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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엄마 진짜 싫다니까요."  

 정환은 모피코트에 금방이라도 쇼에 설 수 있을듯한 화장을 한 라 여사의 손에 이끌려 친구들과의 약속도 취소하고 온 곳에 엄청난 반감을 표하고 있었다. 노랗게 칠해진 벽은 이미 해져 노란색보단 회색 시멘트가 더 보이는 꽤 낡은 건물의 간판을 읽은 정환은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교망성공.점집이였다 그것도 아주 유능하다는.

 "잔말 말고 빨리 따라와. 별거 아니야."

 라여사는 억센 손길로 정환을 잡아끌었다. 2016년에 점이 웬 말이냐. 정환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이야기는 대충 그러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정환에 꿈에는 무한한 밤하늘과 수많은 별들이 있었다. 늘 자신은 그 별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애타게 찾다 결국 별이 모두 사라져 자신만이 남는 것이었다. 자신이 그런 꿈을 꾼다고 인지했을 때부터 정환에게는 미미한 우주 공포증과 만성두통이 생겨버렸다.개정팔이라고 불린 그였지만 가족에게는 늘 든든한 아들이었던 정환은 심장이 아픈 자신의 형이 있는 집안에서 만성 두통이 있다는 것은 부모님의 걱정을 늘려드리는 것 같아 그의 십팔 년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알려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부쩍 심해진 두통에 결국 정환은 라 여사에게 털어놓은 것이었다. 우리의 강인한 라 여사는 아들에게 두통약을 쥐여주었지만, 속에서는 자신의 칠수생 첫째의 불합격 통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둘째만은 절대 안 된다 다짐하였다. 그날부터, 여러 병원을 수소문해보았지만 정환처럼 아주 어렸을 때부터 꿈으로 우주 공포증이 생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에 약이나 치료 방법을 찾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때 라 여사에게 덕서ㄴ..아니 수연이 엄마가 찾아와 점집을 추천해준 것이다. 수연이는 개명에 부적을 하고 전교 이십 등이나 올랐다는 것이다. 라 여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결국 부적이라도 써보기로 한 것이다

 .-딸랑

 경쾌한 종소리가 두 모자를 반겼다. 자신이 생각했던 점집보다는 멀쩡한 내부에 정환은 이리저리 둘러보기 여념이 없었다. 들어오세요. 집의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환은 화들짝 놀라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그 의심은 라 여사가 손을 끌고 붉고 치렁치렁한 비단들로 가려져있는 방을 들어가자 확신이 되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앉아있는 것은 남자였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이 라 여사는 이미 이야기를 줄줄 풀어놓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박수님이 좋은 부적하나 해주시면 하는데......"

 "아니요. 부적 말고."

 남자는 정환을 흘긋 보고 말했다. 크고 맑은 것이 정말 모든 걸 다 알 것만 같은 느낌에 시선을 떨구고 앉았다.

 "네? 아니 우리 아들이 이제 곧 고삼인데. 다 좋으니 꼭 좀 낫게 해주세요."

 라 여사는 최대한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속사포로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남자는 밑을 보고 슬쩍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화장을 한 것인지 얼굴은 뽀얗고 입술은 선홍빛을 띄며 오물거리는 것이 남자치고 퍽 예쁘다고 정환은 생각했다. 박수는 신의 제자라더니. 얼굴로 선택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전생. 전생 때문이네."정환의 눈을 뚜렷하게 말하는 남자에 정환은 머리가 아파졌다. 어두운 방에 붉은 조명들 때문인지 남자 뒤 불상 앞에서 타고 있는 향 때문인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이곳에 들어온 뒤로부터 두통약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게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럼 하는 걸로 알고 시작하지. 아주머니는 집에 가있으세요."

 아려오는 머리 대신 손을 꾹꾹 누르고 있는데 그의 말에 주섬주섬 일어나는 엄마를 본 정환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눈빛에 라 여사는 등짝을 가죽 지갑으로 어루만져 주며 잘하라는 눈빛을 보내고 정말 나가버렸다.  

 

 불편하다. 정환은 일어나 나름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적막한 상황이 딱 불편하다 생각했다. 남자는 조용히 등을 받칠 수 있는 의자를 꺼내오고 새 향을 피우고 있었다.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고 무어라도 말하려던 정환에게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놓으면 안 돼."

 "네?"

 정환은 남자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이라니? 예전에 실패했다는 거 아닌가?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정환은 머리가 어지러워 눈을 부릅뜨고 할 말을 고르고 있었지만, 몸은 이미 남자의 손길에 맞게 의자 위에 눕혀지고 있었다.

