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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물 적게요.

 계산을 마친 뒤 카드를 건네받은 손이 매끄럽고 반듯했다. 구둣발을 세워 탁, 탁 바닥을 가볍게 내리칠 때마다 코트 자락이 무겁게 흔들렸다. 말끔히 빗어 넘긴 머리와 주머니에 꽂아 넣은 손. 얼굴에는 은은한 여유가 감돌았다.

 카페 안에는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고 있었다. 택은 옅게 미소 지었다. 흰 손가락은 허공에서 익숙한 듯 춤을 췄다. 쇼팽, 좋지.

 "커피 나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커피를 받아든 택이 카페를 주욱 둘러보았다. 리사이틀이 끝나고 오랜만에 만끽하는 여유, 제대로 누려 주리라. 그러던 택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눈을 살짝 가리는 앞머리와, 가늘게 벌어진 눈. 노트북을 두드리는 손가락은 곧고 매끄러웠다. 허공을 부유하던 두 시선이 어느 순간 얽혀들었다.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희고 곧게 뻗은 손가락이 건반을 가볍게 내달렸다. 긴 속눈썹이 선율을 따라 잘게 떨렸다. 머리 바로 위에서 밝게 내리쬐는 조명에 얼굴 곳곳이 그늘졌다. 연주를 마친 손가락이 부드럽게 멈추자, 감겨있던 눈이 둥글게 벌어졌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어둠 속에서 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택은 입꼬리를 부드럽게 끌어올렸다.

 천재 신인, 피아니스트 최택. 최근 모든 음악 관련 잡지에는 택의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연주자에게는 으레 붙여지는 천재 타이틀이었지만, 택은 정말로 천재에 가까웠다. 피나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천재. 연주회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온 택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잡지를 들어올렸다. 역시 택의 이름이 보란 듯 박혀있었다. 잡지를 내려놓고 베일 듯 빳빳한 셔츠 깃을 매만지는 택의 입꼬리는 은은히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오늘도 잘했어.”

 제 어깨를 두드리는 매니저의 말에 택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거봐, 감정 들어가니까 훨씬 좋잖아. 그 말에 손수건으로 손을 닦던 택의 미간이 미묘히 구겨졌다. 말끔히 빗어 넘긴 머리 탓에 희고 매끈한 이마는 조금만 구겨져도 금세 티가 났다. 매니저는 생수병을 하나 따 테이블에 올려둔 뒤 대기실을 나갔다. 택은 그 옆에 놓인 새 생수를 따 마시며 눈을 날카로이 세웠다.

 

 쇼팽 에뛰드 Op.25 No.11, 겨울바람. 웬만한 프로들도 손가락이 유연하지 않으면 어려워한다는 그 작품을 택은 매일같이 연습했다. 해도 해도 안 되던 연주 때문에 눈물이 잔뜩 고여 흐린 시야로 건반을 두드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눈 감고도 칠 수 있는 곡이 되었다. 연습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칼 같은 택이었기에, 택은 손가락이 저릿할 때까지 건반을 두드려대곤 했다. 그렇게 하루의 끝이 다시 하루의 시작이 된 날도 채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저에게 재능이 그리 넘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열다섯, 피아노를 시작한 지 8년이 되던 해였다. 이미 그만두기엔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할애했기에, 택은 포기할 수 없었다. 할래요, 할 수 있어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재능이 부족한 아이에게 돌아오는 것은 네가 알아서 해라, 하는 차가운 말뿐이었다. 그리고 스물, 프로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친 택에게 그제야 가족들은 따뜻한 말을 건넸고, 택은 이미 피아노 이외의 모든 것들을 등진 채였다. 독종. 택을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택을 그렇게 불러댔다.

 어린 아들을 등졌던 어머니는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아들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아는 분 아들이 피아노를 좀 친다더라. 어린데 재능이 있어보여서 좀 봐달라던데, 한 번 가볼 생각 없니?”

 택은 밥을 한 술 뜨다 말고 어머니와 눈을 맞췄다.

 “재능 있으면 알아서 잘 하겠죠.”

 굳은살이 단단히 박힌 듯한 그 말에 택을 제외한 가족들이 멈칫했다. 그래도 어머니 체면도 있고 하니까 가보긴 할게요. 그 말에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그래? 고개 숙인 채 모래알 같은 밥알을 씹는 택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인테리어가 다 뭔지, 택의 눈에는 그저 비싸기만 한 가구들의 배열이었다. 안 그래도 찢어진 눈을 반의 반으로 접어가며 웃는 사모님이 불편해 택은 자꾸만 목덜미에 손을 댔다. 발을 감싸는 푹신한 실내화마저 불편하게 느껴졌다. 음악을 하는 집안은 아닌 듯했다. 어색한 안부를 나누며 조금 깊이 들어가자 그랜드피아노 한 대만 덜렁 놓인 큼직한 방이 나왔다. 검은 피아노 의자에는 한 아이가 가만 앉아있었다. 눈이 가늘게 벌어지고, 얼굴선이 도드라진 아이.

 “좀 봐주세요. 아는 분이 보더니 재능이 있대서.”

 “어릴 때 재능 있어 보이는 애들이야 많죠.”

