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카메라 준비됐어요?”

 “네, 들어가셔도 돼요.”

 “택 씨, 혹시 놓치는 말이 있을까봐 찍는 거니까 긴장하지 말아요. 편하게 이야기하면 돼요. 어떻게 살아왔고, 뭘 느꼈고.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 알겠죠?”

 

 

 

*

 저는 원래 앞을 볼 수가 없었어요. 제대로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렸을 때 큰 불이 났다는 건 알아요. 그때 신고 접수가 너무 늦어서 집이 거의 다 타고 나서야 진압이 시작됐다고 그랬어요. 깜깜한 밤이었고, 저는 인터넷을 한다고 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구요. 불은 엄마랑 아빠가 자고 있는 안방에서부터 났어요. 연기가 올라오는데, 목이 엄청 아프고 눈이 따가웠던 것 같아요. 그 뒤의 기억이 없어요. 부모님은 두 분 다 그날 돌아가셨고, 소방관 아저씨가 저만 간신히 구했다고 하더라구요. 어린 마음에 그때 나도 죽었으면 좋았을걸 생각했던 적이 많아요. 부모님의 부재를 느끼기에 제가 너무 어렸거든요. 고작 열 살이었는걸요.

 이모 집으로 맡겨졌어요. 유산 문제로 친척들이 많이 싸웠는데, 아무도 저를 맡겠다고 나서지 않더라구요. 이해하려고 했어요. 앞도 못 보는 꼬마에게 얼마나 많이 손이 가는지도 생각해 봤어요. 그래도 조금 슬프더라구요. 이모라도 저를 받아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일 년 정도는 점자를 배웠어요. 이거라도 알아야 이모한테 폐를 끼치지 않겠구나 싶었거든요. 그리고 점자를 알아야 특수학교라도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셔서요. 열심히 배웠는데. 기자님은 점자 읽을 줄 아세요? 아, 다른 말 했다. 죄송해요.

 특수학교는 꽤 괜찮았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도 졸업했고, 중학교도 졸업했거든요. 이모가 신경 많이 써 주셨어요. 처음에는 절 싫어하시는 줄 알았는데……. 제가 너무 나쁘게 생각했었나봐요. 안내견을 들일 만큼 여유롭지는 않아서 이모가 항상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오셨어요. 그런데 하루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저를 찾지 않는 거예요. 택아, 집에 가자.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선생님이 밤이 될 때까지 교실에 남아 같이 이모를 기다려 주셨어요. 그래도 오지 않으시더라구요. 학교에 계속 있을 수가 없어서 근처 경찰서에서 하루를 보냈어요. 다음 날 밤이 되어서야 들었는데, 사고가 났대요. 그래서 못 오신 거래요.

 “울었어요?”

 그때요? 그럼요. 엄청 많이 울었어요. 장례식장에 갔는데 사람이 너무 없는 거예요. 이모는 내가 열 살에서 열일곱이 될 때까지 나만 보고 사셨구나 싶고, 그래서 너무 죄송하고……. 발인 때까지 계속 울었던 것 같아요. 울다 지쳐서 자고, 일어나면 다시 울고. 계속 그랬어요. 이모가 떠나고 나니까 아무도 없었어요. 앞도 못 보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돌봐줄 사람이. 그래서... 그래서 여기서 살았어요.

 “여기요? 여긴 병원이잖아요.”

 네, 병원이요. 열일곱 겨울에 들어왔고, 지금 열아홉 봄이니까 1년도 넘게 있었네요. 친척들 집에 갈 수도 있었는데, 또 눈치 보고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 게 너무 싫어서 그냥 여기에 있겠다고 했어요. 학교에 가는 것도 다른 사람들한테 너무 미안할 일 같고. 여기 좋은 점도 진짜 많아요. 5층은 전부 장기 입원 환자들인데, 처음 제가 들어와서 적응 못하고 있었을 때 많이 도와주셨어요. 저희 방은 4인실이거든요. 그 좁은 방 안에 음악 하는 누나도 있고, 바둑을 잘 두시는 할아버지도 계시고, 모르는 거 없이 똑똑한 형도 있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나, 많은 사람 앞에 서는 일은 항상 두렵거든요. 저처럼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더더욱요. 그치만 장기 입원자 병동은 그게 아니니까요. 심적으로 부담이 덜했다고 해야 하나.

 “많이 챙겨주셨나봐요. 병원 사람들이.”

 진짜 많이요. 저 이 병실에서 노래하는 것도 배우고 바둑 두는 것도 배웠어요. 물론 보이지가 않으니까 바둑을 직접 둔 적은 없지만요. 공부도 배웠고! 기증자가 나타났다고 했을 때 축하도 많이 해 주셨어요. 우리 택이 밖에 나갈 수 있겠구나, 나가서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겠구나 하고. 저도 열 살 때까지는 눈앞에 있는 걸 다 볼 수 있었는데, 아예 모르는 것처럼 말씀하셔서 엄청 웃겼다구요.

 “특별히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있었나요?”

 “……음, 있었죠.”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웬만하면 병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편이에요. 말씀드린 것처럼 이 병실 안에서도 충분히 즐거웠거든요. 정말 가끔, 주치의 선생님을 보러 갈 때나 화장실에 갈 때? 전날 검진을 받았을 거예요. 완전히 실명 판정을 받았긴 해도 다른 신경에 손상이 가지 않게 치료는 꾸준히 받고 있었거든요. 검진 결과를 들으러 병실 밖으로 나갔어요. 저도 다 컸으니 간호사 선생님 손잡고 가긴 그래서……. 혼자 가고 있었는데요. 부딪혔어요. 그 사람이랑.

