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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365일 불편하다. 앉은 자리가 딱딱해 불편하고 옆사람이 다리를 벌리고 앉아 불편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통장 잔고가 불편하고 멀리서 오는 알 듯 모를 듯한 이가 불편하다. 세상은 불편한 것 투성이라, 뭐가 더 불편하겠냐 싶다. 하지만 세상은 다채롭다. 별 희한한 종류의 불편함이 온다. 기어오기도 하고 뒤집어 오기도 한다. 인간사에 통달한 사람이 왜 책을 쓰는가. 내가 깨달은 거 너네는 쉽게 알라, 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건 그냥 자만이다. 세상에는 직접적인 것이 없다. 더럽게 간접적이라 나 하나만 포기하면 그만이다. 근데 그게 이상하게 자존심 상하고 비참하고 나만 아픈 것 같고…. 나 같은 경우에는 그 과정이 느릿함으로 다가왔다. 느리고 굼뜬 계절처럼 다가왔다. 철없는 동생의 미룸 같은 것.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엄마가 찾아와 왜 청소를 하지 않았느냐고 혼내는 것. 나는 후회하고 동생은 짜증낸다. 늘 짜증만 낸다. 결국 하는 건 나다. 나와 마음과 타인은 그렇게 다가온다. 타인은 혼을 내고 마음은 짜증내고 나는 쪼들려서 혼난다.

 

 담배를 피워볼까. 처음 혼난 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일상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아, 네가 어떻게 생겼었더라.

 

 이런 내가 하도 병신 같아서 그냥 담배만 피웠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정답이구나. 다신 생각하지 말아야지 스스로 다짐하고 싫어할 거라고 다짐하는 게 아니라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담배를 다 태우니 이름 모를 피아노 소리가 기댄 창에서 흘러나왔다. 라이브 카페가 내 등 뒤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등 뒤 라이브 카페를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생각 하지 않았다. 나름 신이 났다. 회사에서 정신 빼놓고 다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다가 친한 친구를 만났다. 친한 친구가 그랬다.

 

 책을 읽어보는 건 어때?

 

 너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책이 있을 거야. 그걸 계속 읽어. 너를 편안하게 만드는 책이 아니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을 읽어. 나는 소설가는 사기꾼이고 시인은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감정을 느껴? 그걸 쓴 사람은 그 상황들을 다 경험해 보고 말을 하는 걸까? 그 사람은 정말로 상황을 겪은 사람을 이해하고 쓴 거야?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내가 물었다. 야, 있잖아.

 

 나 남자 좋아했어.

 

 남자를 좋아하는 게 그들이 말하는 사랑과 같아? 친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사람들은 평범한 사랑을 좋아해. 공감은 그런 거야. 평범한 것들 중에서 새로운 걸 찾아내야 하지. 불편해 하고 아파하지. 눈물 흘리고 공감해야하지. 너는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여자라는 이유로 괴로워 본적이 있니. 나는 고개를 들었고 친구의 알 수 없는 표정과 마주했다. 넌 제 3자 정도는 가능하겠구나. 나는 웃고 말았다.

 

 나는 내게 제 나름의 해법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이에게 말한다. 내가 겪은 상황, 감정. 모든 것들을. 나는 행복하고 싶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다. 혼자 있음이 얼마나 비참한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 나름대로의 외로움을 무시하는 것도, 크기를 재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내가 겪는 외로움에 대해선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상황을 찢고, 부수고, 나가고 싶어서 말한다. 나는 터무니 없이도 평범한 사람에게 상담사를 바란다. 상담사가 준비가 된 이를 기다려 주듯. 나는 마치 구조될 준비가 끝난 환자 같이. 나는 이미 모든 말을 다 했으나 받아주는 사람은 없다. 내가 묻는다. 내가 여기서 뭘 더 해야 해? 상대는 말한다. 이걸 해봐, 저걸 해봐. 사람을 단 하나의 우주로 빗댄 걸 생각 해봐. 밀도와 중력이 다른 내가. 너와 다른 위치에 선 내가, 다른 빛을 내는 내가 저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인지한다. 나는 포기하고 친구는 탓한다. 거봐 네가 문제잖아. 왜 그것도 못해.

 

 친구야, 너는 머저리구나. 나는 웃는다. 반드시 맞는 답 따윈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깨달음의 연속이고 세상은 내가 365일 바뀌어야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그렇게 바뀌려면 나의 추억을 없애야 하는데, 왜 가장 쉬운 것을 뚫어주지 않았을까, 신은. 신을 믿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안 보이는 이에게 말하고 싶어서 신이라고 불러 본거다.