 어딘가 모르게 날카로운 택의 대꾸에 사모님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택은 그녀를 뒤로 하고 피아노 앞으로 다가섰다.

 "쳐봐."

 어디 그 손가락 좀 놀려봐. 택은 팔짱을 낀 채 피아노에 기대섰다. 둥글게 벌어진 택의 눈은 피아노 앞에서만 모나졌다. 검은 맨투맨 밖으로 드러난 반듯한 손이 건반 위에 차분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선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반듯한 손가락이 새하얀, 또 새까만 건반 위를 굴렀다. 넓은 방 안에 선율이 이리저리 흩뿌려졌다. 가늘게 벌어진 그 눈은 감겼다, 뜨였다 했다. 택은 팔짱을 풀고 바로 섰다. 아니, 그 선율에 이끌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터였다.

 무려 쇼팽의 즉흥환상곡. 프로도 치기 어려워하는 이 화려한 곡을 어떻게 열 살 아이가 이렇게나 완벽하게. 택의 손이 떨려왔다. 어느 샌가 감긴 눈은 연주가 끝나고 한참동안이나 뜨일 줄을 몰랐다. 바싹 마른 입술이 꾹 맞물렸다. 택은 눈을 떴다. 아이는 택을 보고 있었다. 그 날카로운 눈빛에 택은 심장 한 구석이 베인 듯한 따끔함을 느꼈다. 그래서 물었다. 이름이 뭐니?

 "김정환이요."

 장차 이 바닥에 흐드러지게 피어날 이름. 택의 몸이 잘게 떨렸다.

 

 일주일에 두 번. 리사이틀 앞두고는 한 번밖에 못해요. 정환의 레슨을 맡아주기로 한 지 벌써 일 년째. 정환의 실력은 하루가 무섭게 늘고 있었다. 택과 처음 만났을 때 피아노를 시작한 지 2년 남짓 되었다던 아이는 이제 베토벤을 능숙하게 쳐냈다. 재능이란 이런 걸까, 한 번도 재능을 가져보지 못한 택은 건반을 두드리는 정환의 동그란 뒤통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프로한테 레슨 받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웬만한 과외는 택도 없더라구요. 다들 못 맡겠다구……. 제 아이의 레슨을 부탁하며 은근히 자랑스러움을 내비치던 사모님의 얼굴. 택은 그것을 보며 무엇을 떠올렸던가. 제 유년의 가장 어두운 기억이 고개를 내밀었더랬지.

 "플랫."

 그 부분 플랫 붙이라고 했지. 눈 뜨고 악보 봐. 여기 박자 밀리잖아. 택은 긴 지휘봉으로 악보를 짚었다. 정환은 말수가 적었다. 언제나 고개만 끄덕이거나, 눈으로 말을 전했다. 그리고 정환이 하지 못한 말들은 그의 연주에서 오롯이 드러났다. 그 가늘게 벌어진 눈을 감고 건반을 두드리며. 너무 많이 담지도 마, 연주에. 택은 그 말을 건네지 못하고 언제나 눌러 참았다. 이따금씩, 아주 가끔이지만 그래도 어린 아이라고 실수를 하는 정환을 보며, 택은 알량한 우월감을 느꼈다. 그리고 택은 그런 자신을 혐오했다. 아이에게, 그저 재능이 조금 있는 어린 아이에게. 건반 누르는 짓을 언제 그만 둘지 모르는 철없는 아이에게. 정환은 아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조금 묘한 구석이 많았지만, 아무튼. 택은 그렇게 조금씩 치밀어 오르는 우월의식을 애써 잡아 눌렀다.

 "마지막."

 정환이 만들어내는 선율은 분명 강했지만, 또 어딘가 부드러웠다. 그 선율을 들으며 큰 창 너머로 정원에 내리쬐는 햇볕을 바라보는 것은 연습밖엔 없는 택의 각박한 삶에 작은 즐거움이었다. 좋다. 네 연주 좋아, 정환아. 왜인지 택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택은 연신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건반을 두드리고 있는 정환의 반듯한 뒷목은 특별히 도드라지는 곳도 없는데 자꾸만 어딘가를 쿡쿡 찌르는 듯했다. 그래서 택은 눈을 감았다. 눈두덩에 와 닿는 봄 햇살이 부드러웠다. 정환이 연주하는 드뷔시와 잘 어울리는 날이었다.

 