 보이지 않으니까, 저는 눈이 아니라 귀와 손으로 세상을 봐요. 닿으면, 들으면 알아요. 그 사람은 체격이 좋았어요. 저도 어디 가서 작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는데 말이에요. 저 키 크지 않아요? 이거 보세요. 일어서면 창문 가장 위랑 별로 차이 안 나잖아요. 아, 기자님 왜 웃고 그러세요……. 아닌가? 어쨌든, 키가 크고 몸도 단단했어요. 변태처럼 들리겠다.

 “죄송합니다.”

 “아, 저, 저…….”

 “잡아드려요?”

 그 말 듣고 많이 놀랐던 것 같아요. 보통은 눈이 안 보이시냐고 먼저 묻거든요. 눈이 보이는지, 내가 도움을 주어야 하는 상황인지 확인하는 거라고는 하는데……. 그게 또 상처가 되더라구요. 장애가 있느냐고 묻지 않았어요. 그저 주위에 잡을 게 없어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저한테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을 뿐이었어요. 저한테 손을 내밀었었나봐요. 제가 모르고 두리번거리기만 하니까 제 손을 잡아서 자기 팔에 올리더라구요. 간호사 선생님이나 의사 선생님 같았어요.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도 많이 신기했구요. 그런데 있잖아요, 그 사람도 환자복을 입고 있었어요. 사그락거렸어요. 옷이 말이에요. 병원에서 입는 환자복처럼요, 사그락거렸어요

 “어느 병실이세요?”

 “506호요.”

 “아, 그 새로 온 학생이구나.”

 “……저 아세요?”

 “알아요. 선우가 말해줬거든요.”

. 저한테 먼저 물어봤어요. 어느 병실에서 지내냐고. 선우 형을 그냥 부르던 걸 보면 저보다 나이가 많은 게 분명한데, 제가 학생인 걸 알면서도 존댓말을 하더라구요. 나중에 제가 왜 계속 존댓말을 썼냐고 물어봤거든요. 뭐라고 말했는지 아세요? 서로 말을 놓자고 이야기를 한 게 아니라면 자기는 말을 안 놓는다는 거예요. 멋있지 않아요? 아, 아닌가……. 선우 형이 저를 뭐라고 소개했는지 궁금했는데, 물어보진 않았어요. 팔을 꼭 붙잡고 주치의 선생님이 계신 방까지 걸어가기만 했던 것 같아요.

 눈이 보이지 않고서부터 눈을 감고 다녔어요. 보이지도 않는데 눈을 뜨고 있으면요,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봐요. 그 표정을 실제로 볼 수가 없는데도 어떤 얼굴로 나를 보는지가 그려지거든요. 제 눈 앞에 손가락을 흔들면서 이래도 안 보이냐고 물어보기도 하구요. 그날도 눈을 감고 있었어요. 그래서 눈이 마주칠 리가 없는데도, 눈이 마주칠 수가 없는데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걸었어요. 왈칵 울어버릴 것 같았어요. 아직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 감정이 어디서 나온 건지 말이에요. 방 앞에 도착했을 때 제가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여기까지 같이 와 줘서 고맙다고 먼저 말했어야 하는데 뭐가 그리 부끄러웠는지 그 말은 쏙 빼고 미안하다고만 한 거 있죠.

 “미안해요.”

 “새로운 친구 만나서 좋았어요.”

 “……네?”

 “자주 갈게요.”

 “……네.”

 “또 봐요.”

 또 보자는 말이 그렇게 떨리는 말인 줄 처음 알았어요. 그 사람……. 아니, 형이라고 할게요. 제가 이름은 말했던가요? 김정환이에요. 이름도 꼭 적어주세요. 그날 이후로 자주 만났어요. 병실이 바로 앞이라서 찾아가기 쉬웠거든요. 제가 갈 때도 있었고, 형이 오실 때도 있었고.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잖아요. 저랑 형이 만나면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하는 게 없는데도 즐거웠어요. 계속 계속 말을 하게 되어서, 밤이 되면 목이 아픈 날도 있었구요. 좋은 사람이에요. 누구한테 물어봐도 칭찬을 받을 만큼요.

 

 

 

*

 눈이 오는 날이었어요. 저희 병실은 보통 블라인드를 쳐두는 편인데, 그날은 하도 눈이 예쁘게 온다고 하길래 블라인드를 걷어두었거든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할아버지도 그렇고, 누나도 그렇고, 선우 형도 그렇고 다들 이야 하고 감탄하더라고요. 보고 싶긴 했는데, 그래도 눈이 어떻게 생긴 건지는 아니까 산책하던 병원 앞마당에 눈이 쌓인 모습을 상상했어요. 진짜 예쁠 것 같더라구요. 누나가 보이지도 않는데 예쁜 건 어떻게 아냐고 타박하긴 했는데……. 안 보여도 알아요. 마음으로 느껴진다니까요? 기자님, 기자님은 다 보인다고 웃으시는 거예요? 진짜 나쁘다. 아무튼, 그렇게 예쁜 날이었어요. 엄청 엄청 예쁜 날.

 “어, 정환이 형! 택이 보러 오셨어요?”

 “잠시만 조용히 해 봐.”

 “네?”

 “…….”

 놀랐어요. 형이 원래 다른 사람 말을 끊는 편이 아니거든요. 선우 형이 하는 말이라면 더더욱요. 그런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하라고 하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무서웠어요. 많이는 아니구요, 조금요. 선우 형도 놀랐나봐요. 되물어보는 말 뒤로 병실이 조용해졌거든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서 정적만 흐르고 있는데, 찰칵 하고 셔터 소리가 들렸어요.