 

 "내가 눈을 뜨라고 외칠 거야. 하지만, 절대 눈을 떠서는 안 돼. 자, 이제 눈 감아."

 이번에도 남자가 더 빨랐다. 결국 정환은 눈을 감았다. 아찔하게 코끝을 간질이는 냄새가 언젠가 맡아본 꽃내음이었다. 얼마가 지났나 귓가에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뜰 뻔하였지만 남자의 말을 기억하고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내 몸까지 흔들어대는 통에 결국 슬쩍 눈을 뜬 정환은 눈앞의 상황에 다시 눈을 감았다. 아니, 어쩌면 눈을 뜬 적이 없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세자, 어서 눈을 뜨시지요. 이 늙은 어미가 다 보았습니다."

 "어마마마께서 어인 일로 이곳까지 오신 겝니까?"

 "황자의 상태가 이상하다 하여 온 것인데, 멀쩡해 보이십니다."

 "아직 젊습니다. 겨우 그 정도로 보시다니 소자 서글픕니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들에 의문을 품던 정환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조선의 유일한 세손, 정환이다. 그는 황자 김정환이었다. 얼굴에 잔 주름이 가득해진 황비는 만면에 천품을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그를 낳은 사람이지만, 도통 다가가기 힘들다고 생각하던 정환이었다. 지금처럼.

 "요즘 무희 하나와 자주 만난다 들었습니다.“

 "......“

 "그냥 무희도 아닌, 기방 출신."

 찻잔을 내려놓으며 통언(痛言)을 내뱉는 그녀의 모습에 정환은 주먹을 그러쥐었다. 아직 그녀의 입가는 미미하게 올려져 있었다. 이 비수를 꽂으려 그 먼 공중전(中宮殿)에서 찾아왔을 그녀의 정성에 손뼉을 쳐드리고 싶었지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얼굴에 입을 다물고 찻잔을 그저 만지고만 있는 정환이었다.

 "매화차 향이 아주 좋습니다. 하나 약간 떫은 게 황자가 드시기엔 아닌 것 같군요. 그럼 이 어미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떫다. 정환은 몸을 일으키는 황비의 말을 곱씹다 슬쩍 소안을 지었다. 그리고 선 방을 나서는 그녀에게 말했다.

 "소자 젊지만, 아이는 아닙니다. 차가 떫어도 마실 수 있는 나이입니다."

 ".. 몸 잘 추스르세요."

 숨을 쉬지 않은 것도 아닌데 목구멍이 답답해진 정환은 별을 보러 궁 밖으로 나섰다.

 "날이 찹니다. 왜 오신 겝니까." 

 아무리 밤이 어두워도 환한 사내의 얼굴이 정환을 향해 달음박질쳐 왔다. 분명 오늘 누군가이던 찾아왔을 터인게 분명한 발간 눈깨나 점점 느린 걸음으로 다가옴에 정환이 작게 속삭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택아, 너는 왜 이리 빛나는지 모르겠다."

 덥석 잡은 손에 푹 수그려져있던 머리통이 불쑥 올라오는 것에 그제야 마음을 놓은 정환은 가볍게 남자에게 입을 맞추었다.

 "손이 얼음장이십니다."

 "택아 이름 불러줘."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지만, 서로 어떤 말을 하는지 알기에 둘은 그저 그대로 대화가 흘러가게 두었다. 하늘에는 달만이 검은 하늘을 밝히려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의미 없이 흘러가는 말을 하던 정환은 하늘을 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너는 나의 소성(小星)이라기엔 너무나도 크고 환해. 숨겨놓아도 네 빛을 막을 수 없는 것이 슬프다."

 "......"

 "우리, 별로 가득 찬 하늘이 있는 곳에 가자. 별 사이에 서있으면 네가 그리 눈에 띄지 않을 것 같다. 별이 가득한 곳에 가지 않으련."

 정환은 눈을 감았다.

 정환은 눈을 떴다.

 "잘 보고 온 거 같은데. 괜찮아요. 그저 전생이잖아요."

 "이름 불러줘, 택아."

 남자의 어깨가 흠칫 떨려왔다. 정환은 일어나 남자, 아니 택을 돌려 새웠다. 눈물이 맺힌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택에 정환은 어깨를 잡아끌어 안아왔다.

 "나는 다 기억했는데.... 항상.. 늘.."

 "미안해. 내가 많이 늦었다."

 "환아. 늘 열애(熱愛) 했어. 언제나, 앞으로도."

 

 

 

 

 

 

 

 

 

*교망성공(翹望星空):별이 있는 하늘을 몹시 기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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