 여름이었다. 매미가 울고, 창 너머로 살갗에 와 닿는 햇빛이 따갑기 그지없는 흔한 여름. 어느새 제법 골격이 잡힌, 그럼에도 어린 티가 나는 정환은 허리를 곧게 펴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건반을 두드렸다. 택은 피아노에 가만 기대고 서서 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연주를 들었다. 레슨이라고 해봤자 별 거 없었다. 그냥 처음에 택이 한 번 쳐주면, 정환은 별다른 사족 없이도 용케 포인트를 알아듣고 연주해냈다. 몇 십번을 쳐가며 겨우 완주했던 곡들을 악보 한 번 훑고 쳐내는 정환을 보며, 택은 또 알량한 열등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국내 청소년 콩쿨이란 콩쿨은 다 휩쓸고 다니는 정환이었다. 몇몇 음악지에서는 이미 정환을 알아보고 인터뷰를 청한 적도 있고. 작은 도랑에 김정환이라는 이름 석 자가 퍼지고 있었다. 차츰 넓디넓은 바다로 흘러갈 그 이름. 결국 천재라는 두 번째 이름으로 살아가겠지. 택은 눈을 감았다. 이제 얼마 뒤에는 해외 콩쿨에 나갈 정환이었다. 저에게 배우는 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렇게나 일취월장했는데, 날고 기는 전문 피아니스트 사이에서 정환이 순위권에 들기란 그렇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 사이 또 한 번의 연주가 끝났다. 택은 생각에 잠겨 피아노에 기댔던 몸을 바로 세웠다. 그 때, 다시 선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택의 눈이 크게 뜨였다. 쇼팽 에뛰드 Op.25 No.11, 겨울바람. 처음에는 마치 나비의 날갯짓처럼, 그 작은 날갯짓이 큰 바람을 일으켜 세상 모든 것이 이리저리 구르기라도 하는 것마냥 물 흐르듯 흐르는 선율에 택의 몸이 떨려왔다. 택이 가장 많이 연습한, 또 가장 아끼는 이 곡을 어째서 정환이, 그것도 택보다 유려하게 연주해내고 있는 건지 택은 알 길이 없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여전히 창 밖에서 매미는 울어댔고 햇빛은 따가웠으며 정환의 두 손은 건반 위에 있었다.

 "연습했어요.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곡이니까."

 택은 입술이 말라오는 걸 느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았어? 묻는 말에 정환은 그제야 두 손을 건반 밑으로 내리며 대답했다.

 "선생님 리사이틀 갔었거든요."

 "언제?"

 두 달 전에요. 그 말에 택의 머릿속은 아득해졌다. 두 달, 겨우 두 달 만에. 이 어린 아이가 겨우 두 달 만에 저를 능가해버렸다는 사실에 택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택을 바라보는 정환의 까맣고 또렷한 눈에는 그저 택의 얼굴이 비칠 뿐이었다. 여느 아이가 그렇듯 칭찬해 달라는 눈빛도, 혼날까 걱정하는 눈빛도 없이. 문득 방 한 켠 수납장에 가득 쌓인 트로피들이 눈에 들어왔다. 택은 그것들과 정환을 번갈아 바라보다 결국 그 집을 뛰쳐나왔다. 정환은 그저 택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정원을 가로질러 뛰어나가는 흰 셔츠 차림의 택을. 그 여름, 정환의 나이 열넷이었다.

 

 리사이틀을 며칠 앞둔 날, 택에게 연락 한 통이 왔다. 국내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택은 흔쾌히 허락했다. 전화를 끊고 택은 피아노 앞에서 물러나 잠시 침대에 몸을 뉘였다. 오케스트라. 처음으로 피아노를 하겠다 마음먹었던 것도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던 한 피아니스트 때문이었지. 지금은 정상급 연주자가 되어버린. 택은 눈을 감았다. 그래, 이렇게 제 길을 걸어가리라. 침대 머리맡에 놓인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스피커에서 쇼팽 특유의 물 흐르는 듯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택은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리사이틀. 콩쿨 우승 뒤 저에게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관심 속에 열린 첫 리사이틀은 택에게 아직까지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처음 건반에 손을 올려 선율을 풀어나가고, 선율을 매듭지은 뒤 건반에서 손을 떼던 순간까지. 연주가 끝나고 나서야 잘게 떨리던 손을 누가 알아챘을까. 택은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옅게 웃었다.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가자, 하는 매니저의 말에 택은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삼키고 일어섰다. 빳빳하게 품을 유지하는 와인색 연미복이 택의 걸음을 따라 가볍게 펄럭였다. 은은한 조명이 감도는 무대로 올라서서 피아노까지 내딛는 걸음. 쏟아지는 박수갈채와 마른 몸에 날아와 꽂히는 수많은 시선들. 이제는 전부 익숙해진 것들이었다. 택은 의자에 앉아 숨을 골랐다. 저를 향하던 소리들이 아득히 멎었다. 첫 곡은 언제나 그렇듯 쇼팽 왈츠 9번 Op.69, No.1. 이제는 눈 감고도 치는 그것. 희고 곧은 손가락이 건반 위를 굴렀다. 긴 속눈썹이 이따금씩 파르르 떨렸다. 은은히 비추는 조명에 매끈한 얼굴 곳곳이 그늘졌고, 손가락이 이리저리 춤을 출 때마다 건반이 내려앉았다, 다시 올라왔다. 택은 희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어느새 마지막 곡이었다. 끝 곡 역시 언제나 같은 레퍼토리. 쇼팽 에뛰드 Op.25 No.11. 택은 잠시 숨을 고르며 객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앵콜을 몇 곡이나 해야 할까. 순간, 선율에 취한 사람들 속에 익숙한 시선이 느껴졌다. 연주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저를 궤뚫는 듯했던 새까만 시선. 중앙, 그것도 맨 앞에 앉아 택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이는 다름 아닌 정환이었다. 여즉 앳된 티를 완벽히 벗지 못한 그 눈과 마주친 찰나의 순간이 애써 숨을 골랐던 시간을 무색하게 했다. 택은 바지에 손을 문질러 닦았다. 매끈거리는 재질이라 두 손 잔뜩 배어나는 땀을 닦아내기엔 여의치 못했지만, 아무튼. 마지막 곡이 시작되었다. 자갈 잔뜩 깔린 시냇물이 아닌, 매끄럽게 흘러가는 깊은 강 같은 선율은 택의 연주의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곧은 손가락은 정확하고 빠르게 음을 짚어내는 동시에 다음 음을 부드럽게 연결했다. 오랜 노력의 결과였다. 모든 이들이 재능이라고 믿는 그것. 곡이 막바지로 치닫는 그 때, 음 하나가 어긋났다. 몇 년간 열렸던 택의 리사이틀 중 실수란 한 번도 없었다. 물 흐르듯 넘어가는 선율에 묻혀 실수가 희미해지긴 했지만 택은 호흡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꼈다. 제 옆얼굴에 똑똑히 날아와 꽂히던 그 앳된 시선. 택은 연주를 끝냄과 동시에 입술을 꾹 물었다. 수없이 날아드는 요청에도 결국 앵콜은 없었다.