 “와, 사진 진짜 잘 나왔다.”

 “눈 와서 더 예쁘지.”

 “뭘, 택이 있어서 예쁜 거 아니에요?”

 눈을 감고 있었을 텐데 뭐가 예쁘게 나왔다는 건지……. 형들끼리 사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길래 저는 그냥 조용히 침대 시트만 만지작거리고 있었어요. 제 침대가 창가 쪽이거든요. 나를 찍었는데 창이 같이 나왔구나, 눈 내리는 바깥 모습이 나와서 예뻤구나.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침대 발치에 무게가 실리더라구요. 정환이 형이 앉았구나 했어요. 이건 비밀인데, 정환이 형이랑 선우 형이랑 침대에 앉으면 느껴지는 무게감이 다르거든요. 정환이 형이 훨씬 무거운 것 같아요. 시트가 푹 가라앉아서……. 아, 이 이야기는 빼 주세요. 형이 싫어하겠다.

 선우 형이 나가본다면서 병실 문을 닫았어요. 정환이 형이 오면 항상 병실에는 우리 둘만 남아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다른 분들이 다 자리를 피해주시더라구요. 가끔은 고맙고, 가끔은 떨리고……. 조그만 직사각형 모양의 미끌미끌한 게 손으로 들어왔어요. 즉석 사진이라고 했는데, 처음 보는 거였어요. 그래서 손으로 아무리 만져도 이게 어떻게 생긴 건지 감이 안 오더라구요. 한참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어요. 형이 다시 가져가기 전까지, 계속.

 “저 잘 나왔어요?”

 “완전 예쁘게 나왔어.”

 “보고 싶다.”

 “택아.”

 “네?”

 형이 나지막이 제 이름을 불러주면 심장이 뛰어요. 심장 아래가 간질간질거려요. 목소리가 낮은 편이라 듣기도 좋고, 부드럽거든요. 같은 병실 쓰던 여자 환자가 목소리에 반해서 형 좋아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니니까 안 할래요. 아, 질투 아니에요. 기자님, 진짜! 아무튼, 정환이 형 손이 진짜 크거든요. 제 얼굴 반을 가리는데, 형이 그 큰 손을 눈두덩이 위에 쓱 올리는 거예요. 눈이 다 가려져서, 감은 눈으로 그나마 보이던 빛들도 다 사라져버렸어요. 깜깜한 밤 같았어요. 장난인가 싶어서 형 손을 내리려고 제 손으로 잡았는데, 형이 그랬어요.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고.

 대학교에서 사진을 배울 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래요. 사진이라는 게 사실 우리 눈에 보이는 장면을 그대로 담아내잖아요. 저는 그게 현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형 말 듣기 전까지. 그게 아니래요. 사진은 자기가 담고 싶은 걸, 자기가 상상하는 걸 담는 거래요. 가장 처음 받은 과제가 뭐랬더라. 태양에 관한 사진을 찍는다면 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지 그려와서 발표하는 거였는데, 학생들이 다 어떤 구도로 피사체를 어떻게 해서 이렇게 찍겠다는 식으로 발표를 했대요. 교수님이 엄청 화를 내셨다고 했어요. 사진은 그렇게 찍는 게 아니라고, 그런 것들은 부수적인 거라고. 사진에는 마음이 담기는 거라고.

 “안 보이는데 어떻게 볼 수 있어요.”

 “마음으로 보면 되지.”

 “……말이 그렇지.”

 “사진 많이 찍어줄 테니까 나중에 봐.”

 “나중에 봐도 안 보이잖아요. 치.”

 “보일걸?”

 “어떻게 보여요, 그게.”

 “마음으로.”

 “아, 혀엉!”

 진짜 얄밉죠. 그런데요, 기자님. 신기한 게 뭔지 아세요? 사진이 보였어요. 그날 이후부터 사진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형은 제 병실에 올 때마다 사진을 한 장씩 가지고 왔어요. 하루는 산책하다 만난 고양이 사진을, 하루는 눈이 쌓여있다던 가로수 사진을, 하루는 병원 복도에 있는 자판기 사진을, 또 하루는 형이 있는 병실에서 퇴원한 분과 찍었다는 사진을. 매일매일 다른 사진을 들고 와서 말해줬어요. 이 사진에 뭐가 있고 어떤 모습으로 보이게끔 찍었다고 설명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알 수 있어요. 그치만요, 저는 그렇게 본 게 아니에요. 형은 절대로 사진을 그렇게 설명하지 않았거든요.

 “택아. 너 형이랑 처음 만났을 때 복도에서 부딪혔던 거 기억하지.”

 “당연히 기억하죠. 그걸 어떻게 잊어버려요.”

 “그 복도 반대편에 자판기 있는 것도 알아?”

 “그럼요. 선우 형이 거기서 콜라 사 주고 그랬어요.”

 “그 자판기 무슨 색이게?”

 “……빨간색?”

 그러면 저는 형이 오늘 빨간색 자판기 사진을 찍었구나 생각해요. 또 머릿속에서 그 작은 필름 안에 담겨있는 빨간색 자판기를 상상해요. 제가 오늘은 자판기 사진을 찍었네요 하고 말하면 형이 머리를 쓰다듬어줬어요. 저 머리 만져주는 거 좋아하거든요. 형이 그거 알아서 자꾸……, 악용해요. 어쨌든! 진짜로 보이지 않던 것도 다 보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져요. 사진 수업을 가르친 교수님을 제가 직접 만나뵌 건 아니지만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면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도 볼 수 있어요.

