데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 아직 용서 안 해줘..?"

 택의 말에 정환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말은 조각조각 부서져 혓바닥 위에서 흩어졌다. 쉽사리 나오지 않는 말들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그럴듯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용서하고말고 할게 뭐 있어. 내가 뭐라고."

 "잘못했어 정환아."

 잘못을 빌 때는 언제나 아이 같았다. 정환이 코로 한숨을 내쉬었다. 정환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순진무구한 눈을 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눈 너머로 정환이 모르는 최택이 너무 많았을 때에 정환은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정환이 손을 뻗어 택의 머리를 만져주었다. 뒤통수를 쓰다듬자, 택이 익숙하다는 듯이 정환의 배에 머리를 기대왔다. 정환은 손가락에 택의 머리칼을 걸었다.

 "택아. 뭐가 맞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정환아. 우리,"

 "밥은 잘 챙겨 먹어?"

 "... 응..."

 할 말이 있는 듯이 이름을 부르는 택의 말을 끊고는 묻는 정환이었다. 택이 기운 빠진 목소리로 나긋하게 대답했다.

 "손목 아픈 건 좀 어때."

 "병원 다녀서 괜찮아."

 "잘했네."

 서로 끊임없이 질문했지만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없는 대화였다. 오가는 말들은 진실로 하고 싶은 말들은 아니었다. 괜찮은 척했지만, 괜찮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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