 매니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실수를 알아채지 못한 건지, 그 귀 예민한 사람이 못 잡아챘을 리가 없는데. 이번에도 제 신경을 건드리면 매니저를 갈아치우겠다고 굳게 한 다짐이 무색해졌다고, 택은 생각했다.

 “밖에 누가 찾아왔던데.”

 “누구.”

 “남자애. 눈 찢어진.”

 택의 눈이 흔들렸다. 들어오라고 할까? 묻는 매니저의 말에 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 밖에 서 있는 남자애는 분명 정환일 테다. 아까 잠시 마주쳤던 시선이 떠올라 택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매번 아무것도 담지 않은 눈을 하는지. 그게 얼마나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지 알긴 아는지. 택은 물을 삼켰다. 그래도 답답한 속은 풀리질 않았다.

 

 가을의 끝물이었다. 손에는 악보집을 들고 정원으로 들어서는 택의 발에 고엽이 바스락 밟혔다. 이렇게 쌀쌀해질 때면 문득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게 한스러웠다.

 쇼팽 에뛰드를 저만큼, 아니, 어쩌면 저보다 잘 쳐낸 정환을 뒤로 하고 나온 후로 처음 들어서는 집. 제 등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 시선을 느끼지 못했는가 물으면, 택은 대답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얼굴은 여전히 덤덤했다. 어깨가 벌어지기 시작했으나 아직은 앳된 티가 묻어나는 얼굴. 택은 손에 들린 악보집을 건넸다. 악보를 받아들어 촤르륵 넘기는 손가락이 반듯하고 길었다. 택은 왜인지 고개를 돌렸다. 늦가을 높은 하늘이 물밀 듯 눈에 들어왔다. 문득 어긋난 음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앵콜 없이 끝냈던 리사이틀. 한 곡이라도 할 걸 그랬지. 택의 손가락이 허벅지 옆쪽에서 건반 두드리듯 물결쳤다.

 "리사이틀에서 치셨던 곡이죠."

 택은 몸을 돌리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저 갔었어요."

 "알아."

 "맨 앞에서 봤는데."

 "그것도."

 스타카토. 언제나 둘의 대화는 길게 늘어지는 법이 없었다. 둘 다 피아노에만 능수능란할 뿐 어릴 때부터 친구를 사귀어본 적도, 길게 대화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 탓이었다. 백건은 목소리, 흑건은 숨. 어쩔 수 없는 피아니스트의 한계였다.

 "저 때문이에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뭐가, 택은 대꾸했다.

 "실수요."

 철없는 어린애라기엔 너무도 차분한 목소리. 그렇다고 어른스럽다기엔 지나치게 직설적인 질문. 택은 미간을 꾹꾹 눌러댔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를 길이 없었다. 내가 왜. 네가 뭐라고.

 "내가 왜 너 때문에 실수를 해."

 마침내 뒤돌아서 마주한 눈이 까맸다. 그래서 택의 마음도 까맣게 타들어갔다. 무대에서 마주쳤던 눈과 같은 그것이었다.

 "저야 모르죠."

 쾅, 건반을 내리친 택의 손 틈 사이로 불협화음이 새어나갔다. 붉게 물들어 흔들리는 택의 눈과는 달리, 정환의 눈은 미동도 없었다. 그래서 택은 잠시 정환을 노려보다, 또다시 그 집을 뛰쳐나왔다. 이리저리 나뒹굴던 낙엽들이 택의 구둣발에 버석거리며 부서졌다. 벌써 두 번째 도망이다. 다신 제 발로 이 집에 걸어 들어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택은 다짐했다. 정환의 가지런한 손가락이 아무렇게나 울려 퍼졌던 그 불협화음을 그대로 짚어내고 있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두어 바퀴를 돌아, 겨울이었다. 문을 꼭 닫아도 조금씩 새어 들어오는 찬바람에 건반이 차갑게 식었다. 그것을 다시 데우는 것은 택의 몫이었다. 수없이 두드리고, 또 두드리며.