 사진에는 빨간색 자판기가 있어요. 그러면 사진을 보는 사람은 그 자판기만 보잖아요. 마음으로 사진을 보는 저는 자판기에 담긴 이야기를 봐요. 엄마를 졸라서 콜라 한 캔을 뽑아들고 신나게 걸어가는 꼬마 아이도 볼 수 있고, 검진 결과를 기다리느라 타는 목을 달래기 위해 물을 뽑는 사람도 볼 수 있고, 일이 많아 피곤한 의사 선생님들이 저녁 식사 후 캔커피 하나씩 들고 지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어요. 자판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가 있고, 저는 그걸 봐요. 신기하죠. 병실에서 찍힌 자기 사진을 볼 수 없다고 삐치던 애가 이런 말을 하게 되고.

 형도 신기하다는 말 많이 했었어요. 물론 좋은 의미로.

 “신기하네.”

 “뭐가요?”

 “너 진짜 빨리 큰다고.”

 “혀엉, 저 키 하나도 안 크는데…….”

 “키 말고.”

 “네?”

 키 말고, 택아. 그날 밤 형이 한 크다는 말을 곱씹고 곱씹어본 후에야 결론을 내렸어요. 형이 말한 건 키가 크는 게 아니라 마음이 크는 거구나. 내가 이제, 눈을 떴구나. 저 이불로 얼굴 다 덮고 엉엉 울었어요. 아, 울보 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컸다는 게 기뻐서 운 거라니까요. 기자님 너무해. 그날 처음 알았어요, 형은 사진작가가 꿈이었다는 걸요.

 “있잖아, 택아.”

 “왜요?”

 “눈을 감고 있는 이유가 뭐야?”

 “그건 왜 물어보는 거예요?”

 “다 눈을 감고 있길래.”

 “에?”

 “내 사진에 있는 네가, 다 눈을 감고 있길래.”

 “아아…….”

 쉬이 답할 수가 없었어요. 저한테는 너무 무거운 주제거든요. 사고 때문에……. 맞아요, 사고 때문에. 불이 그렇게 밝고 강렬한 줄은 몰랐어요. 열 살 때, 그날에 처음 알았어요. 볼 수 없다고 빛도 안 들어오는 건 아니거든요. 눈을 감으면 검은 배경에 빛이 있는 부분만 하얗게 보여요. 눈을 뜨면 빛의 양이 훨씬 많아지구요. 눈을 뜨면요, 꼭……, 그날 같아요. 엄청난 양의 빛이 나를 향해 쏟아지는 느낌. 무서워요. 검진을 받느라 억지로라도 눈을 떠야하는 상황이 오면 손이 발발 떨려요. 너무 무서워서요. 그리고 엄마 생각이 나요. 엄마. 엄마…….

 검진 때문에 눈을 오래 뜨고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사실 그날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제가 검진 받다가 까무룩 기절했다고 했어요. 간호사 누나가 말해줬어요. 아픈 게 아니라 잠이 든 것 같아서 병실에 눕혔는데 잠꼬대를 하더래요. 계속 엄마, 엄마 하고 부르더래요. 기절한 사람이 뭘 기억하겠어요. 저는 떠오르는 게 없는데, 딱 하나만 생각이 나요. 비명소리랑 사이렌 소리가 마구잡이로 뒤엉켜서 귓가에 울리는데, 그 사이를 비집고 엄마 목소리가 들렸어요. 엄마가……, 엄마가 그랬어요. 지켜줄게. 엄마가 꼭 지켜줄게. 불이 덮친 건지, 엄마가 안아주는 건지, 간호사 누나가 덮어 준 이불인지 몰라도 몸이 따뜻해졌어요. 보고 싶어서 눈물 날까봐 엄마 생각 잘 안 하려고 하는데……. 기자님, 거기 휴지 조금만 주세요. 또 눈물 나려고 하네. 엄마요? 보고 싶죠. 매일매일 보고 싶어요.

 “무서워서요.”

 “어?”

 “사고 나던 날이 생각나서……, 무서워서요.”

 그때 너무 멍청하게 대답했던 것 같아요. 형 앞에서 진짜 더 이상 못 울 만큼 엉엉 울었거든요. 너무 정신이 없어가지구. 저는 눈을 감고 있는 게 익숙해서 몰랐거든요. 생각해 보니까 진짜 이상할 것 같은 거예요. 침대 위에서 찍든, 병원 앞 공원 벤치에서 찍든, 병동 복도에서 찍든, 카운터에 있는 간호사 누나랑 찍든 간에 저는 눈을 감고 있으니까. 눈 감고 웃으면서 브이를 하면, 진짜 이상할 것 같죠. 기자님, 웃지 마요. 그거 긍정의 의미인 거죠? 나쁘다.

 기절하고 나서 의사 선생님이 병실에 오셔서 그랬어요. 눈을 뜨고 있는 게 부담스럽다면 최대한 그 시간을 줄여서 검사를 하겠다고.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도 제가 병실에 처음 들어온 날에 물어봤었고, 특수학교 선생님들도 상담하면서 물어보셨고……. 생각해보면 형은 늦게 물어본 거더라구요. 그날 물어본 것도 툭 던지는 말이 아니라 고민하는 게 느껴지는 말이었어요. 많이 이야기했던 거라 형 앞에서도 담담히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형도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말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라구요. 보통은 그렇구나 하고 말아요. 외상 후……, 그거 뭐라고 하더라. 사고와 관련된 말이나 행동이 환자한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빛이라는 거 말이야.”

