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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이 달랐다. 나는 태어난 직후 비행기를 타고 도착 지점에 도달한 인간이었다. 그에 반해 김정환은 그렇지 못 했다. 몇 번을 엎어지고 진흙탕을 구르고 무릎에 피가 철철 흘러도 절대 도착 지점에 올 수 없었다. 결국 고등학교 중퇴로 학업을 마친 김정환은 찾기 힘든 곳으로 숨어버렸다. 아마 그즈음에 내 첫사랑도 끝이 났을 것이다. 미처 김정환이 내 속에서 온갖 감정들을 휘몰아쳤을 거라고 어림도 못 했던 그때, 김정환의 늦은 등교를 보기 위해 창가만 내리 바라보던 그때, 억수와 같이 비가 쏟아지던 날 하나 남은 우산을 내게 넘기던 그때, 김정환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사랑을 하고 있었구나. 겁 없이 다른 세상의 사람을 사랑했구나. 그 시절의 나는 반쯤 미친 사람처럼 부모님께 매달렸다. 제발 찾아달라고.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만 알려달라고. 하지만 나에게 돌아온 것은 네덜란드행 비행기 표였다. 착실히 공부만 잘하던 아들이 감히 남자를 좋아할 거라 생각지도 못 했던 부모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를 한국에서 떠나보냈다. 그때야 느꼈다. 어른들의 말씀이 틀렸다는 것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속담은 나에게 해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그리워졌고 칼에 깊게 베인 자국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아마 그것이 나를 이렇게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네덜란드에서 모든 걸 해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내 손으로 김정환을 찾자고. 목숨을 걸어서라도 찾아내자고.

 그런데, 왜. 이 머나먼 네덜란드 땅에 갑자기 사라졌던 김정환이 있을 수가 있을까. 잘못 본 것이 분명할 것이다. 적당한 소음이 울리는 사람 많은 암스테르담 시내 한복판 매춘 가게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저 남자는, 저 사람은. 김정환이 맞았다. 무수한 사람들이 지나가는 와중에도 공중에서 얽히는 시선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사라지고 난 후 칠 년이 지난 스물다섯의 김정환은 어른이 되어 있었다. 키는 더 컸고 뼈대가 굵어져 완전한 남자의 형상이었다. 담배 연기를 내뿜어내는 그 얼굴은 욕망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나는 먹이를 쫓는 맹수처럼 천천히 천천히 걸어가 김정환의 앞에 섰다. 희뿌연 담배 연기는 내 얼굴로 쏟아졌고 짧아진 꽁초는 바닥에 굴렀다. 김정환의 반듯한 구두가 꽁초를 부드럽게 짓이겼다. 그 행동 하나에도 마른침이 넘어갔다. 일련의 행위를 하나하나 새겨가며 보고 있자 김정환은 내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겨내 손에 쥔 채로 그것을 부수었다. 안경테는 찌그러졌고 그에 빠져나간 안경 렌즈는 바닥으로 떨어져 담배꽁초보다 못 하게 짓밟혔다. 완전히 박살 난 안경을 본 후에야 나는 김정환을 보고 웃을 수 있었다.

 “보고 싶었어.”

 “안경 벗고 다녀. 그게 더 예뻐.”

 “나랑 자자.”

 “난 여기 관리인이지 남창 아닌데.”

 “돈 줄게.”

 “어떻게 변한 게 하나도 없어, 택아. 얼굴이 예쁘면 말도 예쁘게 해야지.”

 불쌍한 사람을 보듯 나를 빤히 보던 김정환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 했고 나는 급하게 녀석의 손목을 붙들었다. 몸에 익은 행동인지 손목이 잡히자마자 김정환은 나를 벽으로 밀치고 날이 잘 벼려진 단도를 목으로 들이밀었다. 뱀 같이 서늘한 눈매는 나를 뚫을 기세로 날카로워졌다. 열여덟의 김정환이 잠깐 스쳐 지나가는 듯한 눈빛에 명치가 쓰렸다. 그 모습이 참으로 감격스러워 툭툭 불거진 광대를 손으로 쓸었다. 귓가에 으르렁대는 하울링이 들리는 것 같아 목덜미로 소름이 타고 올라왔다. 본능에 충실한 내 손은 김정환의 얼굴을 당겨와 입을 맞췄다. 그 순간에도 김정환은 눈을 뜨고 있었고 그 눈을 느끼며 축축하게 입술을 빨아당기며 깨물었다. 한참을 진득하게 눈빛을 주고받다가 김정환은 내 머리채를 휘어잡고 가게 안으로 무작정 끌고 들어갔다.

 “삼천 유로.”

 “뭐?”

 “돈 준다며. 삼 천 유로 달라고.”

 

 몸에 닿는 차가운 느낌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니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 말해 한국인으로 보이는 어떤 남자는 있었으나 김정환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김정환의 흔적을 찾았지만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잠시 가만히 있던 남자는 젖은 수건으로 내 팔을 닦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뭐하는 거예요?”

 “네가 최택이지? 나 정환이 친구 류동룡. 정환이가 너 씻겨주고 데려오래.”

 “샤워실 없어요?”