 그 날 이후로 택은 레슨을 가지 않았다. 정환 역시 연락 한 통 없었다. 그게 벌써 두 해 전의 일이었다. 그동안 택은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두 번, 리사이틀을 두 번인가 더 하며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피아니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정환이 국제 콩쿨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소식은 간간이 들려왔다. 몇몇 음악지에서는 될성부른 떡잎 따위의 타이틀을 내세워 이미 정환의 소식을 찍어낸 뒤였다. 슬슬 넓은 물로 퍼지는구나…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때면 택은 더욱더 연습에 매달렸다.

 정환의 프로 데뷔 소식이 들려온 것은 다음 해 가을의 끝자락이었다. 정환이 열일곱이 되어 콩쿨의 참가자격을 갖추게 된 해. 5년마다 돌아오는, 모든 신인 피아니스트들이 열망하는 그 트로피의 주인이 정환이 되었다는 소식. 택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저가 그렇게도 원했지만 결국 따낼 수 없었던 그 트로피. 손에 쥔 악보가 형편없이 구겨졌다. 최연소 우승, 한국인 최초 우승. 정환의 이름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클래식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 나라에서 3대 콩쿨 우승자 배출이라니, 언론은 신나서 떠들어댔고 정환의 이름은 클래식 연주자로서는 이례적으로 며칠째 실시간 검색어에 머물렀다.

어쩌면 이미 짐작하고 있던 정환의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택은 처참하게 짓뭉개진 제 자존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 이 바닥이 원래 그렇지. 날고 기는 이들이 깔려 있어도 주목받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정환이 한국에 다시 들어온 것은 꼭 1년만이었다. 콩쿨 우승 후 세계 각지를 돌며 갈라쇼를 마친 뒤, 이제야 한국에서 제 이름을 걸고 첫 단독 공연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 정환은 끊임없이 성장해 이제는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오는 정환의 코트자락이 가볍게 일렁였다.

 택은 얼마 남지 않은 일본에서의 리사이틀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매니저가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정환이 오늘 한국에서 데뷔 공연을 한다는 사실도 몰랐을 터였다.

 “오늘이더라. 김정환 한국 갈라쇼.”

 그 말에 택은 악보를 뒤적이던 손을 멈췄다.

 “내가 걔 어디서 봤나 했는데, 맞지? 그 때 대기실 찾아왔던.”

 택은 다시 펜을 들었다. 악보를 뒤적이는 척 몰라, 대꾸하는 목소리가 덤덤했다.

 “둘이 아는 사이 아냐? 안 가봐도 돼?”

 “형. 나 연습.”

 어? 어어, 그래. 악보를 탁 덮는 택의 말에 매니저는 머쓱한 듯 뒷머리를 매만지며 연습실을 나갔다. 정환의 콩쿨 우승 뒤 쏟아진 수많은 인터뷰를 빠짐없이 읽은 택이었다. 그 중 단 한 줄도 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같잖은 배려일까. 택은 연신 마른세수를 해댔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정환의 앳된 목소리가 자꾸만 귀에 감겼다.

 문득 어긋난 음 하나가 아득히 떠올랐다. 택은 건반을 내리쳤다. 울리는 불협화음. 정환과의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다. 택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언제부턴가, 온통 정환이었다.

 

 도쿄 리사이틀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한국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였지만, 숨소리마저 죽이고 저에게 집중하는 수많은 관객들의 모습에 택은 색다른 짜릿함을 느꼈다. 앵콜은 네 곡. 언제나 앵콜로 다섯 곡을 넘기지 않는 택으로서는 꽤나 호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택은 옷을 갈아입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홀을 나섰다. 코트자락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이제 관광 좀 해야지. 생각하며 코트를 여미던 택의 걸음이 차츰 늘어졌다. 후문 기둥에 기댄 채 구둣발로 바닥을 탁, 탁 내리치는 것이 어딘가 낯설지 않은 인영이었다. 몇 발짝 더 걸었을까, 인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정환이었다. 여전히 가늘게 벌어진 눈. 다만 이젠 열 살 아이가 아닌, 골격 단단히 잡힌 남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택은 마른 침을 삼키며 걸음을 멈췄다. 방금 전까지 느껴졌던 쌀쌀함 대신 불편한 기류가 온 몸을 휘감아대는 것이 선명히 느껴졌다. 멈춰선 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환은 성큼성큼 다가와 택의 앞에 섰다.

 “오랜만이에요.”

 “여긴 웬일이야.”

 “선생님 리사이틀 때문에.”

 어느새 저보다 한 뼘은 더 큰 정환과 눈을 맞추기란 어렵지 않았다. 택은 도망치고 싶었다. 가방 손잡이를 꾹 잡는 택을 가만 지켜보던 정환이 다시 입을 열었다.

 “또 도망치게요?”

 택은 대답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힘주어 잡았던 가방을 놓는 것뿐이었다.

 “제 데뷔 무대 왜 안 오셨어요.”

 “연습 때문에 바빴어.”

 “레슨은요.”

 “너도 연락 없었잖아.”