 “…….”

 “무서운 게 아니라 고마운 거라고 생각해 주면 안 될까.”

 그렇게 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면 안 될까라는 말. 형이 돌아가고 나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참, 형 만나기 전까지 무슨 생각으로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빛이 왜 고마운 걸까 하는 생각. 이건 조금 쉬운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요. 기자님 방금 마음으로 보면 된다고 생각하셨죠, 그쵸. 다 알아요. 저도 똑같이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있잖아요, 눈으로 보든 마음으로 보든 말이에요, 우리가 보려고 하는 게 존재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존재라는 건,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건, 보는 행위잖아요.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것처럼요. 그럼 결국 빛이 없으면 존재를 확인할 수도 없어서 아닐까요. 형의 생각이 이게 아닐지 몰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주절주절 논리적인 척하니까 꼭 탐정 같다.

 또 생각한 게 있어요. 보고 싶다. 형이 보고 싶다. 진즉에 들었어야 하는 생각인데 그제서야 궁금해진 거 있죠. 형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표정으로 나랑 대화하고 나를 찍어주는지 하는 큰 질문부터 웃을 때 눈이 휘어지는지, 손톱은 어떻게 생겼는지 하는 작은 질문들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궁금해진 거 있죠.

 “형.”

 “어?”

 “만져봐도 돼요?”

 다음 날 형이 제 병실에 왔을 때 다짜고짜 그렇게 물어봤었어요. 손으로 만져본다고 해서 눈으로 보는 것만큼 확연히 생김새를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거든요.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을까요, 그 말? 선우 형한테 만져봐도 되냐고 물었을 때 형은……, 변태냐고 욕을 한 바가지로 했었거든요. 형이 아무 말 없이 제 손을 잡아 얼굴에 올리길래 깜짝 놀랐었어요. 가끔씩 이렇게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행동한다니까요. 아무튼, 허락하는 거라고 생각하구 천천히 만져봤거든요. 골격이 되게 남자다웠어요. 볼에도 살이 거의 없었고, 뼈가 도드라지는 게 멋있을 것 같았어요. 눈은 감은 채로 만져서 잘 모르겠지만 쌍꺼풀은 없는 것 같았구……. 콧대가 높은 건 아닌데 잘생긴 코라고 생각했어요. 눈썹 숱이 많아서 전체적으로 인상이 세 보이겠다 싶었구요. 아, 입술! 입술이 두꺼운 편이었어요. 손가락이 입술에 닿으니까 놀라던데, 그거 보면 형도 남자는 남자예요.

 “어떻게 생겼는지 알겠어?”

 “조금은요.”

 “어떻게 생긴 것 같은데?”

 “잘생겼어요.”

 “어쭈.”

 “아니, 진짜로!”

 제가 놀린다고 생각했나봐요. 진짜로 잘생긴 얼굴이었는데. 기자님, 제가 말한 것만 듣고 상상해 보세요. 어때요? 괜찮지 않아요? 이렇게 저렇게 느껴졌다 하나하나 설명해 주니까 막 웃더라구요. 자기 얼굴을 그렇게 설명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래요. 앞 못 보는 사람 처음 만났으니 당연히 그렇겠지……. 그래서 저도 시켰어요. 형 손을 제 뺨 위에 올려다놓고 만져보라고 시켰어요. 눈을 감고 만져봤나봐요. 손이 느리게 더듬더듬 움직이더라구요. 보면서 만지면 절대 그렇게 만질 수가 없어요. 눈은 손보다 빠르거든요.

 “너 생각보다 말랐다. 볼에 살이 하나도 없네. 뼈가 도드라진 게 볼 때보다 날렵하게 생긴 것처럼 느껴지고. 코는 무슨 연예인 코네. 왜 이렇게 높아. 그리고 너 입술 그만 물어뜯어라, 다 텄네. 야, 대답하지 마. 입 벌리지 말라니까?”

 “아, 혀엉! 입에 손가락 넣지 마요!”

 “니가 먼저 입 벌렸잖아. 그래, 안 그래?”

 “그래도 그렇지!”

 진지한 마무리는 아니었어도 좋았어요. 그 뒤로 형이 보고 싶어지는 날이 되면 눈만 감아도 떠올릴 수 있게 되었거든요. 보지 않으면 잊혀진다고 하는데, 그거 다 거짓말이에요. 저는 더 선명해졌거든요. 아, 형 보고 싶다. 저 5분만 눈 감고 있어도 될까요? 기자님도 쉬셔야죠. 잠깐이면 돼요.

 

 

 

*

 “택 씨, 커피 드실래요?”

 “아, 저 카페인에 약해서…….”

 “그러면 차라도 드릴까요? 계속 말하는데 힘드실까봐요.”

 진짜 괜찮아요. 저희 어디까지 했었죠? 며칠간 형이 안 보였어요. 선우 형한테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 하더라구요. 심심했어요. 항상 같이 있던 사람이 없으니까 누구랑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매일 손에 쥐어주던 사진이랑 상상하던 이야기들이 없으니 공허하고. 형 있는 병실에 찾아갈까도 생각했는데……. 그런 거 뭐라고 하죠, 현자타임? 회의감이 막 드는 거예요. 병원에서 만난 인연이 뭐라고 이렇게 보고 싶을까. 형한테 나는 지나가다 만난 환자 중 한 명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성격이 좋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라면 나 말고도 나만큼 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넘칠 텐데. 그런 회의감. 저보다 오래 본 선우 형한테도 아무 말 안 했다는데, 제가 뭐라고. 그쵸, 제가 뭐라고. 그 며칠은 침대에 누워서 밥만 챙겨먹었던 것 같아요. 의욕이 들지 않아서 일어날 수가 없더라구요. 형이랑 알고 지낸 지 얼마나 오래 됐다고 이렇게 마음을 준 거야 하고 자책도 했어요. 최택, 진짜 한심하다…….