 “있어. 이 층에. 이거 싫으면 혼자 가서 씻고 나와. 옷 갖다 줄 테니까.”

 얇은 이불로 대충 몸만 감싸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욕실 커튼 하나로 여자와 남자 샤워실이 나누어져 있었다. 당황할 새도 없이 급하게 씻고 나오니 샤워실 앞에 김정환의 친구가 옷과 신발 그리고 속옷까지 들고 있었다. 멍청하게 그것만 쳐다보고 있자 그 사람은 아아, 하고 아는 척을 하더니 옷을 넘겨주고 일 층으로 내려갔다. 그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옷을 입기 시작했다. 온통 검은색 옷이었다. 검은색 셔츠, 검은색 수트, 검은색 양말, 검은색 구두. 누가 골랐는지 몰라도 취향 한 번 이상하다 싶다. 옷을 갖추어 입고 젖은 머리를 털며 내려갔다. 류동룡이라는 그도 나와 똑같이 온통 검은색 옷이었다. 그는 바깥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타, 하고 간결하게 말했다. 젖은 수건을 들고 나서자 그가 수건을 낚아채더니 가게 안에 아무렇게나 던지고 나와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의 옆좌석에 앉아 지나가는 시내를 쳐다보았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보는 암스테르담인데도 오늘따라 기분이 묘했다. 아름답지 않았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위태로웠다. 순간 하늘에서 내 생각이라도 읽었는지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져 내렸다. 비가 내리는 암스테르담은 음산했고 저마다 비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근데 어디 가는 거예요?”

 “교회.”

 “거긴 왜요?”

 남자는 질문에 답이 없었다. 입은 굳게 닫혀 심각한 얼굴로 운전만 할 뿐이었다. 그 얼굴에 더는 어떤 것도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김정환이 데려오라고 했으니 아마 거기에 있겠지 싶었다. 찜찜한 기분을 애써 떨치며 빗물이 흐르는 창문만 응시한 채 한참이 흘렀을까, 천천히 속도를 줄이던 차는 곧이어 멈춰 섰다. 여기가 정말 유럽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넓은 잔디밭에 교회 건물 하나만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남자는 먼저 내려 뒷좌석에서 우산을 꺼내 펼쳐 들었고 조수석으로 와 문을 열었다. 쏟아지는 비를 피해 같이 우산을 쓰고 교회로 들어갔다. 칙칙하고 어두운 실내는 촛불만이 아른아른하게 불을 밝혔다. 위압감이라고는 없는 교회였다. 어깨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고 남자를 보자 남자는 교회 단상을 가리켰다.

 “저기 정환이.”

 “네?”

 “가서 봐.”

 교회 단상을 바라보았지만 사람은 없었다. 사람 키만 한 관만 놓여있을 뿐이었다. 설마. 손에 땀이 배어 나왔고 묘했던 기분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앞으로 가지 않고 가만히 있는 나를 남자가 뒤에서 계속해서 밀었다. 안 밀리려고 발악을 했지만 남자의 힘이 더 강했다. 단상이 가까워질수록 고개를 들지 못 했고 눈을 감았다. 교회에는 남자와 나의 구두 소리만 가득했다. 그 소리는 머지않아 멈췄지만 나는 눈을 뜰 수 없었다. 옆에서 남자의 한숨 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곧이어 턱이 잡혔다.

 “눈 떠.”

 “싫어요.”

 “그럼 너도 같이 죽어서 눈 감고 있던지.”

 “뭐..?”

 같이 죽어서, 라는 말에 눈이 뜨였다. 내가 본 것이 맞았는지 그것은 관이었고 김정환이 누워있었다. 김정환이 입은 흰 셔츠의 오른쪽 소맷자락과 허리 부근이 빨갛게 변색되어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왜.. 왜요? 김정환이 대체 왜요!”

 “너 때문이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네 그 눈빛이 정환이를 죽였어. 어릴 때부터 걔를 죽여 왔다고.”

 언성이 높아진 목소리를 낸 남자는 품에서 옅은 분홍색 봉투를 내게 건넸다. 편지 봉투라고 직감한 나는 쉽사리 그것을 받아들지 못 했다. 감히 봉투 속을 열어 편지를 꺼내 읽을 자신이 없어서였다. 또 머뭇거리고 있자 남자는 내 손에 봉투를 쥐여주고 교회 밖으로 밀어냈다. 지겹게도 많이 쏟아지는 빗소리가 마치 나를 혼내는 것 같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고 속이 답답해져 왔다. 어쩔 수 없이 편지를 읽어야 했다.

 

 [우리가 왜 이곳에서 다시 만났을까. 하필이면 너에게서 도망쳐온 곳에서 만날 게 뭐냔 말이야. 택아. 어떻게 눈빛이 하나도 안 변했니. 늦게 등교할 때마다 창가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앞쪽에 앉아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고, 벤치에 앉아서 축구를 하던 나를 쳐다보고, 어째서 하나도 안 변했어. 대체, 왜. 나는 네 눈의 깊이가 너무 버거워. 금방이라도 빠져서 목숨을 잃을 것만 같아. 그러니까 제발, 나를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말아줘. 너는 너의 세계에서 나는 나의 세계에서 죽은 듯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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