 “연락했어도 안 오셨을 거잖아요.”

 원래 이렇게 따박따박 말이 많은 아이였던가. 할 줄 아는 말이라곤 연주밖에 없는 아이였는데. 시간의 힘이란 실로 대단했다.

 “솔직히 너 레슨 필요 없었어.”

 너도 알고 있었지? 택의 말에 이번엔 정환이 대답하지 않았다. 열도의 날선 바람이 정환의 앞머리를 흐트러뜨렸다. 가볼게. 택은 그렇게 정환을 지나쳤다. 정환의 손에 들린 꽃다발을 보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 날, 정환이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 회의를 하기 위해 도쿄에 왔다는 건 후에 기사를 통해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정환은 매일 몇 계단씩 성큼 뛰어올랐다. 콩쿨 갈라쇼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단독 리사이틀이 열렸다. 거기서 정환은 쇼팽을 쳤다. 누구 보란 듯이 쇼팽을 쳤다. 택은 보러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언론은 자꾸만 택을 억지로 끌어다 정환의 옆에 갖다 붙였다. 택이 제 리사이틀에서 쳤던 쇼팽의 작품 리스트를 정환은 그대로 가져다 더 섬세하고 강렬하게 쳐냈다. 정환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에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택은 자꾸만 말라갔다. 밥을 못 먹는 것도, 잠을 못 자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꾸만 메말라갔다. 마른 입술은 숨결을 뱉어낼 때마다 버석거렸다. 속된 말을 빌려 엿같은 나날이었다.

 게다가 밤이면 목이 말랐다.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싶다는 열망에 목이 말랐다. 피아노만 칠 수 있다면, 희고 검은 건반과 손가락만 마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철부지 어린애는 이제 없었다. 이왕 할 거면 최고여야 했다. 천재여야 했다. 이 바닥에서 천재가 아닌 연주자는 필요 없었다. 노력은 구겨진 채 살얼음판을 나뒹굴고, 재능을 이길 수 없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자꾸만 밀려드는 잡생각에 음이 엇나갔다. 택은 건반을 힘껏 내리쳤다. 오랜만에 듣는 불협화음이 귀를 괴롭혔다.

 달빛이 창 안팎을 넘실거렸다. 이런 단조 같은 삶이라니. 택은 건반 위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가슴께에서 잘게 떨리는 음의 조각들이 심장을 여러 갈래로 찢어놓았다.

 

 네 번째 협연이었다. 빳빳한 현수막에 적힌 제 이름 두 글자를 보며 택은 뒷목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리사이틀이야 혼자 실수하면 그만이지만, 협연은 아니다. 아무리 목을 축여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택을 괴롭혔다. 들려오는 후문으로는 정환이 도쿄의 오케스트라와 쇼팽 작품을 협연할 것이라고 했다. 택은 반듯한 손으로 연거푸 얼굴을 쓸어내렸다. 도대체 왜.

 뒤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앞에는 관객들이 빼곡했다. 택은 답지 않게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보고 있을 것이다. 정환이 제 협연이든, 리사이틀이든 되도록이면 보러 온다는 사실을 택이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더욱 실수할 수 없다. 정환이 보는 앞에서 두 번 다시 실수란 없어야 했다. 눈을 감았다. 달빛마냥 쏟아지는 은은한 조명에 택의 긴 속눈썹이 눈 밑에 그늘을 드리웠다.

 저 때문이에요? 묻던 어리지만 차분한 목소리. 네가 뭐라고. 택은 억울했다. 손끝에서 건반이 뭉개졌다. 내가 왜 너 때문에 실수를 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때문에. 이번엔 건반이 도르르 무너져 내렸다. 오케스트라 연주 소리가 아득히 멀어지는 듯했다. 자꾸만 연주에 사사로운 감정이 실렸다. 문득 감정이 생기니 훨씬 좋다던 매니저의 말이 귓가에 웅웅거렸다. 통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정환아,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래, 다 너 때문이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연주는 끝이 났다. 평소와 달리 산만했던 연주였지만 관객들은 대부분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택은 정신없이 인사를 마치고 대기실로 향했다. 심장이 자꾸만 기분 나쁘게 날뛰었다. 택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물로 급히 목을 축였다. 그 때 누군가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는 대답을 뱉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정환이었다.

 택의 입술이 단단한 이에 짓이겨졌다. 연주 잘 들었어요, 선생님. 낮은 목소리가 겨우 매달려있던 심장을 쿵, 떨어뜨렸다. 그런데, 그런데요. 택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으세요.”

 전혀 다른 온도의 두 시선이 얽혔다. 핏발 선 눈을 한 택은 정환의 말을 듣지 못한 척 다짜고짜 제 할 말만을 토해냈다.

 “따라하지 마.”

 “뭐를요.”

 “다른 거 쳐. 많잖아. 베토벤, 라흐마니노프. 왜 하필 쇼팽이니?”

 “선생님이 치잖아요.”

 “그러니까.”

 택은 잠시 숨을 골랐다. 네가 건반으로 얘기할 때가 좋았는데. 아주 낮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잔잔한 눈물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치지 마.”

 “무슨 뜻이에요.”