 “기다렸어?”

 “왜 안 왔어요?”

 “……수술이 있어서.”

 누군가 허겁지겁 병실 문을 열길래 누가 온 거지 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거든요. 제 침대 옆에서 보조의자 끌어당기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직감으로 알았죠, 형이구나. 벌떡 일어나서 물어봤어요. 생각해보면 너무 쉬워보인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기다린 게 딱 티가 나잖아요. 진짜 한심하게. 형이 말하는 걸 꺼려하는 것 같았어요. 제 질문과 형의 대답 사이에 정적이 조금 길었거든요. 그러니까 물음표들이 막 떠올랐어요. 형한테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 형이 자리를 비운 시간동안 머릿속을 헤집었던 질문들.

 “형, 형은 왜 입원한 거예요?”

 “별거 아니야. 말해도 모를걸?”

 “별거 아닌데 왜 장기 입원인데요.”

 “말해도 모른다니까 그러시네.”

 치사하게. 병명으로 말하면 당연히 모르죠. 기자님은 이상한 의학명들 다 알고 계세요? 따지고 싶었는데 형이 좋게 대답하긴 했어도 썩 대화하고 싶어하는 주제는 아니구나 해서 입 다물고 있었죠. 저도 모르게 뾰루퉁하게 입술 내밀고 있었나봐요. 형이 손가락으로 툭툭 치면서 입 집어넣어라 하더라구요. 삐치면 말보다 입이 먼저 나가는 것 같아요. 습관인데 어떻게 바꿔요. 아마 평생 못 바꿀 걸요.

 “좋은 소식 있다며.”

 “아, 맞다.”

 “아, 맞다?”

 “저 기증자 있대요. 안구 기증자.”

 형 돌아오기 전날이었나. 회진 때 의사 선생님이 말해 주셨어요. 최택 씨, 좋으시겠어요. 안구를 기증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요. 안구 기증이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고 하더라구요. 기증 의사를 밝혀도 기증자가 죽고 나서 기증이 이루어진대요. 그래서 기증자는 많은데 실질적으로 기증되는 안구가 많은 건 아닌가봐요. 실명이 된 건 열 살이지만 이 병원에 온 건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내 차례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왔지 싶긴 했어요. 그래도 좋은 소식이니까 그런 의심은 하지 말아야지 싶더라구요. 형 오면 꼭 말해주고 싶었어요. 진짜 좋은 소식이잖아요. 형이 지금까지 찍어준 사진들도 볼 수 있고, 잘생긴 형 얼굴도 볼 수 있고, 눈이든 장마든 날씨가 바뀌는 것도 볼 수 있고. 볼 것들은 무궁하니까.

 제가 그렇게 말하니까 형이 축하한다고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어요. 그날따라 형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속상했어요. 축하 받고 싶었는데. 왠지 애써 웃는 것 같은 거예요. 내가 신이 나서 말하니까 축하해 주는 느낌, 하나도 진심이 담기지 않은 것 같은 느낌. 내가 가면 형이 심심할까봐 그런가보다 생각했어요. 형도 나처럼 내가 없으면 슬프겠지 하는 생각에 잠깐 기분이 좋아졌던 것도 같고. 아무튼, 그래서 저도 허공을 더듬더듬 하다가 형 어깨를 찾아서 툭툭 두드려줬어요. 퇴원해도 자주 와서 형이랑 놀 거니까 서운해 하지 말라고 말이에요. 형이 픽 웃더라구요. 다 아는 척 말하는 제가 웃겼나 보죠, 뭐.

 “선물.”

 “뭔데요?”

 “열어서 봐봐.”

 다음 날 형이 와서 선물을 줬어요. 철로 만들어진 작은 케이스였는데, 열어보니까 폴라로이드가 우르르 쏟아지더라구요. 얼마 안 있으면 퇴원한다고 해서 주는 선물이라고 그랬어요. 지금까지 형이 저한테 보여 준 사진들도 있고, 저 만나기 전에 찍었던 사진들도 있다고 했어요. 형이랑 저는 사귀었던 것도 아닌데 괜히 지난 추억을 곱씹는 느낌도 들고, 묘한 거 있죠. 안 볼 것도 아닌데 선물 주는 것도 그렇고……. 사진을 만져보는데 괜히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은 거예요. 울보도 아니고, 진짜. 그래서 주먹으로 눈을 세게 비볐어요. 괜찮은 척 굴었어요.

 “형, 우리 사진 찍어요.”

 “사진?”

 “남는 건 사진인데, 내 사진만 남으면 형은 억울하잖아요. 우리 같이 찍은 사진 정도는 있어야지.”

 병원에서의 추억은 형이 전부인데. 이 케이스는, 내 추억 상자인데, 거기에 형이 없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형이 조금 망설이긴 했는데 그래도 알겠다고 같이 찍자고 해 주더라구요. 역시 형은 저를 못 이긴다니까요.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은 형이 제 어깨에 팔을 올렸어요. 손이 어깨를 다부지게 쥐는데, 마지막 같은 거예요. 왠지 형이 이제는 안 올 것 같은 거예요. 셔터 소리가 나고 팔랑팔랑 사진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어요. 둘 다 아무 말 안 하고 조용히 있었어요. 한참이 지나서야 형이 잘 나왔다고 말해줬어요. 예쁘게 나왔다고.