 

 내 삶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렇게 치자면 첫 만남이고, 첫 만남 이전의 고등학교를 그곳으로 간 것이고, 그럼 그 동네에서 산 것이고 그럼 내가 태어나기 전 부모님이 그 동네에 정착한 것 때문인가. 근데 그 동네에서, 그 시간에 날 가지지 않으셨다면 과연 나는 존재 할 수 있었을까? 나도 모르겠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 나는 왜 의심을 하고 부정을 하는지. 나는 왜 그 애를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할까.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의심한다. 딜레마다. 생각을 없애는 것이 나은 선택이다. 더 나은 선택 때문에 나는 몇 달을 허비한다. 깨닫는다. 나아진 것은 없다. 이것은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 나는 판옵티콘의 감시자.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나 범인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은 없다.

 

 나는 다시 불편해진다. 그 애가 불편해진다. 몇 달간 눌러놓았던 감정이 터진다. 한순간에 참을 수 없어진다. 그 애의 흰 종아리, 짧았던 반바지, 동그란 눈알 같은 것. 어떤 분위기? 나는 기억할 수 있나? 순식간에 떠오른다. 어드메에 던져 놓았던 좋았던 기억. 아팠던 기억은 왜 더 무거울까. 햇빛에 잘 구워진 예쁜 기억들은 공기 중으로 휘발되어 버린 걸까. 내 살갗을 이루고 있는 좋은 기억들은 다 그렇게 떠나가 버릴까. 속에 꾸역꾸역 눌러 담은 기억은 나를 괴롭히고 할퀴고…. 택아, 하면 사선을 그리던 목선, 턱 아래 어룽진 그림자, 뾰족한 코끝, 내려간 눈, 머리꼭지에서 살랑이던 머리칼…. 내가 사랑했던 것을 떠올린다. 아, 한끗 차이구나. 이 기억들은 나를 슬프게도 행복하게도 만들 수 있구나. 세월이 겉을 갉아내고 속의 것들을 한 겹, 한 겹 드러내는 것이다. 거기까지 알게 된 나는 조용히 울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먼 훗날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부러워서. 그저 흘러가면서 사람을 죽게도 만드는 시간과 풍경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왜 이리 부정적인 사람인가.

 

 비 오던 날 쓰러진 사람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물어보지 않았다. 그 애가 병원에서 깼다는 소식을 들었다. 곁에 앉아 서툴게 사과를 깎던 내게 그 애가 말했다. 지금 막 생각났다는 듯. 잊어버린 약속이 생각난 아이마냥.

 

 우리 안 만나는 게 좋을 거 같아.

 

 나는 고개를 들었고 그 애는 고개를 돌렸다. 먼지가 잔뜩 낀 유리창에 그 애의 얼굴이 흐릿했다. 살색이었고 주황색이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반질거리는 뒷통수가 예쁘다 생각했다. 왜 병원에 왔냐, 물어볼 시간 정도는 주지. 나는 일어서서 나가고 말았다. 어렸을 때였다. 이유 없는 거리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그건 나에게 너무나 큰 벽이었다. 넘지 못할 산이었다. 세상에는 싸워서 이기는 사람도 있지만 회피하는 사람이 더 많다. 누군가를 탓하기 보다는 나는 내버려두고 싶었다. 정리 좀 하고 말해라, 내 나름 그런 의미였던 것 같은데, 알고보면 난 이미 알고 있었던 거 같다. 그 애는 애초에 버티기 어려워 했다. 게이가 되면 가끔,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인걸.

 

 그 애가 여자친구를 사귀었단 소식을 들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아침인사를 건넸다. 놀란 건 그 애였다. 그 애는 택아, 하고 부르는 쪽으로 갔다. 여자애가 그 애 이름을 불렀다.

 

 내 모든 것을 주었던 사람에게,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사랑 때문에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사랑의 끝은 기소라 했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괴로움을 참고 불편함을 잊어버린다. 적응이라는 것이 있어서다. 언젠간 잊는다는 희망이 적응이다. 가끔 결혼한 그 애를 보면 명치가 아린다. 그 애 곁에서 작은 아이가 웃고, 그 애는 말 없이 여자애 손을 잡는다. 나는 고개를 돌린다. 속이 울고 그날 하루 밥을 먹지 못한다. 나의 뇌는 이 사실들을 ‘이유 불명’으로 판단한다. 난 분명히 괜찮다는 자기 최면을 걸어 온 것이다. 가끔씩 폭팔할 때도 있다. 기승전결이 없는 이야기처럼, 한순간 힘들었다 잠잠해진다. 토하는 것 같다. 토로 이야기를 써도 이것보다는 아름답겠네. 나는 하하 웃어버린다.

 

 한때겠지. 한, 때겠지. 세상은 망하지 않았고, 그 애는. 택이는 잘 살고 있다. 나는 회사를 다닌다. 나는 아마도 다른 사람을 만날 것이다.

 

 피가 나지 않았던 나의 한 시대가 지나간다. 이렇듯, 아무 일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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