 “너 알잖아. 무슨 뜻인지.”

 “몰라요.”

 넌 똑똑한 애잖니. 천재잖아. 결국 토해내지 못한 마지막 말이 다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택은 꼭 헛구역질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입술을 물고 문을 열어제꼈다. 정환의 손에 들린 꽃다발이 보였다. 붉은 장미 한 종류만 빼곡하게 들어찬 꽃다발. 참으로 정환답다고, 택은 생각했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기시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지나치게 빠르게 구르는 손가락은 꼬이기 마련이건만. 여전히 정환은 천재 타이틀을 단 채로 쇼팽을 쳤고, 택은 그 자리에 가만 머물러 있었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더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버석한 얼굴을 감싸 쥔 두 손등이 잘게 떨렸다. 그 잠깐 사이에 건반은 다시 차갑게 식었다. 지문이 닳아 없어질 것처럼 건반을 두드려대도, 다시 손끝에 건반이 닿을 때면 난생 처음 피아노를 접한 아이마냥 낯설어 할 수밖에 없는 것. 숙명이라면 숙명이었다. 가만 연주를 듣던 매니저가 머그잔을 쥔 손목을 흔들며 입을 뗐다.

 “전에 좋았잖아. 감정 풍부하고.”

 택의 둥그런 눈이 금세 모나게 변했다.

 “정 힘들면 그, 김정환 연주라도 들으면서……”

 테이블에 있던 화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벽 한쪽에 처박힌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파편과 흙이 곳곳에 튀었다. 매니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급하게 택의 손부터 살폈다. 뭐한다고 그걸 던져. 손 다치면 어쩌려고. 택은 그 손을 뿌리치고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차를 몰고 새벽의 한산한 도로를 달리는 내내 택은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입술을 옴죽거릴 때마다 야윈 뺨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제 목을 옭아매는 굴레를 하루빨리 벗어야 했다. 그래야 숨을 쉴 수 있었다. 피아노 연주가 제게 즐거움이 아닌 괴로움을 가져다준 것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 전부터였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굳이 거슬러 올라가자면 정환이 콩쿨 우승을 한 날. 아니, 정환이 택에게 선물이랍시고 쇼팽을 쳐준 날이었던가. 아, 그래. 어쩌면 정환을 처음 만났던 날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문을 열고 선 정환은 아직 잠에 들지 않았던 건지 선명한 눈을 하고 있었다. 검은 맨투맨 밖으로 드러난 목과 손이 단단했다. 들어오세요. 택은 잔뜩 충혈된 눈으로 그 집에 들어섰다. 거의 5년만이었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피아노 한 대와 수납장 하나만 덜렁 놓인 큰 방마저. 택은 그 방에 들어서자마자 무언가에 홀린 듯 피아노 앞에 앉았다. 쇼팽 녹턴 Op.9 No.2. 잔잔하고 부드러운 선율이 넓은 방을 메우기 시작했다. 정환은 갑자기 제 집에 찾아와 건반을 두드리는 택을 가만 내려다보기만 했다. 달빛만이 조용히 피아노 건반을 비추는 어두운 방, 정환은 선율에 기대 눈을 감고 어둠 속을 유영했다. 실수 하나 없이, 음 하나하나에 감정을 눌러 담은 것이 고스란히 느껴져 정환은 연주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이나 눈을 뜨지 못했다. 그리고 정환이 감은 눈을 가늘게 떴을 때, 택은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그래서 정환은 택의 옆에 앉아, 건반에 손을 올렸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피아노밖에 없는 둘이었다. 마치 레슨 때처럼, 정환은 택이 연주했던 녹턴을 똑같이 연주하기 시작했다. 정환의 손끝에서 연주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문득 택의 머릿속에 10여 년 전 이 방에서 들었던 정환의 첫 연주가 어렴풋이 되새겨졌다. 확연히 달랐다. 정환은 더 이상 그 열 살 아이가 아니었다.

 마지막 레슨을 마친 정환과 택은 한참을 그렇게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잔뜩 잠긴 목소리로 오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택이었다.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

 택에 대한 말인지, 정환에 대한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정환은 용케 대꾸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선생님보다 잘나고 싶지 않았어요. 먹혀 들어간 뒷말이 정환의 목울대를 세게 쳐댔다.

 “전 피아노 안 좋아해요. 선생님이 가르쳐줘서 계속 한 건데.”

 너의 그런 말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단 걸 아는지. 천재가 아닌 사람에게 천재가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알기나 아니. 택은 고개를 숙였다. 눈앞이 온통 건반으로 가득 찼다. 정환은 대답 없는 택의 옆얼굴을 흘금거리다,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건반 위에 차분히 올린 손등이 반듯하고 매끄러웠다. 정환은 덤덤히 입을 열었다.

 “제가 사라지길 바라시죠. 이 바닥에서.”

 택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어둠 속에서 정환의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긴 팔로 치켜든,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무엇.

 “이제 그만 불행하세요.”