 “형, 저 기증 받고 나면요.”

 “…….”

 “눈 뜨고 사진 찍을게요.”

 “……그래.”

 “그때도 꼭 같이 찍어 줘요. 알겠죠?”

 마지막인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어요. 나중에. 나중에도 꼭. 그렇게 약속하면 나중에도 형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봐요. 바보같죠. 말한다고 해서, 약속한다고 해서 반드시 지켜지는 건 아닌데 말이에요. 형도 알았다고, 새끼 손가락 걸고 약속하자고 했는데. 형은 알면서도 약속했어요. 나쁜 사람이죠, 기자님. 나쁜 사람이에요. 저는 몰랐어요. 진짜로 몰랐어요…….

 며칠은 꼬박꼬박 저 보러 오고, 사진도 찍어서 오길래 괜찮은가보다 했는데, 또 형이 안 오는 거예요. 몸이 안 좋은 건가 하고 506호로 가려고 일어났는데, 선우 형이 들어오더니 가지 말라고 말하더라구요. 정환이 형이 병실에 없어서 물어봤는데, 오늘은 치료 하러 나가서 병실로 안 돌아온다고 그랬대요. 그날은 하루종일 침대에만 누워 있었어요. 못 오면 못 온다고 이야기하던 사람인데, 저번에 수술했다는 날 이후로 말 없이 안 오는 날이 잦아졌어요.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인가보다 생각하고 뒹굴거리고 있었거든요.

 “택 씨, 수술 날짜 잡혔어요.”

 “벌써요?”

 “내일 아침에 바로 진행할 테니까 오늘은 검사 몇 개만 받고 일찍 주무세요. 4시에 다시 올 테니 그때 검사실로 가시면 돼요.”

 갑작스러웠죠. 원래 하루 전에 말해주는 건가. 기증자 이름도 모르는데. 당장 며칠 후면 눈이 보인다고 생각하니까 이런저런 생각도 들고. 혼란스럽기도 했구요. 선우 형한테 혹시 정환이 형 병실 들어오면 내일 수술이라는 말 꼭 전해달라고 말하고 잠들었던 것 같아요. 사람이 침대에만 누워있으니까 자도 자도 계속 졸리고 그러더라구요. 네 시에 간호사 선생님이 와서 일어났어요. 검사실 가서 피도 뽑고 이것저것 체크했어요. 내일 수술해도 이상이 없을지 보는 거라고 말하셨던 것 같은데. 그날 너무 정신이 없었어서 제대로 기억이 안 나요. 선우 형은 부탁한 거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정환이 형도 수술하는 거 늦게라도 알겠지 생각했었어요. 눈 뜰 때 앞에 부모님이 없더라도, 부모님 만큼 날 돌보아주셨던 이모가 없더라도, 정환이 형은 있겠지 하는 생각도. 선우 형 목소리가 떨리는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무슨 일인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제가 바보 같았어요. 정말로 바보 같았어요…….

 다음 날 새벽같이 수술실에 들어갔어요. 비몽사몽이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어차피 수면 마취니까 정신 차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요. 그 말 듣고 눈을 감았어요. 수술이 어떻게 진행된 건지는 몰라요. 그걸 어떻게 기억하겠어요. 한참 자고 일어나니까 눈에 붕대를 감은 채로 다시 제 병실에 돌아와 있었다는 것밖에 모르겠어요. 붕대를 푸르기 전까지도 정환이 형이 저를 보러 오지 않아서 섭섭하다고 투덜거렸어요. 매일매일 선우 형이랑 이야기했거든요. 눈이 보이면 놀이공원도 가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다고. 눈이 보이면 하고 싶은 일을 주절주절 이야기하다가도, 그래서 정환이 형은 언제 오는데 물어보기도 하고. 섭섭했어요. 선우 형이 자기도 정환이 형 본 지 한참 됐다고, 보고 싶다고 대답하더라구요. 내가 뭘 잘못해서 나만 멀리하는 건 아니구나 싶어서 안도감이 들더라구요. 미련하죠. 안일하고, 미련해요.

 붕대를 풀었어요. 간호사 누나가 제 눈앞에 있었구요. 저한테 축하한다고 말하면서 웃어주셨는데, 9년만에 보는 세상은 참 낯설더라구요. 제 앞에 서류를 내밀고 사인하면 절차는 다 밟은 거니까 퇴원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글자를 제대로 읽으려고 여러 번 눈을 깜빡였던 것 같아요. 감고 있다가 눈을 뜨니까, 눈이 눈을 깜빡이는 법도 잊어버린 것 같더라구요. 사실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니까 기증자 이름만 확인하자 싶었어요. 그, 그 이름이. 저는 처음에 잘못된 건 줄 알았거든요. 그냥 동명이인인 줄 알았어요. 흔한 이름이잖아요. 그쵸.

 “어, 기증자 이름이 김정환이네요. 정환이 형이랑 같네.”

 “504호 김정환 환자 맞아요.”

 “네?”

 “기증자가 수술 끝나기 전까지 본인에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해서…….”

 안구 기증은 사후에 가능한 건데, 그러면 내 수술 날짜 잡힌 날에 형은, 형은……. 형은 이미 간 거잖아요. 나는 형한테 이제 앞에 볼 수 있다고, 형 얼굴 볼 수 있다고 말하려고 들떠서 잠이 들었는데. 형은 그때 이미, 아니 그 전부터 이미 내 말은 들을 수도 없는 상태였던 거잖아요. 그날에서야 알았어요. 형이 입원한 이유요. 그거 못 고치는 병이래요. 그냥 아프면 아프고, 그러다 나빠지면 더 나빠지는 거고, 그러다 너무 나빠져버리면 죽는 거고. 그렇게 허무한 거였대요. 원래는 수술도 안 하려고 했었고, 수술 일정도 안 잡았었는데 정환이 형이 의사 선생님한테 그랬대요. 수술 해야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상태로 눈 감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랬대요. 제가 더 화가 나는 건 말이에요, 저 만난 첫날에 말했다는 거예요. 저랑 부딪혔던 그날 가서 자기가 죽으면 저 애한테 안구 기증할 수 있냐고 물었다는 거예요. 미련하죠. 형도 진짜 미련해요. 처음 본 사람이 뭐가 좋았다고 그랬을까요. 숫기도 없어서 마주보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 애가 뭐가 그리 좋다고 그랬을까요.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나는 왜 다른 병이 아니라 눈이 안 보이는 병이었을까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싫었어요. 내가 실명이 아니어서, 오래 입원해야 하는 병이 아니어서 형을 안 만났으면요, 형이 죽는 날이 다가왔을 때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까요. 얘한테 앞을 볼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정의감이 아니라, 형 자신을 위해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나는 뭔데 형 삶에 나타나서, 더 길 수 있었는데, 더 좋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나 좋은 사람인데 왜 일찍 가야 했을까요. 나한테 말고, 더 많은 사람들한테 좋은 사람일 수 있었잖아요. 형이 찍은 사진들, 나만 보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도 있었잖아요. 나랑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걸. 그런 사람 몰랐으면 참 좋았을걸. 형을 만나지 않았으면 나는 평생 눈 감고 살다 잠이 든 건지, 죽은 건지도 모르게 세상을 떠나버렸을 텐데. 나는 누구에게 좋은 사람도 아니니까 그렇게 죽어도 상관없었을 텐데. 왜,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정말로, 정말로 모르겠어요.

 “이거 받으세요.”

 “무슨…….”

 “남기고 가신 거예요.”

 유품을 받았어요. 간호사 선생님이 주셨는데, 의사 선생님이 제가 가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대요. 연고가 없다고 했어요. 정환이 형은. 그래서 유품을 거두어 갈 사람도 없대요. 저밖에 없다고, 저밖에……. 진짜 미련하죠, 형은. 세상에는 미련 없이 갔으면서, 사람은 그리도 미련해서. 별로 큰 종이 박스도 아니었는데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들어있는 게 없었어요. 박스 뚜껑을 열어봤거든요. 폴라로이드 사진기랑, 그냥 카메라랑, 현상한 사진들 한 뭉치가 있더라구요. 형이 즐겨 읽는다던 책 한두 권도 있었고. 그리고, 진짜 뻔한데, 편지가 있더라구요. 형은 끝까지, 참……. 아날로그 해요. 그쵸. 편지 내용이요? 달랑 두 줄 있던걸요. 형이 그거 쓰면서 울었나봐요. 종이가 울고 있었어요. 글자들도 울고 있었어요. 나도, 편지를 읽는 나도 울고 있었어요.

 형 목소리가 생각이 났어요. 낮고 부드러워서 좋아하던 그 목소리요. 택아, 하고 불러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큰 손도 생각이 났어요. 또 듣고 싶었는데. 못 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기억하려고 노력한 적도 없는데. 택아, 택아, 택아. 속으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대답했죠. 정환이 형, 저 여기 있어요. 형은 저 보고 있어요? 하고 물어보고 싶어서 계속 계속 대답했죠.

 형 얼굴도 생각이 났어요. 허겁지겁 케이스를 열어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봤거든요. 눈 감고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내 옆에, 한 눈에 봐도 아파보이는 얼굴로 웃고 있는 형이 있었어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생겼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정작 그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이 세상에 없는 거예요. 형이 찍어준 사진들 이제 다 볼 수 있다고, 형이 그토록 칭찬하고 사랑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공중에 부유하는 먼지까지도 볼 수 있다고. 그리고 형도, 그렇게 보고 싶어하고 수백 번도 더 마음으로 그렸던 형도 볼 수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보려고 했는데. 갔어요. 이제 못 봐요. 사진으로밖에 못 봐요. 두 번 다시…….

 하늘을 보면 형 생각이 나요.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하늘에서 다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하는 말들, 형이 듣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말해주고 싶어요. 형, 나도 이제 하늘을 봐요. 하늘을 보고 빛을 마주해요. 그러면 꼭 형을 보는 것만 가아서 눈이 시큰해져요. 있잖아요, 형. 형이 입원하기 전까지 보고 담았던 세상들 말이에요. 그 기억들이요. 제가 간직할게요. 제가 보는 것들 전부 다 형이 준 거니까, 형을 끌어안고 산다고 생각할게요. 그러니까 형, 제가 하늘을 올려다 보면 꼭 마주해 주세요. 우리 택이, 이제 눈 감지 않고 사진 찍을 수 있겠네. 그렇게 말해 주세요. 머리도 쓰다듬어 줘요. 바람이 간질이면 형 손길이라 생각할 테니까, 꼭이요. 이번에는 꼭 약속 지켜요. 형이 준 세상, 기억할게요. 아, 마지막. 마지막 말이요. 이제야 말하네요. 더 빨리 말할 수 있었는데……. 좋아해요. 좋아해요, 형.

 

 

 

 

 

택아.

빛을 주고 싶었는데, 네가 너무 빛나서, 세상만 남기고 갈게.

김정환.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