 그리고 그것이 날카로운 단도라는 걸 깨달았을 때, 이미 그것은 정환의 반듯한 손등에 꽂힌 뒤였다. 손등에 꽂힌 칼날이 손바닥을 뚫고 건반을 건드리자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이 작게 울렸다. 손등에서 흐른 피가 건반을 타고 카펫으로 흘러내렸다. 툭, 툭 하는 소리가 소름끼치도록 생생해 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환은 작은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몸만 떨고 있었다. 얼마인가 모았다 한순간 내쉬는 숨이 거칠어 택은 차마 정환과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그래서 택은 도망쳤다. 현실로부터 도망쳤다. 저를 무겁게 짓누르던 천재의 그림자로부터 도망쳤다. 그래, 정환에게서 도망쳤다.

 뒤돌아봤던가. 제 어깨너머로 마주친 그 가늘게 벌어진 눈이, 비열한 제 뒷모습을 똑똑히 향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택은 뜀박질을 멈추었던가. 네가 다시는 건반에 손도 못 댔으면 좋겠어,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던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였던가.

 

 비운의 천재. 불의의 사고.

 정환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가 바뀌었지만, 정작 정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택은 세상을 외면했다. 시간이 빠르게 달리는 만큼 택의 손가락 역시 말없이 건반 위를 달릴 뿐이었다. 이따금씩 정환의 이름이 아득히 떠오를 때면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마지막 도리라고, 택은 자위했다.

 정환이 사라진 세계는 평화로웠다. 택은 여전히 주기적으로 리사이틀을 열고,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다.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정환의 공석을 채우기 위해 택에게 연락을 해왔으나, 택은 찻잔 밑바닥에 남은 쓰디쓴 가루 같은 일말의 죄책감 때문에 정중히 협연을 거절했다. 빼앗겼던 정상의 위치를 되찾기는 쉬웠다. 택의 몸에는 다시 적당히 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언젠가 느꼈던 알량한 자부심. 한동안 택의 가장 밑바닥에는 그것이 잔잔히 깔려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10년만이었다. 택이 모르는 10년간의 시간 동안 정환은 완전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택은 어색한 듯 이따금씩 입술을 깨물다 반듯한 손가락으로 찻잔 손잡이를 쥐었다, 놓았다 했다. 문득 정환의 왼쪽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 왼손의 상처는 마치 훈장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정환은 여전히 눈이 부셨다. 택은 자꾸만 눈이 시려오는 듯했다.

 “잘 지냈니.”

 커피를 한 잔 다 비울 때쯤에야 힘겹게 토해낸 말에 정환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선생님도 잘 지내셨죠.”

 “나야, 뭐……”

 “아직도 대단하세요.”

 저 선생님 연주 자주 들어요. 정환의 말에 택은 억지로 삼켰던 커피가 얹힌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무슨 일 해?”

 “칼럼 써요.”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고 있을 거라고, 적어도 동네 피아노학원 원장님 정돈 하고 있을 거라던 택의 예상이 완벽히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택은 정환의 앞에 반듯하게 놓인 노트북을 내려다보았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던 그 손끝으로 이젠 키보드나 두드리는구나.

 “왜 그랬어.”

 택의 목소리에 원망이 섞였다. 정작 정환은 그 반듯한 손으로 머그컵을 거머쥐고 입에 커피나 머금고 있었다. 물방울마냥 둥글게 벌어진 택의 눈에 참았던 눈물이 가득 들어찼다.

 “네가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택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정환의 찢어진 손등은 몇 년 동안 자꾸만 꿈에 나와 택을 괴롭혔다. 간헐적으로 새어나오던 숨소리와 고통에 잘게 떨리던 정환의 어깨까지. 꿈이 너무도 생생했던 나머지 급하게 깨어난 택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절어 있곤 했다. 그 때마다 택은 얼굴을 감싸고 어둠에 고개를 묻었다. 정환의 부재는 잔인한 선물이었다.

 “그 표정 하나가 보고 싶었어요.”

 처음 듣는 정환의 억눌린 목소리에 택은 눈을 크게 떴다. 그와 동시에 눈물 몇 방울이 후두둑, 택의 무릎으로 떨어졌다.

 “선생님 웃는 거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웃는 듯, 우는 듯한 정환의 목소리에 택의 가슴이 저몄다. 정작 정환의 눈은 긴 앞머리에 반쯤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음에도. 정환이 고개를 들었다. 앞머리가 흐트러지며 또렷한 눈이 드러났다.

 “그 땐 너무 어렸잖아요.”

 말을 마친 정환이 웃었다. 가늘게 접히는 눈을 바라보며 택은 또 눈물 몇 방울을 떨궜다. 여전히 카페에선 쇼팽의 야상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네가 나를 원망하지 못할 것을 안다. 그 칼은 내가 내리꽂은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그 기억은 이미 화상을 입어 곪고 곪았지만, 이미 다 아문 네 상처처럼. 오래전 네가 말했던 것처럼. 택은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제 그만 불행해줘.”

 그리고, 그리고 택은 마지막 도망을 쳤다. 다시는 정환과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서로가 서로의 굴레가 될 수 없었다.

 

 나보다 어린 천재, 내가 그에게 뭘 더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가끔 네가 두려웠고, 또 자주 비참했다. 매번 도망쳤고, 한 번도 너를 사랑한 적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 그저 새까맣던,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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